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근육질 몸매·슬림한 섹시룩… 화장·액세서리 등으로 여성미 물씬

수더분하고 촌스러운 스타일이 남성다움의 상징이자 미덕이던 시절은 지났다. 6대4의 비율로 정확히 가른 머리, 칙칙한 색의 양복, 기지바지 아래로 보이는 흰 양말, 바지 허리띠에 주렁주렁 달린 열쇠꾸러미, 천편일률적인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해외 바이어들과의 미팅이 잦은 중견기업 대표 최모(52) 씨는 은근한 멋쟁이로 알려져 있다. 트렌디한 양복에 흰색이나 회색 와이셔츠를 입고 화려한 색상의 넥타이를 즐겨 맨다.

여기에 고급스러운 커프스 링크나 고급시계 같은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준다. 아무리 바빠도 옷은 되도록 본인이 직접 고른다. 본인 취향에 맞는 옷을 사기 위해서다. 상대방의 호감을 사야 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외모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남자에게도 중요한 경쟁력임을 깨달은 지 오래다.

사람의 브랜드가치를 가늠하는데 있어 업무능력이 전부가 아니다. 이미지가 그 사람의 브랜드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광고대행사 간부로 일하는 안모(46)씨는 불쑥 튀어 나온 뱃살을 빼기 위해 퇴근 후 만사를 제쳐두고 사내 헬스클럽으로 향한다. 배 나온 직원은 자기관리에 소홀한 것으로 비쳐져 임원승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사활을 걸고 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취업 준비생 김재호(28) 씨는 외식을 자제하는 등 돈을 아껴 쓰는 편이지만 외모를 위해서라면 아낌 없이 투자한다. 최근에는 피부과에 가서 얼굴의 점을 빼는데 20만원 가까이 지출했다.

그는 “또래 남자 친구들은 모두 나처럼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면서 “외모가 취업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남성들의 ‘외모 가꾸기’가 최근 2~3년 사이 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남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달라지고, 외모를 중시하는 남성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 섹시룩 강조하는 신사복

시내의 한 대형서점. 다이어트책 코너에 가보면 착한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젊은 남자가 표지를 장식한 남성용 다이어트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멘즈헬스 백승관 편집장은 “최근 남성복은 길고 슬림하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 남자들도 몸매가 되지 않으면 옷을 사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10년 전 남자 멋쟁이들은 옷만 잘 입으면 됐지만 요즘엔 슬림하고 섹시한 몸매를 갖춰야 멋쟁이 반열에 들 수 있다는 게 백 편집장의 설명이다.

미디어의 연예인들을 통해 남자의 섹시함이 강조되는 것도 ‘섹시룩’의 유행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요즘 CF나 TV드라마, 영화를 보면 능력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모두 스타일리쉬하게 옷을 입을 뿐 아니라 소위 몸매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니엘 헤니, 강동원 등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남성복의 맵시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체형에 맞는 양복을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의 상징이었던 체형미를 살린 섹시룩이 남성패션의 주요 트렌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남성복 브랜드 로가디스는 클래식을 기본으로 하되 원칙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최적의 실루엣을 구현하고 개성을 반영한 ‘스타일 수트(Style Suit)’라는 컨셉으로 3가지 타입의 신사복을 선보이고 있다.

마에스트로는 허리뿐 아니라 어깨와 등쪽 라인도 보다 몸에 밀착돼 슬림하게 보이면서 실루엣이 살아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마에스트로 제로’ 패턴의 경우, 어깨에서 등, 엉덩이로 이어지는 뒤쪽 라인을 보다 몸에 맞게 처리해 입체적인 슬림 패턴을 구현했다.

바지는 지난 시즌까지 유행했던 와이드 팬츠의 인기가 수그러드는 대신 바지통이 좁은 일자 라인이 증가하고, 허리 주름을 없애 하체가 날씬해 보이는 노턱(No Tuck) 팬츠가 증가하고 있다.

‘섹시맨즈룩’은 요즘 세계적인 패션 지향점이 되고 있다. 닥스는 올 가을 더블버튼 여밈에 큰 라펠과 어깨견장 디테일로 인체의 곡선미를 살려주면서 남성적인 스타일을 강조한 트렌치 코트를, 크리스찬 디오르는 다이트한 피팅감을 연출한 ‘디올옴므’를 출시했다.

여기에 꽃무늬 셔츠나 광택감이 있는 실크 소재의 셔츠, 단순한 색상에 그린이나 퍼플 등 화려한 색상이 스티치에 포인트 컬러로 사용되는 등 과거 남성패션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화려한 스타일이 주요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액세서리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구두나 가방, 벨트, 시계 등 남성을 위한 액세서리를 선보이는 토탈샵이 인기를 얻고 있다.

■ 화장은 여성의 전유물? 화장하는 남자가 더 아름답다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화장. 그러나 화장하는 남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학교 화장법 강의시간에 남학생들이 더 많이 몰리는가 하면, 마사지숍에서 피부관리를 받는 남성들도 흔하다.

남성 화장품의 영역은 스킨과 로션을 기본으로 세안제품과 면도용 제품, 에센스, 자외선 차단제, 영양팩 등 그 종류와 기능이 다양해지고 있다. 여성 화장품 못지않은 기능의 비비크림, 컨실러, 파우더까지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남성화장품 시장은 매년 7%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백화점에 남성 화장품 편집 매장이 등장했고, 온라인 종합쇼핑몰에서는 남성화장품 전문숍이 문을 열었다. 대형할인점에서도 남성화장품 매출은 매년 15% 정도 신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사시험을 앞두고 있는 김진화(28) 씨는 최근 남성용 비비크림과 파우더 팩트를 구입했다.

이니스프리 담당자는 “지난 9월 출시한 트러블 디펜스 비비크림 포맨은 잡티와 결점을 감추고 피부트러블 완화 기능까지 갖춰 남성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서울 양재동의 아웃렛 ‘하이브랜드’의 남성 화장품 매장에서는 피지 흡착 파우더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미백이나 주름개선 등의 기능성 남성화장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LG생활건강 ‘보닌’은 여드름라인, 모공 피지라인, 각질라인, 아이라인 등 고농축 허브 성분들을 활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중년 남성들을 타깃으로 한 한방화장품도 인기다. LG생활건강의 궁중 한방브랜드 ‘후’는 지난해 4월 ‘후 군(君)’ 브랜드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후 홈페이지’에 올라온 “백화점 ‘후 매장’에 남성용 한방 화장품 세트는 왜 없느냐”는 남성 소비자들의 글을 참조해 출시한 제품이다.

금남의 벽을 허물고 금지된 스타일에 도전한 남자들. 그러나 남자 안에 존재하던 여성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남자들의 패션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성다움과 씩씩하고 강한 남성다움의 양성적인 매력을 갖춘 남자. 바로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남성성과 여성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남자가 이 시대의 진정한 매력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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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