[클리닉 탐방]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당뇨성 망막증>


피 속 혈당이 넘쳐나 문제가 되는 당뇨는 그 자체보다도 따라오는 합병증이 더 무섭다. 심장병, 뇌졸중 등 당뇨 합병증이 무섭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또 다른 합병증인 당뇨성 망막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이는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당뇨 합병증 중 가장 늦게 찾아오는 당뇨성 망막증은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명(失明)에 이르는 고약한 병이다. 국내에서 실명을 유발하는 원인질환 중 첫 손가락에 꼽힌다.

우리 눈의 가장 안쪽에 벽지처럼 붙어있는 망막은 1억 개가 넘는 빛 감지세포와 100만 개가 넘는 시신경세포 등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조직으로, 카메라의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물체의 상(像)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해준다.

우리 몸에서 가장 정교한 조직인 망막은 가장 연약한 조직이기도 하다. 마치 물에 젖은 한지(韓紙)와 같아, 훅 불면 찢어질 정도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다치면 당장 시력 장애가 일어나거나 심할 경우 실명에 이르기 십상이다.

미세혈관 장애와 황반 부종

당뇨 망막증 분야 국내 권위자인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김순현(51) 원장에 따르면 최근들어 당뇨 망막증 발병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60~70대가 주류였지만 요즘은 40대는 물론 20~30대 젊은층 환자도 많다. 김 원장은 “전체 환자 중 20~30대 비율은 10명 중 1명 꼴에 불과하지만 증세가 악성인 사람들만 놓고 보면 2~3명에 1명이 젊은층”이라면서 “젊은 나이에 발병할 경우 증상이 더 심각하고 치료 결과도 안 좋다”고 말한다. 이어 “혈기가 왕성하다보니 친구들과 밤늦도록 어울리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등 생활패턴이 불규칙한 데다가 육류를 주로 먹는 서구식 식습관 탓이 큰 것 같다”고 진단한다.

김 원장에 따르면 당뇨성 망막증이 실명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미세혈관 장애와 환반부종이다.

망막의 작은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피 공급이 안 되는 미세혈관 장애가 발생하면 혈관 주변 조직은 서서히 죽어간다. 이렇게 되면 우리 몸은 방어 메커니즘을 즉각 작동시켜 새로운 혈관들을 만들어내는데, 이 때 생겨난 신생 혈관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 혈관들은 죽어가는 조직에 피를 공급하는 게 아니라 방향 감각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퍼져나갈 뿐만 아니라 엉성하게 급조된 것이어서 이내 툭툭 터지거나 자기들끼리 얽히고 설켜 막을 형성한 뒤 연약한 망막조직을 막 잡아뜯거나 구김으로써 시력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롤 망가뜨린다.

시력을 망치는 또한 가지 원인은 황반부종이다. 혈관에서 물이 새어 나와 망막을 퉁퉁 붓게 하면서 실명을 유발하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미세혈관 장애 증상을 치료했더라도 이 황반부종을 치료하지 못 하면 시력 악화는 피할 수 없다.

당뇨성 망막증은 종종 백내장, 녹내장 등 합병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합병증의 대부분은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신생혈관성 녹내장만은 예외다. 30명 중 1명 꼴로 발병하는 이 악성 합병증은 안압(眼壓)을 급작스럽게 끌어올리면서 최악의 경우 시력을 영구히 앗아간다.

당뇨성 망막증이 고약한 까닭은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발병 초기 시력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라면서 치료 시기를 놓치기 십상인 데다가 병원 치료를 시작하더라도 6개월에서 1년 정도에 한 번씩 병세를 추적 관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환자들이 오랜시간 기다리는 동안 ‘치료해야 하는 병’이란 사실을 깜빡 잊고 치료를 거르다가 그만 병을 더 키우기 때문이다.

혈관 터진 상태 땐 심각

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자꾸 놓치게 되는 이유는 또 있다. 김 원장은 “당뇨성 망막증에 따른 조직 손상은 망막의 주변부에서부터 진행하기 때문에 망막 중심부는 마지막까지도 남게 되어 시력이 그런대로 유지가 된다”면서 “병이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 하다가 혈관이 터져 눈 속이 피로 꽉 찬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왔을 때는 이미 레이저로 치료할 수 있는 시기가 한참 지난 단계”라고 말한다.

이렇듯 당뇨성 망막증은 시력을 영구히 앗아갈 수 있는 고약한 병임에 틀림없지만 반면 제때 치료를 받는 등 관리를 잘 할 경우 실명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당뇨성 망막증 치료법에는 레이저시술과 수술, 약물요법 등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레이저 시술이다. 레이저 치료는 우리 몸에서 방어기전이 일어나 신생 혈관이 생겨나는 것을 사전 차단하는 방법으로, 피 공급이 끊겨 죽어가는 조직을 레이저로 태워 완전히 죽여버리는 것이다. 이 치료만 제때 받아도 병의 진행을 70~80%까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력이 떨어지는 초기 증상을 놓친 환자들의 대부분은 병이 악화하는 것을 쭉 눈치채지 못 하고 있다가 혈관이 터져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돼서야 병원에 급송돼 오기 일쑤다. 레이저 요법이 제 아무리 치료 효과가 좋다고 하지만 신생 혈관이 이미 생겨나 터져버린 뒤라면 무용지물이다. 그럴 경우 치료 수단이 수술 밖에는 없다. 김 원장은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병세가 나빠진 상태라면 치료를 해도 결과가 썩 좋게 나오지 않는다”면서 “시력저하 현상 뿐만 아니라 합병증 발생 우려가 높다”고 조기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술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격이다. 직경 23㎜로 탁구공보다도 작고 동굴 안처럼 어두컴컴한 안구 속을 헤쳐가면서 망막 위에 거미줄처럼 붙어있는 섬유소 가닥을 눈에 잘 뵈지않을 정도로 미세한 가위로 한 가닥 한 가닥 잘라내는 힘든 과정이다. 장시간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결과는 그리 신통치 못 하다. 왜냐하면 섬유소 가닥을 떼어내고 원래 모양대로 펴 놓았다고는 하지만 망막 내 신경세포는 애초 구겨질 당시 큰 손상을 받은 뒤라 대부분은 이미 죽은 상태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약물 요법은 병세를 돌이키기 위한 치료라기보다는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둔 보조수단이다. 혈관에서 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혈관을 튼튼하게 하거나, 붓기를 빼거나, 흘러나온 피를 흡수하는 것 등 약의 가짓수가 굉장히 많다. 종류가 많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별 신통한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눈 적당히 쉬게 해야

김 원장에 따르면, 문명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밝은 빛이 비치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서 유독 우리의 눈만은 제대로 쉬지 못 하고 끊임없이 혹사당하고 있다. “우리 눈은 카메라로 치면 1초에 수백 장씩의 사진을 찍어대는 정도로 혹사당하고 있다”는 김 원장은 “불빛이 있는 곳에서 눈을 감고 있어봐야 눈이 쉬는 게 아니다”고 말한다. “캄캄한 곳에서 눈 감고 있어야 그나마 쉬는 셈이기 때문에 낮잠을 잘 경우 눈 가리개를 하는 것이 좋다”고 일러준다.

“된장국에다 밥과 김치로, 옛날 사람 먹 듯이 한 번 해보세요.” 갖은 방법을 다 써봐도 안 되는 불치의 환자를 마주했을 때 김 원장이 마지막으로 하는 권고다. “신통하게도, 정말 가망이 없는 듯 보이던 사람들도 3명 중 1명 정도는 병세가 회복되더라”고 김 원장은 덧붙였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입력시간 : 2005-08-17 17:31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