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먹고, 즐겁게 만들고, 푸근한 한 끼의 음식…한식의 ‘기본’ 보여

많은 지역 거치며 경험하고, 체득하고, 공부해 내놓는 곰삭은 음식들

“한식 밥상은 결국 장(醬)류와 장아찌, 몇몇 밑반찬들로 결정된다고 믿어”

평범한 삶이다. 웬만큼 고생한 사람들은 ‘소설 한권 분량의 인생 이야기’는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양채영씨의 삶은 평범했다. 인사동 ‘토지’의 대표 양채영씨. 한식집 많은 인사동에서 우리 음식을 제대로 내놓는다는 평을 듣는다. ‘토지’가 ‘음식 맛 아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젊은 층은 별로라고 여기는 곳’ ‘아재들의 맛집’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 대표를 만나서 ‘토지의 음식’에 대해서 들었다.

인사동에서 살다

개인적인 경험부터 밝힌다. ‘토지’와 양채영 대표를 만났던 인연이다.

‘인사동 패거리’라는 개념이 있다. 무슨 단체를 만든 것도 아니고, 일정을 정해놓고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다. 단체가 아니니 참석이 자유로웠다. 퇴근 후 별 일이 없으면 인사동 여기저기에 출몰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1980년대 초반 무렵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났던 사람들이다. 유명인도 있고 무명의 사람들도 많았다. 유명 화가, 시인, 소설가, 신문과 잡지의 기자들, 유명 개그맨도 있었고 무명의 작가들, 무명의 화가들도 많았다. 정치인들도 기웃거렸고 노조 활동을 한 이들, 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이도 더러 있었다. 역술인도 있었고 직업 불분명의 ‘문화 건달’들도 많았다. 산악인으로 외국에 정착한 이도 있고, 와인 전문점을 낸 이도 있다. 식당 주인들도 있고 안타깝게 건강 악화로 먼저 떠난 이들도 있다. 당시 인사동 패거리들은 모두 이 정도의 표현으로도 “아! 그 사람”이라고 모두 기억할 법하다.

1980∼1990년대 무렵, ‘한가했던’ 인사동의 풍경이었다. 더러는 싱거운 사람들이 “전국 모든 깊은 산에 산삼을 심자”고 하면서 제법 단단한 단체를 만든 적도 있었다. 실제 숱한 인사동 패거리들이 몇 해 동안 전국의 산들을 쏘다니며 산삼 씨앗을 뿌렸다.

그중 산채 전문점에 드나드는 종교계 인사도 있었다. 조계종에 속한 이들도 있었고 시골에서 막 올라온 듯 한 스님들도 있었다.

‘토지’의 양채영 대표도 마찬가지. 인사동 패거리는 아닐는지 모르지만 한발의 반쯤은 인사동에 걸치고 있었다. 양 대표는 조계종의 여러 행사에 나타났다. 행사 기획 진행에도 참가하고 모이는 사람들의 수발도 들었다. 밥도 해먹이고 차도 끓였다. 아마도 그 무렵 만났을 것이다.

몇 해 전, 일본에서 불교 관련 유물이 돌아온다고 해서 추운 겨울날 보신각에서 무슨 행사를 했다. 주요 문화재 반환을 기념하는 무슨 식이었나? 대략 그런 일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점심을 먹자고 해서 엉거주춤 따라갔더니 어라? 양채영 대표의 ‘토지’였다.

삼청동 초입에서 ‘다경원’이란 가게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가게는 ‘윤보선 생가’ 가까이 있었다. 잡동사니로 보이는 각종 그릇들, 장신구 등을 파는 가게였다. ‘다경원’을 접고 인사동에서 찻집을 한다고 해서 그런가, 하고 두어 번 들렀다.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밥집 ‘토지’를 만난 것이다. 문을 연지 이제 겨우 7년. 짧은 연륜인데 가게는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음식은 놀라웠다.

문화 관련 정부 부처의 공무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집, 문화계 인사들과 기자들, 크고 작은 기업의 사장들, 정치인들도 자주 드나든다고 했다.

서로 빤하게 아는 처지. 모른 척하고 인터뷰를 하자고 했더니 “갑자기 웬 인터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두어 번 밥을 먹으러 가면서 “사진이나 찍어두자”고 눙치면서 인터뷰를 했다.

여러 곳을 거치며 살았던 삶, 그리고 여러 음식들

양채영 대표. 1958년생이다. 대부분의 1950년대 생들은 태어난 곳에서 자랐다. 인구 이동이 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학교를 다니고, 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잦았다. 결혼 후에도 시가나 친정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을 대처, 서울 등으로 가면 새로운 세계를 봤다.

이사가 잦았던 경우는 한정적이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거나 군인이면 이사가 잦았다. 교편을 잡은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서 이사가 잦았던 경우도 있었다.

양 대표의 경우 일찌감치 이리저리 이사를 다녔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었다. 아버지의 고향은 제주도, 어머니의 고향은 경남 통영이다. 어머니의 고향과 가까운 마산에서 태어나서 제주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다. 순전히 공무원인 아버지 덕분에 이리저리 다녔다.

만약 ‘음식공부’를 한다면 좁은 나라라 할지라도 여기저기 많은 지역을 다녀본 경험이 도움이 된다. 양 대표의 경우 어린 시절 이미 제주도, 경남 남해안 그중에서도 통영을 겪은 셈이다. 시댁은 부산 다대포였다. 통영, 제주와 더불어 부산 지역도 거친 셈이다. 음식은 늘 뒤섞인다.

한반도에 향토음식은 없다. 중앙집권형의 좁은 나라에서, 지역별이 아니라 계층별로 음식이 발달된 나라에서, ‘향토음식’을 찾는 것은 엉뚱한 일이다. 우리의 향토음식은 일본의 지역별 음식을 보고 흉내 낸 것일 뿐이다.

향토음식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여러 지역을 다녀본 것은 음식 만지는 이에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 게다가 통영과 제주 지역이다. 신선한 생선, 반건 생선, 말린 생선을 매만지는 일에 이골이 난 지역들이다. 통영의 나물도 퍽 좋다. 나물과 생선에 관한 한, 통영은 나름의 조리법을 가지고 있다.

“음식점을 열기 전부터 음식에 대한 책은 열심히 봤지요. 음식 조리법에 대한 책들은 거의 대부분 읽었습니다. 특별히 음식을 배우러 다닌 적은 없었고요. 내가 먹었던 음식들, 만들고 싶었던 음식들을 만드는 방법을 눈으로 익히고 머릿속에 기억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지요. 음식점을 내고 또 운영하면서 내가 내놓았던 음식들 그리고 지금도 내놓는 음식들은 거의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음식, 결혼 후 내가 만들어서 내놓고 가족들이 먹었던 음식들입니다. 집안에서 먹었던 음식을 그대로 내놓고 있지요.”

대표적으로 장(醬)이 있다. 지금도 장은 일일이 담는다. 매년 많은 양의 장을 담고 그 장으로 만든 음식을 손님상에 내놓고 있다. 장을 직접 담그니 식당 한쪽 벽에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써 붙일 수 있다.

한식 밥상이 무너진 이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한식은 싸구려의 길을 스스로 자청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짝퉁 간장, 된장, 고추장을 사용한다. 중국 교포들을 고용하여 임금을 낮추었다. 음식 맛이 이상하면 조미료, 감미료를 잔뜩 넣었다. 식재료도 싸구려만 골라서 사용한다. 음식점 음식이 가정의 일상적인 음식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양식, 일식처럼 알록달록 색깔을 더하고 접시 플레이팅에만 신경 쓴다. 그렇게 만든 음식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한식, 한정식이다. 코스별로 내면 마치 양식이나 일식 같아서 비싼 돈을 받아도 될 것 같다.

‘토지’의 음식, 심심한 한상차림 음식

‘토지’의 음식. 간이 고르지 않다. 짠 것도 있고, 싱거운 것도 있다. 대부분의 고급 식당들은 저염식을 내세운다. 그저 짜지 않으니 몸에 좋다고 강변한다. 짠 음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음식 중에는 짠맛이 필요한 것도 있고 심심한 맛을 내세우는 것도 있다. ‘토지’의 음식도 마찬가지. 짠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음식 간이 천편일률적으로 싱거운 것도 아니다. 짜지 않은 장아찌를 내세울 일은 아니다. 예전의 장아찌보다는 덜 짜지만 장아찌 맛을 보여줄 정도의 짠 맛은 지니고 있다. ‘짜지 않은 장아찌’라는 게 ‘국적불명의 맛, 들쩍지근한 단맛일 때가 많다. 먹어보면 짜지는 않은데 달아서 입에 넣기도 무서울 정도로 엉터리인 음식일 때가 많다.

“혼자서 음식 공부를 하면서 절인 배추로 음식을 몇 가지나 만들 수 있는지 혼자서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한식 밥상이라는 게 결국 장류와 장아찌, 몇몇 밑반찬들로 결정된다고 믿습니다.”

밥상에 갈치 김치가 불쑥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양 대표가 먹었던 음식이다. 결혼 후에는 식구들을 위해서 상에 내놓았던 음식이다. 문득 생각나서 ‘토지’에서 만들어 손님상에 내놓았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손도 많이 가고 식재료비도 만만치 않은 음식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이들이 많으니 좀 더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갈치 김치는 비싸지만 손님들 중에는 식재료비로 치면 아주 싼 배추전이나 콩잎 절임을 각별히 좋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콩잎을 몇 종류로 만들어서 내놓습니다. 간장 절임하거나 된장 절임 하면 그걸 좋아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되짚어 질문해도 마찬가지다. 그저 집에서 먹었던 음식을 내놓는다는 정도다. 그 외에는 불교계 행사에 다니면서 ‘큰 절 음식’을 보거나 만들 본 적이 있다. 나름 그게 공부가 되었다고 믿는다. 가정주부로 살아오면서 가족들과 더불어 호남 일대 여행을 퍽 자주 했다. 그때 본 음식들도 ‘토지’의 밥상을 차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스님들도 자주 오시는데, 원래 사찰음식이라는 게 소박한 음식이지요. 제대로 된 된장만 있으면 시래기 된장국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 ‘토지’ 음식은 사찰음식이라기보다는 채식 위주의 식단 정도입니다. 가끔 콩고기를 내놓는 정도지요. 개인적으로는 알록달록한 사찰음식보다는 투박하고 소박한 사찰음식이 그립습니다.”

인터뷰 도중에도 집안의 안마당에 사람들이 얼쩡거렸다. 사시사철 문을 열어놓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불쑥 문 안으로 들어선다. 편한 음식을 만들고 싶다. 대단하고 화려한 음식보다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만드는 사람은 즐겁게 만들고, 먹는 이들은 푸근한 한 끼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드는 음식. 마치 ‘토지’의 안마당 같은 그런 음식을 만들고 싶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인사동 ‘토지’의 양채영 대표. 집안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토지’에서 재현하고 있다. 특별히 음식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좋은 장과 좋은 식재료를 결합하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한상차림으로 보는 ‘토지’의 음식. 한상차림이지만 쉬엄쉬업 내놓는다.

-갈치 김치. 좋아하는 이들이 많아서 올해는 좀더 준비할 예정이다.

-배추전, 수준급이었다. 더 좋았던 것은 동치미.

-콩잎절임이다. 검은 색이 된장 절임

한식 맛집 4곳

서산 ‘소박한밥상’

잘 차린 밥상이다. 소박하다고 하기엔 화려하지만 푸근한 시골 밥상의 냄새가 물씬 난다. 된장, 간장 등의 사용이 아주 좋다.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을 권한다.

강릉 ‘서지초가뜰’

대단하고 화려한 밥상을 기대하면 실망한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시기에는 ‘홀대’를 받는 수도 있다. 창녕 조 씨 집안 반가의 밥상이다. 시골 냄새가 강한 반가의 밥상.

여주 ‘두루담아’

정갈한 나물 반찬들과 버섯전골이 수준급이다. 수준급의 장을 사용한다. 밥상 차림도 단아하지만, 모든 반찬그릇마다 적절한 간을 유지한다. 정성, 솜씨 모두 수준급.

여주 ‘걸구쟁이’

우리나라 산과 들의 모든 나물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밥상. 손이 많이 가는 김부각 등도 눈여겨보아야 할 반찬. 채식 위주고 수준급 사찰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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