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맛은 메밀함량과 육수가 결정70% 메밀함량이 맛있다는 이유… 발효·숙성시킨 육수 결합돼야 제맛요즘 냉면 '메밀+밀가루+전분' 구성… '을지면옥' '평양면옥' '능라' 유명

분당 평양면옥
제대로 된 냉면, 착한 냉면, 바른 냉면을 알려 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냉면(冷麪)은 이름 그대로 '찬 국수'다. 만약 중국에서 냉면을 시작했다면 밀가루로 만들었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중국과 달리 한반도는 밀가루가 귀했다.

조선시대 시작한 냉면은 바로 '귀한 밀가루, 대체재로서의 메밀'이라는 환경에서 시작된다. 메밀가루는 점도(粘度)가 낮다. 글루텐 성분이 낮으니 국수 가락으로 만들기 힘들다. 칼로 썰어내는 절삭면은 힘들다. 압착으로 면을 만든 다음 바로 뜨거운 물에 넣고 익힌 다음, 바로 냉수처리를 하면 그래도 먹을 만한 국수가 된다. 막국수다.

오늘날 '메밀 100% 막국수, 냉면'이 나오는 것은 곡물을 갈아내는 모터의 속도, 곡물의 높은 밀도 때문이다. 모터의 속도가 빠르고 고운 가루를 만들 수 있으면 점도가 낮은 곡물인 메밀로도 국수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조선시대에는 디딜방아나 맷돌, 절구 등이 가루를 얻을 수 있는 도구였다.

냉면은 메밀의 낮은 점도를 전분(澱粉, 녹말)으로 해결했다. 70% 정도의 메밀가루와 20∼30% 정도의 전분을 섞으면 훌륭한 국수 가락이 가능하다. 요즘은 '메밀+밀가루+전분'으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러 전분이나 밀가루 대신 '듀럼(DURUM) 종 밀가루'를 넣고 "밀가루나 전분을 넣지 않은 100% 메밀 면"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을지면옥
문제는 메밀의 '신분상승'이다. 구황식물이고 전국 어디서나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랐던 메밀이 '귀하신 몸'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밀가루는 금가루고, 메밀은 천대받았지만 지금은 메밀가격이 대략 밀가루 가격의 5배쯤 된다. 게다가 국내생산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니 상당분량을 중국 등에서 가져온다.

자, 좋은 냉면의 메밀 함량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결론적으로는 100% 메밀 냉면이면 좋다. 메밀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가능하면 메밀함량이 높은 것이 좋다. 100%면 메밀 향을 느끼기도 좋다. 그런데 왜 70% 메밀함량이 맛있다고 이야기할까?

첫째는 '원형 평양냉면'이 60∼70% 정도의 메밀함량이었다는 주장이다. 나머지는 감자 전분 등을 사용했으니 그 원형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그렇지는 않다. 당시는 기계 설비나 기술 등이 그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일제강점기 평양 일대에는 냉면 관련 사업이 번창했다. 냉면을 만드는 면장(麵匠)들이 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고난이도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고 그 숫자가 많으니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계, 기술, 재료가 모두 당시보다는 낫다. 더 나은 환경이라면 메밀함량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 예전 방식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조미료 회사들은 평양 언저리에서 직영 냉면 가게를 창업, 조미료를 넣고 냉면을 내기도 했다. 돈도 벌고, 조미료도 파는 상술이었다. 그렇다고 조미료 넣은 냉면이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의 냉면을 반드시 모범으로 삼을 이유는 없다.

육수도 숱하게 바뀌었다. 다산 정약용의 시대인 19세기 후반, 이미 숭채(菘菜, 배추김치)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나타나고 조금 이른 시대의 실학자인 영재 유득공도 <서경잡절>에서 "냉면과 돼지수육 값이 오른다"고 이야기했다. 냉면 육수를 돼지고기 국물로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순조 원년 "냉면 테이크 아웃"에서도 돼지고기 수육이 나타나는 걸 보면 이 무렵에는 상당수가 돼지고기 수육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논현동 평양면옥
평양에서 아버지의 냉면 가게를 돕다가 월남한 이들은 "겨울이면 산으로 꿩을 잡으러 다녔고 냉면 육수를 꿩고기로 했다"고 증언한다. 남쪽에서도 '꿩고기 육수가 평양냉면'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동치미가 평양냉면의 기본이라는 주장은 일견 타당성이 있지만, '반드시'는 아니다. '우래옥'의 경우 늘 돼지고기 혹은 돼지고기+쇠고기로 육수를 내고, 장충동 '평양면옥'의 경우도 고기국물이 주류다. 다산의 '숭채'는 배추김치다. 무로 만든 동치미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이지 "반드시 사용했다"는 아니다.

결국 냉면 육수의 핵심은 '삭힘'이다. 배추김치든 무 동치미든 모두 삭힌, 발효음식이다. 고기국물도 잘 끊인 다음 몇 시간 혹은 하루 이틀 냉장보관하면서 숙성시키는 걸 원칙으로 한다. 결국 좋은 육수는 식재료의 종류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삭혔는가, 얼마나 잘 삭혔는가가 핵심인 셈이다. 발효음식은 가루 음식을 소화시키는데도 도움을 준다. 대미필담(大味必淡)이라는 표현이 있다. 맛있는 것은 담백한 것이다. 100% 혹은 가능한 한, 메밀함량이 높고 충분히 발효, 숙성시킨 육수를 사용한 냉면이 가장 맛있는 냉면인 것이다.

지난 호에 이어 유명한 냉면집을 몇 곳 소개한다. 역시 최고는 아닐지라도 이야기가 있는 집들, 여름이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을지로 '' 필동 ''은 의정부 '평양면옥'과 같은 '계열'이다. 작고한 홍영남씨의 아들, 딸들이 운영하는 집이다. 냉면 가락이 가늘고, 냉면 위에 고춧가루가 흩뿌려져 있다.

필동면옥
논현동 '평양면옥'은 장충동 '평양면옥'의 창업주가 운영하고 있다. 장충동은 창업주의 맏아들이 운영 중이다. 분당 '평양면옥'은 창업주의 따님이 운영 중. 면발이 비교적 굵고 맛은 비교적 담백한 편이다. 만두도 좋다.

최근에는 분당 '능라'가 100% 메밀 냉면, NO MSG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의정부 평양면옥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