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세계에 빠진 소녀

[영화 되돌리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상상의 세계에 빠진 소녀

영화는 때때로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되곤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경우 15년간 감금돼 산발이 된 오대수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이러한 오대수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그림이 한 장 등장한다. 그림 속 주인공 역시 정리되지 않은 긴 머리칼을 드리운 채 세월의 고뇌를 온 얼굴에 담아내고 있다.

이 그림은 실제로 벨기에 화가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의 작품 ‘슬퍼하는 남자’다. 1892년에 완성된 이 그림은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흡사 오대수를 모델로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이 그림의 주인공을 모델로 오대수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

박찬욱 감독이 그림‘슬퍼하는 남자’에서 인물의 이미지를 차용했다면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수많은 영화 속에서 공통적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영화 이미지로 차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는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산맥’을, ‘붉은 돼지(포르코 루소)’는 그림 ‘행운’에 등장하는 양복입은 돼지에서 이미지를 빌린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감독은 마그리트 그림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끌어오고 있다.

영화는 치히로라는 철부지 소녀가 낯선 마을에서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도무지 종류를 알 수 없는 기기묘묘한 신과 요괴들에게 둘러싸여 겪게 되는 환상 모험을 담고 있다.

치히로는 낯선 마을에서 갑자기 돼지로 변한 부모님을 뒤로하고 하쿠라는 이름의 한 소년에게 이끌려 신들의 휴식처인 온천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마녀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노동계약을 체결한 치히로는 팔이 여럿달린 가마 할아범이나 얼굴 없는 요괴, 악취가 나는 오물신, 다리달린 숯검댕이같은 갖가지 요괴나 신을 만나 그들 세계에 적응해 나간다.

그런데 영화 속 환상의 세계는 흡사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세계를 보는 것처럼 논리를 뒤집어 버리는 상상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물 위를 떠 가는 증기기차는 마그리트의 ‘고정된 시간’에서 벽난로를 뚫고 지나가는 기차와 유사하고 팔 여럿 달린 할아버지는 그림 ‘마법사’에서 팔이 네 개인 중년의 마법사의 이미지와 같다.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가 변한 하얀 종이 새는 마그리트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하늘 구름을 날개에 담고 있는 새(‘위대한 가족’에 등장하는)를 연상시키고 유유자적 흘러가는 동화처럼 새하얀 구름은 작품 ‘거짓 거울’에서 눈 속에 담긴 구름을 떠올리게 한다.

마그리트는 무지함 속에서 끊임없이 발견을 거듭하며 성장하는 아이가 가장 처음 느끼는 신비로움(미스터리)이 자신의 예술의 근본 바탕이라고 여기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영화 속에서 그려나가는 것도 아직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가 꿈처럼 낯선 세상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발견해나가면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는 익숙한 사물이 비논리적으로 재배치되거나 평범한 사물이 낯설고 새로워지면서 만들어지는 환상과 공상의 공간인 셈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낯선 환상의 세계에서 위협을 받지만 점점 상상력의 공간에 적응해 나가면서 영화 속 치히로처럼 어느덧 훌쩍 커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마그리트의 그림은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걀層弱?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진정한 오리지날리티는 영화가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오래된 민담이나 신화에 있다.

이 기묘한 800만 신들의 이야기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까지 수상한 걸 보면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오랜 시간과 함께 축적된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5-10-05 11:07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