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꽃상여가 되었다

스물여섯 1월에 등단해 시인이 되었고, 그해 스물여섯 12월을 다 보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시인이 있다.

신기섭(1979-2005).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지난 겨울의 어느 밤, 나는 주인 없이 혼자 남겨진 시인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거짓말처럼 장혜진의 노래 ‘굿바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욱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시인이 죽기 전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글과 사진이었다.

“밥을 지어 먹고 앉았다가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옥상에 흰 눈이 쌓이고 있었다. 눈이 많이 온다던데 새벽에 출장. 영천행 -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는데. 그런 장소를 가지고 있는 내 생활이 좋다. 다녀와서 발자국 몇 개 꼭 남기리라. 옥상에 눈이 많이 쌓이고 있다. 눈이 많이 쌓이고 있다.”

JPG파일 사진 속은 정말 눈이 많이 쌓이고 있는 밤의 옥상이었다.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 거짓말처럼, 시인은 그 밤을 보내고 오른 새벽의 출장길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가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다는 옥탑방 옥상에 쌓인 눈은 겨우내 그대로 쌓여 있었으리라. 서러운 봄 시나브로 사라져버렸으리라.

‘요절(夭折)’은 역시 여느 죽음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는 죽음이다.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는다는 예견된 수순을 따르지 않은 그 갑작스러운 절명은 쉽게 신화가 되거나 상징이 된다. 혹은 더 쉽게 호기심이나 동정의 대상이 된다.

많은 경우 요절의 당사자는 자신의 죽음에서 소외되어 있다. 요절하지 못한 자들만이 세상에 남아 요절을 운운하게 된다. 우리는 애써 그들의 흔적을 찾고 자취를 더듬으며 예의 불길한 징조와 비극의 징후를 찾아내려 한다. 애도와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죽은 자에게 그것은 서러운 일이리라.

나는 신기섭을, 그가 죽은 후에 만나게 되었다. 단순히 알게 되었다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요절을 운운하고 있다. 물론 애도와 안타까움 때문이지만 어쩌면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 모른다. 어쨌든 그가 너그럽게 용서해주길 바란다. 서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직접 만난 적 없는 시인이 나는 몹시도 그리운 것이다. 역시 그리운 이름들, 이상이나 윤동주처럼 또 기형도처럼.

시인이라는 이름으로는 채 1년을 채우지 못한 삶이었지만, 신기섭의 스물여섯 해 삶은 그 전부가 오롯이 시였다. 그의 유고시집인 <분홍색 흐느낌>에는 시 그 자체였던 그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니 자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예견하고, 시인은 자신의 삶을 시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가난 속에서 부모형제 없이 외롭게 자란 시인에게 할머니라는 존재는 그대로 그의 우주였다.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할머니가 오랜 병고(病苦) 끝에 돌아가시자 시인은 정말 혼자가 되었다. 할머니는 아들이기도 했던 손자가 시인이 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의 죽음은 손자에게도 당신 자신에게도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불현듯 오래 전 당신이 하신 말씀 ; 기습아, / 인제 내 없이도 너 혼자 서 산다, 그 말씀, / 생각이 나, 그때는 내가 할 수 없었던, / 너무도 뒤늦게 새삼스레 이제야 / 큰 소리로 해보는 대꾸 ; 그럼요, / 할머니, 나 혼자도 살 수 있어요, / 살 수 있는데, 저 문틈 사이로 숭숭 들어오는, // 눈치 없는 / 눈발 / 몇 / 몇,” (‘뒤늦은 대꾸’ 중)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분홍색 흐느낌’에서 혼자 남겨진 시인은 죽은 할머니의 낡은 분홍색 외투를 태우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밤 마당의 양철쓰레기통에 불을 놓고 / 불태우는 할머니의 분홍색 외투 (···) 분홍색 외투를 입은 수많은 할머니들이 / 나의 몸속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 / 이제는 추억이 된 몸속의 흐느낌들이 / 검은 하늘 가득 분홍색을 죽죽 칠해나간다 / 값싼 외투에 깃들어 있는 석유 냄새처럼 / 비명의 냄새를 풍기는 흐느낌” (‘분홍색 외투’ 중)

처음이 마지막이 되어버린 신기섭의 시집에는 이처럼 죽음이 가득하다. 그것은 관념적인 죽음이 아니라 문학을 사랑한 한 젊은이가 삶 전체로 증명한 죽음이다. 하여 너무도 눈물겹고 애통한 것이지만 이 아름다운 시인의 죽음을 우리는 감상적인 슬픔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가 남긴 시를 통해 그와 같이 노래하고 그와 같이 죽어야 한다. 죽음처럼 삶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욕창으로 짓무른 나의 몸 곳곳에, 꽃들이 수북하게 피었다. 나는 스스로 꽃상여가 되었다. 초라하지 않게 내 꽃들 골고루 햇볕 다 받길 바라, 나는 내 입으로 곡(哭)을 하며 길을 떠난다. (···) 죽은 자들로 꽉 찬 기억에서 죽음이 사라진 순간 / 살아서 보는 그 신비로운 세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 몸의 모든 구멍은 매표소 구멍처럼 분주해졌고 / 몸속에서 몸 밖으로 나갈 발걸음은 두근거렸다 / (···) 이 생의 산소호흡기와 오줌 호스를 탯줄처럼 다시 꽂고, 눈을 뜨면 사라진 내 몸의 꽃들, 실연 당할수록 꽃보다는 향기가 그립다. 매일매일 하루분의 향기를 제공받지만, 그 향기 왜 맡지 못할까 사람들은, 왜 그것을 목숨이라고 할까” (‘꽃상여’ 중)

제 입으로 곡을 하며 스스로 꽃상여가 되어 떠난 시인 - 그가 초라하지 않게, 그의 시들이 골고루 햇볕 다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죽음의 향기를 피우는 그의 시를 ‘목숨’이라 불러보자.

아프고 슬펐지만, 신기섭의 시를 읽으며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스승이었던 김혜순 시인이 쓴 시집의 표사(책 뒤표지 글)를 읽으면서는 한참을 울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기스바! 네 할머니 톤으로 너 불러보자. 노래의 날개를 달고 이 세상에 와서는 이승을 저승처럼 살다가 노래의 나라로, 그 아득한 곳으로 가버렸구나. 네 시와 삶 속에 가득 들어찼던 죽음 버리고, 네가 그리 시 속에서 찾아 헤맸던 죽음 속에 깃든 삶의 나라로 날아가 버렸구나. 거기선 기저귀 차고 목침 들어 할머니 얼굴 짓이기던 할아버지. 한 번도 불러보지 않은 아버지, 모두 잊어버려라. 네가 이 세상에 혼자 남는 것 안타까워 너 불러 가신, ‘엄마라고 부르면 늘 할머니 되던’ 할머니. ‘비명 같은 엄마’ 계시는 그곳에서 재미나게 살 거라. 그곳에선 라이터로 변소 줄 태워 할머니께 혼나지 말고, 너 행상 나갔다 늦게 돌아와 할머니 기다리게도 말고, 네가 그리워하는 연인 속에서 글썽한 그 큰 눈으로 웃고 살 거라. 노래의 나라에서 그렇게 살 거라. 기스바!”


이신조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