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와 순수가 묻어나는 섬세한 문체에 감동"
흔히 ‘엽기 과학선생’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 만나보면 그렇게 다소곳할 수가 없다. ‘저 사람이 학생들 앞에서 책은 읽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일단 수업 녹화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분필을 잡고 교단을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보통 오후 4시에 시작된 녹화는 밤 12시에야 끝이 난다. 주 6일을 그렇게 ‘살인적인 스케줄’로 보내면서도 하루 5시간씩 꼬박 교재연구에 시간을 투자한다. 그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서도 기자는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과학책이겠거니’ 생각했다.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피천득 님의 <인연>을 추천하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조용한 말투로 짐작하건대, <인연>은 지극히 그녀의 스타일과 맞는 책이다. 장하나 씨는 예전 여름휴가 때 이 책을 접하게 됐는데, 곱고 섬세한 문체에 감동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 수필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피천득의 <인연>은 젊은 시절 문인이던 그와 일본여인 아사코와 사이의 세 번의 만남을 모티프로 한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피천득은 이 작품을 통해 단아하고 정결한 수필 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샘터사에서는 ‘인연’ 이외에 ‘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 등 80여 편의 작품을 모아 <인연>을 퍼냈다. 선생의 작품은 세상에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연말 베스트 셀러 목록에 빠지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밥 챙겨 먹을 시간도 없죠. 이 책은 저에게 휴가 같은 책이에요. 한 구절씩 읽다 보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거든요.”
그녀는 “뒤돌아볼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30,40대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 생각할 것 없이, 바쁘게 사는 남편에게 먼저 권해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피천득 님은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아이 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면 늘 꿈꾸는 소년처럼 살 수 있다고 말하지요. 아흔에 돌아가실 때까지 아이 같은 웃음을 가졌던 그분의 삶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
■ 책 속의 명문장
***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광영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될 것이다.
***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 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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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