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속 고향길을 거슬러가다

춘향이 살던 집에서, 구보씨 걷던 길까지/ 민족문학사연구소 엮음/ 창비 발행/ 2만2,000원

작가와 작품의 고향을 찾은 한국문학 산책이다. 시간상 과거의 문학 창조를, 공간상 현재의 현장을 연구자들이 직접 답사해 스케치했다.

이들은 작품의 공간적 요소를 소홀히 하고 보면 구체적 현실성을 놓칠 우려가 없지 않다고 강조한다. 문학의 실감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과연 어떤 공간적 상황에서 이루어졌던 가에 대해 아무쪼록 자상히 둘러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1930년대 구보씨가 걸었던 청계천변을 다시 걸을 수가 있다. 또 제주 곳곳에서는 ‘순이 삼촌’에 실제 등장하는 4ㆍ3사건의 유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작품을 읽고 직접 찾아가면 모르고 지나칠 때는 아무 것도 아니던 문학유산의 흔적에서 생생한 감흥을 얻을 수 있다. 그곳을 찾아 작품의 실제 배경 속에서 직접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작가가 숨쉬었던 공기 속에서 작품 이해의 새로운 길을 발견 할 수도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인 것이다.

이 책은 14명의 국문학자들이 우리 문학사의 중요한 작가의 고향과 작품의 배경이 되는 무대를 찾아 떠나서 쓴 15편의 글을 묶었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반년간지 ‘민족문학사 연구’에 연재됐던 것을 한데 모았다.

각 주제의 전문가들, 작가와 작품의 전공자들이 직접 발로 뛰며 써 내려간 현장 답사기로, 단순히 보고 듣고 느낀 점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관련 문학작품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토대로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직접 길을 떠나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150여 컷의 사진을 곁들였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는 옛 시조와는 달리 근대를 지나면서 인걸뿐 아니라 산천도 많이 변했다. 근대화가 공간까지 마구잡이로 변화시킨 결과다. 그 현장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다. 1부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에서는 고전문학의 배경과 작가의 고향을 찾는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의 족적이 담긴 경산ㆍ광주ㆍ양양과 고려부터 조선까지 우리 문학사의 현장이었던 강화도, 춘향과 이도령의 남원, 퇴계의 도산서원, 망국의 한을 품은 매천 황헌의 유적지 등이 소개된다.

2부 ‘현대문학의 현장을 가다’에서는 근대 이후 우리 문학의 배경이 되는 경성 부산 인천 제주 등지의 풍경을 찾아 작품 속에 그려진 모습과 당시 현실의 모습, 그리고 오늘날의 모습을 비교한다.

3부 ‘동아시아에서 한국문학의 흔적을 더듬다’에서는 도쿄와 베이징에 거주하는 두 연구자들이 그곳에 남아있는 우리 문학의 자취를 보여준다.

도쿄는 식민지 시대 우리 지식인들에게도 주요한 활동무대였으며, 베이징은 애국지사들의 발길이 머문 거점이다.

문화 유산 답사기 등이 많이 나왔고, 갖가지 테마 여행의 기회가 흔하지만 문학 유산에 관한 책은 쉽게 찾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민족문학사연구소는 우리 문학사의 과학적 정립과 민족문학의 발전을 목적으로 국문학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ㆍ연구, 출판을 통한 연구성과의 대중화, 강연회 및 심포지엄 개최, 기타 국문학 연구의 목적을 위해 필요한 사업을 전개하는 국문학자들의 모임이다. 1990년에 창립됐다.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