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어머니 손맛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심. 대부분의 빌딩 옥상은 황량하다.

콘크리트 벽과 바닥뿐. 그런데 그곳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풀과 꽃이 자라고 있다면 가히 ‘하늘 정원’이라 부를 만하다. 그리고 거기에다 멋스런 테이블과 의자, 음식까지 더해지고 주변이 조각 작품들로 장식돼 있다면….

생각만 해도 낭만적인 하늘 정원이 최근 서울 역삼동에 들어섰다. ‘스카이 뱀부(Sky Bamboo)’다. 한식 레스토랑으로 이름난 뱀부하우스의 3층 공원이다. 정식 이름은 ‘야생화와 조각공원’.

1995년 처음 문을 연 이곳은 올 초 문을 아예 닫고 레노베이션에 들어갔다. 여러 모로 손을 봤지만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스카이 뱀부 오픈.

그리고 아트리움처럼 천장이 조그맣게 뻥 뚫려 있는 2층에는 새롭게 갤러리가 자리했다. 20여 년 전 빌딩이 처음 세워졌을 때 서울시 건축상까지 받았던 멋진 건물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다.

뱀부하우스의 전문 메뉴는 한식. 트레이드 마크는 모던한 분위기와 인테리어에서 맛보는 한국 음식이다. 한 상 차림으로 나오는 한식정이나 다른 유명 한식점들과도 전혀 다른 모습이다. 뉴욕 소호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리 토속 음식을 맛보는 느낌이랄까.

여러 메뉴가 있지만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은 밑반찬에 먼저 혹한다. 묵은 김치와 오이소박이, 갖가지 나물 무침들과 동치미 등…. 딱히 특별하다 할 만한 종류이거나 양념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어릴 적 시골집에서 먹던 우리네 어머니의 손맛이 색다르다.

들깨를 갈아낸 소스를 얹어 들깨향 물씬 나는 머우대 나물, 꽤 오래 삭힌 듯해 보이는 고추 홍잎, 멸치와 함께 살짝 데친 조금은 쭈글쭈글해 보이는 꽈리고추, 살짝 익힌 오이소박이 등. 담근 지 2~3년이 지나 세월의 향취가 느껴지는 묵은 김치, 특히 무도 여전히 아삭하기만 하다.

실내 인테리어는 현대적이지만 테이블 위의 음식들에서는 토속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안주인 정양선 씨의 음식 장만 방식이 ‘유별난’ 때문이다.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젓갈은 고향인 마산의 친척이 보내오는 것만을 쓴다.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친 시중의 젓갈이 아닌 집에서 담근 젓갈인 셈.

계절마다 달리 하는 각종 나물 반찬도 대부분 산지에서 택배로 받아 쓰는 것을 고집한다. 특히 시원한 백김치나 동치미 국물은 이 집의 전매특허다. 좋은 물에서 김칫국물 맛이 나온다는 생각에 20년 전부터 정수된 물과 얼음만을 사용한다.

나물을 다듬고 양념에 묻히는 일도 고무장갑이나 비닐 랩도 끼지 않은 채 아직까지 맨손으로 한다. 그래서 정 씨의 손은 거칠다. 어떤 음식이든 최고의 맛을 내려면 좋은 주재료에 정성과 사랑이 더해져야 한다는 정 씨의 요리 철학이 버무려져 있다.

이곳이 외국인들과 유명인들의 단골 명소로 이름난 것도 토속 그대로의 우리 맛이 알려진 덕분이다. 입구 벽면에는 여기를 다녀간 재벌 총수 가족들을 비롯, 정치인들과 연예인, 외국의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수십 장 붙어 있다.

정 씨는 음식 맛 하나로 손님들의 식사 자리에도 수시로 초대 받는 등 단골 고객 명사들과도 두터운 친분을 쌓고 있다.

메뉴
게장정식과 현미정식, 불고기정식 등이 2만5,000원부터. 죽과 샐러드 호박전, 단호박대추찜, 굴무침, 고등어묵은지, 검은깨두부 등 여러 요리들이 코스별로 함께 제공된다.

찾아가는 길
서울 역삼동 차병원 4거리 뒤편 (02)566-0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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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