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화려한 불빛 속 상처받은 자들의 묵시록반환 10년 맞은 홍콩의 빛과 그림자 형상화

올해로 중국 본토에 홍콩이 반환된 지 10년을 맞았다. 숱한 근심과 불안이 교차했던 지난 반환 10년, 홍콩 사회의 다층적인 변화는 그들이 만든 영화 속에도 담겨 있다.

예부터 홍콩영화는 ‘반환’이라는 역사적 화두를 스크린 위에 투영해왔다.

미래가 불투명한 홍콩인들의 정박할 곳 없는 삶을 다룬 홍콩 누아르가 그랬고, 외세로부터의 부침 속에 자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그린 <황비홍> 류의 무협 액션 영화가 그랬다.

뿐인가. 정처 없이 떠도는 도시인들의 허무한 심리를 감각적인 화면에 실었던 왕가위의 영화들도 뿌리는 같은 곳에서 나왔다. 사멸한 장르로 취급되던 홍콩 누아르의 부활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되는 <무간도>는 범죄자와 형사로 역할을 바꾸는 인물들을 통해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홍콩의 현실을 암시적으로 그려낸다.

침체에 빠진 홍콩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무간도> 시리즈로 알려진 유위강, 맥조휘 감독의 <상성: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은 이 같은 홍콩의 운명을 다시 한번 화제에 올린다.

■ 이중생활을 하는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

상처받은 자들의 묵시록 첫 장면부터 영화는 이 같은 사실을 확정적으로 공표한다.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서 내려다 본 야경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화려함과 우울함이 동시에 넘실대는 축축한 홍콩의 거리를 습기 찬 이미지들을 통해 형상화한다.

주인공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선후배 파트너로 긴 시간을 함께 한 형사다. 형사 일에 빠져 여자친구마저 돌볼 겨를이 없는 아방은 모두가 흥청거리는 크리스마스 날 여자친구가 자살하자 큰 충격에 빠진다.

연인을 잃은 상실감에 형사 생활도 접고 술독에 빠져 폐인이 되기 직전인 아방. 그런 후배의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유정희의 도움을 받아 아방은 사립탐정으로 전업한다.

그러던 중, 유정희의 장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지만 석연찮게 수사는 종결된다. 유정희의 아내 숙진은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음을 감지하고 이 사건을 아방에게 의뢰하고 비밀수사에 들어간 아방은 놀라운 사건의 배후를 캐내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상성>은 <무간도>와 짝패를 이루는 영화다.

<무간도> 시리즈를 탄생시킨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3년 만에 홍콩에서 연출한 작품이자 양조위가 주연을 맡은 것 외에도 이중생활을 하는 두 남자의 교차하는 운명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기이하게 엇갈리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상성>은 홍콩이 놓인 현실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반환 이후 홍콩에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던 걸까? 1997년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을 떠나는 자국민들과 빈자리를 채운 본토 사람들, 환경과 문화의 차이, 2003년 홍콩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스의 공포 등은 예상치 못한 혼란을 야기했다.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파트너의 가려진 이면.

그 이면에 자리잡은 예상할 수 없는 악마성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지나온 지난 10년의 역사와 겹쳐진다. ‘절친한 파트너라고 생각한 그는 정말 나의 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상성>은 이처럼 홍콩의 운명을 두 남자가 처한 첨예한 상황과 포개놓는다.

■ <무간도> 풍 도시 누아르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디파티드>로 리메이크된 <무간도>처럼, <상성>은 최근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와 리메이크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할리우드가 이런 류의 이야기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범죄적 도시에 사는 인간의 불안감을 묘사한 누아르의 전통이 지극히 미국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할리우드 누아르의 주제는 탐욕스러운 도시를 헤매는 뒷골목의 범죄자들이었다. <무간도>나 <상성>이 묘사하는 불안은 홍콩 사회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나,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사는 인간들이라도 비슷하게 느끼는 감정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성>의 또 다른 주인공은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상처받은 도시 홍콩의 처지를 빗댄 누아르 영화를 찍으면서 유위강-맥조휘 콤비가 염두에 둔 것은 지금 홍콩의 모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였다.

그래서 인물들의 관계 못지않게 <상성>에서 도시 공간의 재현은 중요하다.

도시의 표정, 그 속에 담긴 감정들을 잡아내기 위해 로케이션에 특히 공을 들였다. 가장 전형적인 홍콩의 공간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카메라는 소호에서 과거 홍콩의 향취가 남아있는 금정, 주룽반도, 마카오 등 홍콩을 대표하는 풍광들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다.

항공 촬영이 금지된 금기를 깨고 홍콩영화 최초로 무선 조종 헬기로 잡아낸 도시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안팎의 이런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상성>은 장르적 쾌감을 주는 것에 있어서는 그다지 성공했다고 보기 힘들다. 범인의 정체가 비교적 쉽게 밝혀지는 것은 범인의 정체보다 악행에 빠진 이유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애초 의도 때문이라고 해도 에피소드들을 잇는 연결고리와 ‘추적의 플롯’을 따라가는 재미가 크지 않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약점이다.

감각적으로 연출된 화면들에 시선이 쏠리지만,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연출력이 찰지지 못한 것이다.

선한 눈매를 지닌 호감형 배우 양조위가 비정한 악한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지만, 양조위가 악역을 했다는 것 외에 여느 악한들과 특별한 차이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무간도>를 만든 황금콤비의 솜씨라고 하기에, <상성>은 미진한 구석이 많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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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