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 / 루안 브리젠딘 지음·임옥희 옮김 / 리더스북 발행·11,000원

여자들이 굳이 나이 들어 황혼 이혼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랜 세월 결혼생활을 엉망으로 만든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아니면 잔소리하는 남편이 귀찮아서? 개인마다 사정은 다를 수 있겠다.

단순히 심리적인 차원, 즉 화병(火病) 치유책으로 상황을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 신경과의사인 저자는 그 이유가 여자의 뇌가 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감정노동을 할 호르몬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들은 이제 “뇌에 꽂혔던 엄마 뇌의 플러그가 뽑히는” 완경(첫 번째 삶을 완성하고 두 번째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폐경이 아니다)기에 와 있다.

책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시몬 드 보봐르의 혁명적 선언을 배반한다.

여자의 뇌는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램화되어 있고 여자의 일생은 에스트로겐과 옥시토신 등 각종 호르몬들의 부침으로 구별된다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이 반(反)여성주의의 든든한 우군으로 자리잡은 역사를 떠올리면 뜨악하다.

하지만 “차이를 바탕으로 한 차별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새겨져 있어서 성차에 대한 가정은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검토되지 못한 채 지나갔다”는 저자의 고민엔 진정성이 묻어있다. 현실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떠안을 수 없는 수수께끼 투성이기 때문이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짚어내는 책들은 심심치 않게 나와 있고 어느새 대중화되어 있다. 이 책 또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성의 뇌는 언어적 능력과 관계를 맺는 힘, 감성에서 남성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남자들은 하루에 약 7,000개의 단어를 사용하는 반면 여자들은 2만 개의 단어를 사용한다니 말싸움이 안 되는 건 당연한 일.

수정 처음 8주간은 태아의 뇌는 모두 여자의 뇌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Y염색체를 가진 태아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서 커뮤니케이션, 정서에 관련된 중추신경계가 위축되고 편도라는 뇌 부분의 강력한 기능 때문에 ‘욱’하는 기질을 갖게 된단다.

책의 새로움은 여자의 뇌가 변한다는 것이다. 10대 소녀의 뇌는 엄마의 뇌와 다르다. 에스트로겐의 북소리에 리듬을 맞춘 변덕쟁이 딸과 옥시토신이 가져다주는 보살핌의 행복에 빠진 엄마가 어떻게 싸우지 않을 수 있겠나.

사랑에 빠진 여자의 뇌는 또 어떤가. 흔히 사랑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뇌가 시키는 대로!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나서는 게 사랑에 빠진 여자 뇌의 본질. 흥미로운 사실은 바람둥이 남자의 뇌는 바소프레신 수용기라는 게 적단다.

헌신적인 아버지와 충실한 파트너는 태어나는 것이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 그런데 실생활에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물론 여자의 일생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감정의 뇌다. 남자들은 여자가 말하지 않으면, 울지 않으면 상황이 어떤지 절대로 모른다. 여자는 다르다.

“F-15전투기의 작전을 방불케 하는 여자의 뇌는 고도로 정밀한 정서적 기계”라는 저자의 표현이 재미있는데 그만큼 여자의 ‘육감’이 강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석기시대부터 유전자에 새겨진, 자신과 자녀들을 보호하고 말 못하는 아기들의 요구를 예측하기 위한 생존의 도구이기도 하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위험하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남녀의 다름을 무시한다면 이는 또 다른 억압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책의 예처럼, 딸아이에게 인형 대신 소방차 장난감을 안겨준다고 남자아이처럼 놀 수 있는 건 아니다.

(X염색체라도 태아기 때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저자의 바람 또한 남녀가 서로 간의 이해를 통해 보다 나은 삶을 꾸리는 데 있다.

“여자 뇌의 생물학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즉 인생의 단계마다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이해한다면 스스로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조율해나가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자들이 먼저 이 책을 잡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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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 기자 philo9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