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골수 뮤지션의 저주받은 음악 실험암울했던 시대상 반영한 우수 어린 멜로디 가슴에 파고들어
작가주의 뮤지션을 수용하지 못하는 척박한 국내 음악시장도 문제지만 인기 여부만이 평가의 잣대로 가차 없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리의 후진적 음악 환경은 장르의 편중과 더불어 창작력을 지닌 뮤지션들을 고독한 은둔의 습지로 내몰아왔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헤어지는 마음이야 아쉬웁지만 이제 그만 헤어져요.’ 오세은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혼성그룹 딕 패밀리의 ‘또 만나요’를 들려주면 이해가 빨라진다.
76년 음반 발매를 기점으로 백화점을 비롯한 모든 유흥업소와 상점에서 약속이나 한 듯 공식 폐장 곡으로 사용되고 있는 노래다. 어린이 피아노 학습서 바이엘에도 수록된 이 노래의 작곡자가 바로 오세은이다.
일반 대중에겐 낯선 뮤지션이지만 그의 음반은 모두 대중가요의 희귀 명품으로 통한다. 특히 1집부터 3집까지는 그 희귀성 때문에 공히 100만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음반들로 대접받고 있다.
그 중에서 70년대 대표적인 금지곡 ‘고아’가 수록된 3집은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며 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명반으로 손꼽힌다.
이 음반의 특이점은 홍보용으로 제작된 소량의 비매품보다 공식 발매된 음반이 더 희귀하다는 사실이다. 오세은은 “당시 지구레코드 임정수 사장이 음반이 팔려나가고 있으니 보너스를 줘야겠다고 말했다.
1,500장 정도는 팔린 것으로 들었다”며 왜 자신의 3집이 이토록 희귀한지에 대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3집의 실물을 구경한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도 ‘고아’의 가사가 ‘사회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딱지가 붙여져 전량 회수되었기 때문일 것 같다.
오세은의 음악적 뿌리는 블루스 록이다. 포크 질감이 강했던 1, 2집에 비해 3집은 포크 록, 블루스 등 여러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 당시 창작 블루스 곡의 등장은 유래를 찾기 힘든 선구적 시도였다.
서울 장충동 스튜디오에서 동시녹음으로 3개월 동안 공을 들인 이 음반의 수록곡은 작곡가 변혁이 스트링 편곡한 ‘고아’를 비롯해 총 10곡.
녹음실에 걸려있던 프랑스 여가수의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촬영한 우울한 분위기의 재킷사진은 ‘블루스’음악을 염두에 둔 신선한 발상이었다. 라디오PD 김진성이 끌로드 제롬의 샹송 원판을 들려주며 취입을 권유한 ‘고아’는 이 음반의 화두다.
번안곡이기에 음악적으로 추켜세울 구석이 부족하지만 우수어린 멜로디에 담긴 암울했던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염세적인 메시지는 강력했다. 원곡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도입한 서울음대 출신 여성 성악가의 코러스는 인상적이다.
3집의 또 다른 명곡은 2면 2번째 트랙에 수록된 8분30초의 대곡 ‘당신’이다. 70년대 초에 작곡한 한국 최초의 창작 블루스 곡으로 평가 받는 이 노래는 비범한 오세은의 기타연주와 어우러져 음반의 가치를 배가시키는 주범으로 손색이 없다.
66년 성균관대 신입생 때부터 미8군 록 그룹의 리더로 활동을 시작한 미남가수인 그는 70년대 중반까지 여학생잡지의 사진모델로 활약하며 주목 받았던 인기가수였다. 또한 정미조, 딕 패밀리, 바블껌, 원플러스원, 한영애, 남궁옥분, 김인순, 윤연선 등 인기가수들에게 히트 넘버를 선사한 유명 작곡가이기도 했다.
편곡자로도 명성이 높았지만 독보적인 블루그라스 기타 주법 완성에 이어 실험적 음악영역인 기타산조에 함몰된 그의 이름 석 자는 철저하게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무거운 짐을 들다 혹여 손을 다쳐 연주를 못하게 될까 두려워 한 번도 아내의 장바구니를 들어준 기억이 없는 그는 음악을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둔 외골수 뮤지션이다. 최근 창작 블루스 앨범을 발표하며 돌아온 그의 이름 석 자는 대중음악 강호의 신비한 고수로 각인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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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