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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타운] 금지된 사랑에 흔들리는 영혼 그들에게 파라다이스는 없었다
이안 감독 '브로크백 마운틴' - 카우보이 게이 커플의 위태롭고 절박한 사랑… 영상·음악 압권



만장일치의 격찬은 때로 찬사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만든다. <브로크백 마운틴>그 그런 경우다.

2005년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을 시작으로 이 영화에 쏟아진 헌사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버거울 정도로 많았다.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일컬어지는 골든글로브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 LA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 영국아카데미, 미국영화연구소가 <브로크백 마운틴>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3월 6일 열리는 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최다 후보로 지명됐고 최다 수상까지 점쳐지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2005년 전미 최고 영화에 오른 <브로크백 마운틴>은 대만 출신의 할리우드 감독 이안의 재능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걸작이다.

20여 년에 걸친 카우보이 게이 커플의 사랑의 연대기는 흡사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사색적인 인간 드라마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견줄 만한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을 전해준다.

브로크백을 떠난 카우보이 연인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은 애니 프루의 동명의 단편소설이다. 프루의 소설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이안은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아” 연출을 결심했다.

<결혼피로연>에서 이미 동성애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는 그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다시 한 번 같은 소재를 끌어들였다. 푸른 초록과 흰 눈이 어우러진 브로크백 산에 두 청년이 도착한다.

혈기왕성한 카우보이 애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여름 한 철 동안 양치기 노릇을 하기 위해 이 아름다운 산을 찾았다.

자연과 어우러져 평화로운 숙영생활을 하던 양치기 청년들은 서로에 대해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낀다.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한 순간에 끌린 사랑이었으나 브로크백에서의 양치기 일이 끝나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애니스와 잭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지만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힘겹게 서로에 대한 애정을 이어간다.

카우보이 게이 커플의 로맨스가 벌어지는 시공간적 배경은 의미심장하다.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60년대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막 발아하기 시작한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도 커지는 시기였다.



게다가 애니스와 잭의 근거지는 미국 안에서도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향토색을 지닌 와이오밍과 텍사스. 와이오밍에서는 98년에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한 청년이 울타리에 묶여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가장 남자다운 남자들이 산다는 텍사스에서도 같은 해 중년의 흑인 게이 가장이 백인 청년들에 의해 자동차에 묶인 채 도로 위를 끌려다니다 조각난 시체로 발견됐다.

반(反)동성애 분위기가 팽배했던 60년대 보수주의의 메카인 와이오밍과 텍사스에서 싹튼 카우보이 게이 커플의 사랑은 더욱 위태롭고, 그래서 절실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안 감독은 종교적 은유를 영화에 끌어들이고 있다.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인 브로크백 산은 애니스와 잭에게 어떤 구속과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태초의 낙원이다. 성서에 나오는 양치기 목자처럼 평화로운 산자락에서 양떼를 몰고 다니는 그들은 이 무구한 낙원에 던져진 최초의 인간처럼 보인다.

수치심도 모른 채 알몸으로 뒹굴던 아담과 이브처럼 그들은 브로크백이라는 파라다이스를 누빈다. 태초의 낙원에서 살았던 인간들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가 주어졌듯이 애니스와 잭에게도 금기가 주어진다.

불을 피우지 말고 양들에게 눈을 떼지 말라는 것. 이 같은 명령을 어긴 낙원의 연인들은 자신들의 안식처를 상실하고 유랑하는 유목민이 된다.

영화적 표현의 완벽한 조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가슴 저린 러브스토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메리카 정신’에 의문을 제기한다. <아이스 스톰>을 통해 미국식 가족주의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꼬집은 이안은 다시 한 번 이방인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카우보이는 아메리카 정신의 대변자였다. 건국신화의 주인공이자 미국의 주인인 그들은 개척자 정신으로 표현되는 미국의 가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고 수 많은 서부극의 주인공이었으며 터프한 남성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카우보이는 나약하고 불균질(不均質)한 인물로 그려진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에서 행패를 부리는 악당들을 때려 눕힌 후 현란하게 터지는 불꽃들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애니스의 모습은 '카우보이'라는 아이콘에 담긴 영웅성을 기묘하게 비튼다.

그가 영웅적 액션을 폭발시킨 것은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요, 주체할 수 없이 억압당한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다.

열정적으로 서로를 사랑하지만 잭과 애니스는 차이가 많은 카우보이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잭에 비해 애니스는 콤플렉스와 억압으로 일그러진 캐릭터다.

급작스러운 폭력으로 형상화되는 애니스의 억압된 내면은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최초의 트라우마(아버지에 의해 살해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중년 게이 남자의 거세된 시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유지의 딸과 결혼해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는 잭에 비해 애니스는 양육비와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고단한 육체노동자다.

억압되고 지연된 욕망이 들끓는 인간들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이안의 장기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영화 예술의 모든 표현 요소들이 완벽하게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걸작이다. 시대의 공기에 질식당한 게이 커플을 연기하는 히스 레저와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는 무수히 많은 이 영화의 장점들 중에서도 으뜸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연상시킬 정도로 대자연의 풍광을 청명하게 담아낸 품격있는 촬영과 가슴을 후벼파는 음악은 가장 냉혈한 이성애주의자들마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숭고한 감동으로 안내할 것이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


입력시간 : 2006-03-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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