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 비빔, 섞임, 융합’의 음식

옛 ‘부?」?비빔밥’기록…조선 ‘골동반’ 표기

백남준 “내 예술세계는 비빔밥 정신”

비빔밥 고유의 다양함, 검소, 단백함 잊혀져

진주 ‘천황식당’, 울산 ‘함양집’ 등 유명

비빔밥은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처음으로 정확한 모습을 드러낸다. ‘부?」沈?繭遮?이름이다. <시의전서>에 “골동반(骨董飯)이 곧 부?」嶽甄蔑굔?한글 표기가 처음 나왔다는 이야기다. <시의전서>는 19세기 말에 출간된 것으로 추측한다. 필자와 출간 연대 모두 불분명하다. 20세기 초반에 발견되었다. ‘부?」沈??어떻게 만드는지 방법도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에 다시 비빔밥이 나타난다.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진주(晉州)비빔밥’이 나타난다. ‘팔도 명식(名食)’을 이야기하면서 경남 진주의 비빔밥을 설명한다.

<시의전서>는 한글 ‘부?」?비빔밥’을 처음 설명했다는 의미가 있다. 그게 모두다. <시의전서>의 비빔밥이 비빔밥의 시작은 아니다. “별건곤”의 진주비빔밥도 마찬가지다. 진주비빔밥이 가장 먼저 등장했다고 해서 곧 진주가 비빔밥의 시작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한반도 전체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다만 진주비빔밥이 맛있다고 설명했을 뿐이다.

<시의전서>에서 비빔밥을 설명하면서, 그리고 진주비빔밥이 등장하면서 오늘날 비빔밥이 ‘하향평준화’ 되었다. 채소 몇 가지를 넣고 육회 혹은 구운 고기 몇 점을 올리고 비빔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통일되었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는 비빔밥이 한두 가지 모습으로 틀에 갇힌 것이다.

그 이전에도 비빔밥은 여러 기록에 나타난다. 흔한 음식이니 별 설명도 없이 ‘비빔밥 먹었다’고 표현한다.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도 비빔밥은 나타난다. 이름은 비빔밥이 아니라 ‘골동반(骨董飯)’일 뿐이다. 이덕무가 박재선(朴在先)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는 친척의 제사에 참석하였다가 새벽에 비빔밥을 먹고 7~8차례나 변소를 드나들었소. 낮에 조금 그치면 그대의 집을 찾을까 하오”라는 문장이 나타난다.

제사를 모신 후 자연스럽게 제사 음식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제사상 나물을 얹은 비빔밥이나 경북 지방의 헛 제삿밥과도 닮아 있다.

오주 이규경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오늘날의 백과사전과 닮아 있다. 수많은 비빔밥이 나타난다. 물론 한글로 비빔밥이라고 하지 않고 골동반이라고 표기했다.

“골동반은 평양의 진품 채소골동반이 있고”라고 했다. 북한 전통음식이라고 소개하면서 엉뚱한 육회와 고기 올리는 걸 북한식 비빔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엉터리다.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비빔밥(골동반)이 있다. 겨자를 올린 숭어비빔밥, 갈치비빔밥, 준치비빔밥, 새로 나온 구운 전어비빔밥, 마른 새우를 곱게 갈아서 만든 비빔밥, 황주(黃州)의 가는 새우를 염장한(젓갈)비빔밥, 새우알비빔밥, 게장비빔밥, 마늘비빔밥, 생오이비빔밥, 기름소금에 군 김을 곱게 부숴 넣은 비빔밥, 산초비빔밥, 볶은콩비빔밥 등인데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진미다.”

오늘날 우리는 이 진미를 다 만나지 못한다. 볶은 콩을 갈아서 콩가루를 만든다. 불과 30년 전에는 밥과 더불어 비벼 먹었다. 도시락으로도 좋았지만 이제는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라고만 생각한다. 비빔밥은 조선시대에 오히려 더 풍부했다. 우리는 신선한 육회를 올렸다고 혹은 좋은 식재료를 사용했다고 자랑할 뿐 비빔밥의 ‘정신’인 다양함은 모두 잊었다. 오이, 마늘, 산초 등을 넣은 담백, 검소한 비빔밥은 잊었다.

고 백남준 선생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비빔밥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외국의 비평가들도 백남준의 예술은 ‘비빔밥’이라고 설명한다. “동양과 서양이 하나의 그릇에서 만난다.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여 제3의 융합된 맛을 드러낸다. 백남준의 예술세계다”라고 표현한다. 오늘날에도 백남준을 기리는 전시회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비빔밥을 제공하는 이유다.

마이클 잭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비빔밥을 여러 차례 찾았다. 잊고 있었던 비빔밥을 다시 상기했다. 어느 항공사에서 비빔밥을 기내식으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어느 핸가는 비빔밥이 최고의 기내식으로 손꼽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뿐이었다.

고 백남준 선생은 비빔밥이 “다양함, 비빔, 섞임, 융합”의 음식이라고 이야기했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나물을 차려놓으면 먹는 이들이 자신들이 편한 대로 고명을 넣고 자신들이 원하는 장류를 선택하여 스스로 비벼먹는 음식이다.

비빔밥은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닮았다. 같은 종류의 스마트폰이라도 원하는 앱(APP)에 따라 그 내용은 전혀 달라진다. 비빔밥도 같은 고명을 두고 선택에 따라 그 내용물이 달라진다. 물론 모두 비빔밥이라 부른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 앱에 따라 그 내용은 전혀 달라진다. 비빔밥과 동일하다.

진주, 울산의 진주비빔밥을 몇집 소개한다. 진주 ‘천황식당’은 노포다. 원형 진주비빔밥을 간직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물로 나오는 탕이 제사상의 탕과 닮았다. 선지해장국 스타일이다. ‘천수식당’은 ‘천황식당’에서 일하던 주방인력이 개업했다, 친척이 개업했다는 말이 있다. 음식은 비슷하지만 간이 조금 더 세다. 가격은 ‘천황식당’에 비하면 낮다. 진주 시장 통의 ‘제일식당’도 오래된 집이다. 비빔밥과 더불어 해장국 류, 술 안주거리도 좋은 집이다. 시장 통임에도 음식은 정갈하다.

울산 ‘함양집’은 지방에서는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집 중 하나다. 업력 80년을 넘겼다. 비빔밥 위에 생전복을 얹었다. 깔끔하고 유기그릇 등도 볼 만하다. ‘보탕국’이라고 부르는 국물도 맛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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