츨발은 같고 결말이 다른 3色 에피소드실험정신·소재는 '눈길'… 연기력·무대 세트는 '글쎄'

의자는 무죄, 무대는 유죄? 서울 대학로 소극장 축제에서 상연되고 있는 연극 <의자는 잘못없다>는 다소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작품이다. 소재의 설정 자체나 스토리의 본 의도는 다분히 매력적이다.

제목부터가 솔깃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정작 공연을 구성하는 작전이 그리 면밀하지 못하다.

스토리의 심도보다는 선택과 결말이 가지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여주려는 실험성에 주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오히려 쫓던 토끼를 모두 놓친 인상을 남긴다.

공연은 선욱현 작, 김태수 연출, 박정일과 정현섭(배수백 공동 배역), 조시내, 유일정(전지애) 등의 출연으로 꾸며진다.

명퇴 후 취업 준비 생으로 살고 있던 강명규가 우연히 한 가구점 앞에 놓인 의자를 보고 반하면서 실갱이가 시작된다. 의자는 가구점 주인 문덕수의 딸이자 미대 지망생인 문선미가 만든 ‘비매품’이다.

그러나 강명규는 굳이 의자를 갖기를 고집하고, 결국 문선미의 아버지 덕수를 통해 30만원에 흥정을 끝낸다. 이를 알게 된 강명규의 아내 송지애가 발끈한다. 쪼들리는 백수 생활에 구태여 의자를 갖고 싶어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다.

뒤늦게 자신의 작품을 돈과 맞바꾼 것을 알게 된 가구점의 문선미 역시 아버지와 충돌을 빚는다. 명규, 지애 부부의 다툼과 덕수, 선미 부녀간의 마찰, 와중에 오가는 명규와 선미의 교감이 각각 다른 갈림길로 나아가며 제 각각의 결말을 맞는다.

특징적으로, 이 공연은 출발은 같고 결말은 다른 유사 스토리를 3개 버전으로 차례로 배열하고 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설익은 연기가 아쉽다.

각각 다른 3색의 유사 단막극을 이어가는 만큼 보다 압축되고 순발력 있는 전달력이 필요한 상황임과는 정반대로, 출연진의 묘사법은 다소 구태의연하게 진행된다. 대부분 감정 표현이 투박하고 단순하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며 화를 내는 식의 분노나 절규도 상투적이다. 감정의 섬세한 기복을 읽을 수 없다.

맹목적인 소유욕의 정체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있으나 매력적인 배우가 보이지 않는, 스타 부재의 범작(凡作)이다.

무대 세트나 음악 등 보조 장치들도 매우 단순하다. 특히 세트는 무성의하게 느껴질 만큼 공연장 본래의 현실적 단점들을 그대로 방치한 채 공연이 진행된다. 음악이나 음향효과도 편집이 거칠고 퉁명스럽다. 주변 장치에 대한 배려와 계산이 총체적으로 아쉽다.

현대판 버전 2개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하는 무협 버전은 특히 생뚱 맞다. 정극도 꽁트도 아닌, 애매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삭막하던 2개의 전편에 비해 원색적인 동양식 의상이나 폭설처럼 흩날리는 종이 꽃가루 특수효과마저 코미디처럼 색깔이 튄다. 참신한 재료와 줄거리를 갖추고도 왜 굳이 이 산만한 방식을 택한 것일까? 궁금하다.

‘그냥’ 또는 ‘무조건’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내면에 숨겨진 정체불명의 갈증을 들여다보고 싶었을 관객에게는 일면 실망스러운 배신이다. 달을 보러 갔는데 되레 손가락만 잔뜩 보고 온 셈이다. 말 그대로, 의자는 잘못 없다. 있다면, 스태프와 관객, 우리 안의 오차만 있을 뿐이다. 공연은 9월2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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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