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고 풋풋한 사랑의 줄다리기

엘비스 프레슬리가 왜 세계의 로큰롤 제왕이 되었는지 다분히 짐작할 만 하다. 서울 호암아트홀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는 뮤지컬 ‘그리스’는 로큰롤의 음악적 매력을 배경으로 위트있는 스토리와 함께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막간 휴식시간까지 합쳐 장장 2시간30분에 걸친 공연. 그러나 객석에서는 전혀 피로감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라서 문제다.

작품은 36년전 초연된 미국 브로드웨이의 작품, 짐 제이콥스 극본, 워렌 캐시 작곡의 원작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 무대로 건너온 지도 올해로 5년째다. 현재 공연중인 작품은 박재우 연출 아래, 한국의 최신 트렌드를 다각도로 녹여 넣어 경쾌한 장기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그리스(grease)는 ‘머리에 바르는 포마드 기름’을 뜻한다. 느끼하도록 멀쑥한 남학생들이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결코 모범생이라 할 수 없는 ‘티 버드'파 남학생들과 ‘핑크 레이디’파 여학생들 간에 벌어지는 꿈과 사랑의 줄다리기를 담고 있다. 최고의 인기남 대니는 갓 전학온 여학생 샌디를 우연히 해변에서 만나 새로운 설렘을 경험한다. 대니에게는 수많은 여학생들의 유혹이 쏟아진다.

순진한 샌디는 친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대니를 순수한 청년으로 생각하며 사랑을 품지만 결국 환상이 무너진다.

끊임없는 주변의 방해와 폭로전 속에서 대니와 샌디의 사랑은 흔들리고, 와중에 댄스 콘테스트가 열린다. 거칠고 강인한 여학생 리조의 임신 소식이 터지면서 즐거운 파티는 산산이 깨어진다.

공연은 사소하지만 자주, 오래 웃게 만든다. 대니 역의 김형민(이신성, 김동호 공동 배역), 샌디역의 난아(김현아 공동)를 비롯해 케니키 박시범, 리조 홍미옥, 두디 이필승(이주광 공동), 로저 이창희, 마티 최우리 등이 출연해 신선한 무대를 꾸민다.

거의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무대를 드나들면서도 각 캐릭터의 대사마다 또렷이 집중할 수 있을만큼 대사 정돈이 말끔하다. 캐릭터별 개성도 잘 살렸다.

그리스는 개인기로 승부한 단체전이나 다름없다. 대부분 공연물의 경우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하는 배역은 일부 특정 캐릭터에 전담되는 경향과 대조적으로, 그리스에서는 전 배역에 걸쳐 재치와 유머의 요소가 골고루 안배되어 있다.

연기자들의 풋풋한 연기도 신선하다. 너무 노련하지 않아서 이 스토리에는 되레 어울린다.

로큰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이라도 쉽게 음악에 빠져들 만큼 공연을 떠받치고 있는 음악이 신나고 발랄하다.

흥겨운 리듬감이 객석을 스스로 출렁이게 만든다. 'Summer Nights' 등 광고 배경 음악을 통해 이미 귀에 익은 곡들도 이따금 만날 수 있다. 극중 두디 역으로 나온 이필승의 노래는 특히 주목받을 만 하다.

노래 자체가 가진 파장에 비해 안무는 다소 빈약하게 보인다. 율동 폭이 현재보다 좀 더 적극적이고 대담, 화려해도 좋을 듯 하다.

작품의 웃음 속에는 사랑의 애틋함과 맑은 갈등도 함께 섞여있다. 애매하게도, 기성 세대의 눈으로보면 밉거나 한심해야 할 청춘의 일탈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것은 본인와 상관없는 타인의 이야기라서일까, 젊음에게 허용된 시행착오의 이해와 열정에 대한 기성세대의 공감 또는 그리움때문일까. 9월9일까지 공연된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