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드문 스웨덴 음식 전문점…소박하나 재료 맛 제대로 살린 가정식

스웨덴 남자와 한국 여자, 중국 유학 중 만나 …‘질’로서의 삶 위해 외식업

절인 청어ㆍ호밀빵ㆍ감자ㆍ스납스 등 스웨덴 주식 메뉴로…스웨덴 개업도 계획

을지로 ‘국립의료원’ 부지 안에 ‘스칸디나비아 클럽’이 있었다. 바이킹 요리.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음식을 내놓는 뷔페 레스토랑이었다. 남산 3호 터널 입구. 헴라갓. 스웨덴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스웨덴 가정 음식을 내놓는 단출한 음식점이다. 주인 부부는 스웨덴 남자와 한국 여자다. ‘대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스웨덴 남자와 홀을 책임지는 아내 오수진 씨를 만났다.
우리 부부 DNA는 여행 유전자?

처음 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스웨덴 남자와 한국 여자? 묘한 조합이다.

스웨덴은 멀다. 물리적으로도 멀지만 심정적으로도 가깝지 않은 땅이다. 한국전쟁 때 파병을 한 나라다. 우리나라를 도왔다. 복지시설이 좋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좋은 요소를 모두 갖춘 나라다. ‘이케아’와 그룹 ‘아바’의 나라다. 좋은 자동차도 만든다. 한국이 본 받고 싶은 나라, 이른바 강소국이다.

그뿐이다. 우리는 스웨덴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룹 ‘아바’가 스웨덴 출신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지만 스웨덴이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음원 수출국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스웨덴 여행객도 그리 많지는 않다. 우리는 스웨덴을 거의 모르고 있는 셈이다. 힘이 센, 경제가 안정적인, 잘 사는 중립국 정도로 여긴다.

그런데 스웨덴 남자라니. 그리고 우리가 잘 모르는, 멀고 먼 나라의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자라니.

“대니에게 한국은 ‘HOME AWAY HOME’입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또 하나의 집이죠. 대니와 저는 공통의 유전자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여행에 대한 열망이죠. 앞으로 어떤 일을 할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지만 둘이서 늘 ‘다음엔 어딜 가지?’라고 의논을 합니다. 베짱이처럼 놀러 다닐 궁리만 하니 큰일이긴 합니다.”

‘대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스웨덴 남자의 본명은 다니엘(Daniel Sigvard Wikstrand) 씨다. 다니엘, 오수진 씨는 1972년 생으로 동갑이다.

두 사람은 중국에서 처음 만났다. 그곳에서 여행을 했고, 직장 일을 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운영했다. 사랑했고 결혼하고 어느 순간 다니엘 씨는 아내 오수진 씨의 조국 한국으로 왔다. 여기에 영원히 머물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지금 계획으로는 5년쯤 뒤에 이번에는 다니엘 씨의 고향 스웨덴으로 갈 것이다. 이번에는 스웨덴이 오수진 씨에게 ‘HOME AWAY HOME’이 될 터이다. 물론 계획이다. 그 무렵이 되면 또 어떤 일이 닥칠는지 모른다.

쓰촨성 청두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다니엘 씨는 스웨덴 남부 지방 스코나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여행과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스웨덴 사람에게 여행은 일상이다.

스웨덴 인들은 누구나 아는 농담이 있다.

“지구 상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든 사고가 나거나 사건이 터지면 반드시 스웨덴 사람이 하나는 끼어 있다.”

국민의 10%는 늘 해외에 있다는 말도 있다.

다니엘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그의 곁에는 늘 다른 나라를 오가는 일상이 있었다. 덴마크 계 완구 체인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회사 일로 중국에서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어를 익혀야 했고, 중국 분위기도 알아야 했다. 중국에 장기 체재할 비자도 필요했다.

쓰촨성 청두.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2003년. 두 사람 모두 서른 두 살이었다.

다니엘 씨의 학교생활은 그리 성실하지 않았다. 수업 대신, 그는 중국여행을 택했다. 티베트, 신장 등을 오갔다. 중국을 보고 느꼈다.

오수진 씨는 서울 태생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과 출신이었지만 미국에서 순수미술, 그래픽 디자인 등을 공부했다. ‘좋아하는 것과 평생 직업으로 여기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으로 마케팅으로 방향을 바꿨다. 졸업 후 미국에서 3년간 브랜드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되돌아보면, “일이나 성공에 대해서 욕심이 무척 많았던 시절”이었다. 2000년 귀국, 통신 장비회사에서 해외 영업 일을 했다. 중국 시장을 알게 되었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쓰촨성 청두 시청에 있는 지인의 도움으로 청두에 자리 잡았고, 그곳에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지점이다.

다니엘 씨는 여행을 다녔고 얼마간씩 직장생활을 했다. 오수진 씨는 홍콩, 샤먼, 상하이, 쑤저우 등을 떠돌며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청두에서 다시 만났고, 2008년 쑤저우에서 결혼에 이른다. 두 사람 모두 서른일곱 살이었다.

삶을 바꾸자, 외식업을 해보자?

“제가 미국에서 서울로 왔을 때 대리급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일을 할 때는 한국식으로 치면 임원급이 되었지요. 승진도 순조로운 편이었고 연봉도 높았습니다. 옆도 보지 않고 열심히 달렸죠. 대니와는 달랐죠. 대니도 중국의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했지만 대니는 늘 주변을 보는 편이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저와는 달랐죠. 저는 대니와 만나면서 옆을 볼 줄도 알고 진정한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를 가진 셈입니다. 서른다섯 살 무렵, 대니와 중국에서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깨달았죠. 내가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양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질로서의 삶.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쳉두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공동운영으로 ‘KAFFESTUGAN’의 문을 연 것도 바로 ‘질’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결혼 후, 다니엘 씨 역시 중국의 기업에 취업, 일을 한 적이 있지만 그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더불어, 같이 지내자. 옆을 돌아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는 삶을 살자.

카페를 운영하며 두 사람은 하루 종일 더불어 지낼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 더불어 지내는 시간은 짧다. 앞날의 행복을 위하여 현재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 두 사람은 그런 삶이 싫었다.

더불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외식업 관련 일이었다. 청두에서 스웨덴 식 커피 전문점 ‘KAFFESTUGAN’을 운영한 이유다.

디저트로 내놓는 머렝.
‘HOME AWAY HOME’, 한국으로 가자

“대니와 저는 국적도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참 닮은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죠. 가족이나 가정에 대해서는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온 것은 오수진 씨의 가족들 때문이었다. 오수진 씨는 여형제만 셋이다. 다니엘 씨는 외동아들이다. 양쪽 모두 부모님이 살아계신다.

두 사람은 2014년 한국으로 왔다. 오수진 씨 부모님들의 건강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해 5월, 청두의 카페를 접고 6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8월, 크게 고민하지 않고 현재 자리에 스웨덴 가정 음식점 ‘헴라갓 HEMLAGAT’을 열었다. 다행히 다니엘 씨가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중국에서는 카페였지만 한국에서는 스웨덴 가정식 음식이었다. ‘HEMLAGAT’ ‘집에서 만든’이라는 뜻이다. ‘헴라갓’은 ‘집에서 만든 음식 같이’ 편안하고 소박한 음식을 내놓는 집을 뜻한다.

스웨덴 전문 음식점은 드물다. 1958년, 스칸디나비아 클럽이 처음 생겼다. 의료시설이 열악한 한반도에 스칸디나비아 세 나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한국의 의료시설을 돕기 위하여 병원을 세우고, 의료 장비와 의료진을 파견했다. 병원 옆의 공간에 그들을 위한 음식점, 클럽을 세웠다. 오래지 않아 한국사람들에게도 그 공간을 열었다.

오수진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 공간에 드나들었다. 이제 그녀는 스웨덴 남편과 더불어 스웨덴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헴라갓'은 20석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레스토랑이다
‘헴라갓’의 음식들

절인 청어, 호밀빵, 감자, 스납스 등은 스웨덴 음식의 키워드다.

북해의 푸른 바다에서 건져 올린 등 푸른 생선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냄새가 심하기로 소문난 수르스트뢰밍은 청어를 발효시킨 음식이다. 스웨덴에서도 북쪽에서 즐기고 남부 지역에서는 그리 널리 즐기지 않는다. 청어, 고등어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하고 스웨덴에서도 익숙한 식재료다. ‘헴라갓’에서는 청어를 이용한 음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익힌 것이라도 뜨거운 상태가 아니라 콜드디시, 차가운 상태로 내놓는다. 우리와는 다르다.

감자 요리는 대단하다. 호밀과 더불어 감자는 스웨덴 인들의 주식이다. 추운 지방이다. 곡물 농사는 그리 쉽지 않다. 감자가 주식이 된 이유다. 기름에 튀긴 것, 으깬 것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내놓는다. 으깬 것의 입자 굵기도 여러 종류다. 거친 것도 있고 아주 고운 것도 있다. 수프의 재료로도 널리 사용된다. 감자를 돼지고기, 쇠고기 등 육류와 더불어 내놓는다.

스납스는 스웨덴 식 보드카인 셈이다. 보드카와 달리 스웨덴 특유의 여러 종류 향을 사용한다. 각각 맛이 다르다. 증류주니 독하지만 독특한 향이 아주 좋다.

과일이 잘 자라지 않는 추운 곳이다. 마가목이나 링곤베리 등을 잼으로 만들거나 향을 내는데 사용한다. 열매 모양은 옷감 등에 문양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햄라갓’에 가면 홀 담당인 오수진 씨에게 메뉴를 맡기면 된다. 메뉴판을 보고 ‘오늘의 점심’이나 ‘오늘의 저녁’이 뭐냐고 물어보면 상세히 추천, 설명해준다.

마치 우리의 한상차림처럼 큰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아내는 것도 재미있다. 소박하지만 재료의 맛을 제대로 살린 음식들이다.

글ㆍ사진=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설명>

- ‘햄라갓’ 주인인 다니엘, 오수진 부부는 1972년생 동갑이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만났다. 한국으로 온 지 4년. 취미는 공포영화 보는 것. 여행은 취미가 아니라 일상이다.

-‘햄라갓’ 메뉴. 오른쪽 위는 감자 요리다. 채썬 다음 뭉친 만든 감자요리가 특이하다.

- 감자, 연어, 완두콩으로 만든 음식

-스웨덴의 크리스마스 음식이다. 크리스마스 계절에 ‘헴라갓’에서 만날 수 있다.

-스웨덴 음식의 필수요소인 감자, 등 푸른 생선, 호밀빵 등을 이용한 음식. 오픈 샌드위치다.

[이색적인 외국 음식점 4곳]

예티

인도, 네팔 음식 전문점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인도음식점’으로 생각한다. 음식이 비슷하다. 여러 종류의 카레 소스를 맛볼 수 있다. ‘사모사’도 추천할 만하다.

사마르칸트

우즈베키스탄 음식 전문점이다. 인근에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이 많다. 비슷하지만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쇠고기, 양고기 등이 주류다. 날 채소 등을 사용하는 거친 모양이다.

페르시안궁전

가장 오래된 중동 음식 전문점이다. 인도가 아니라 이란 등 중동 방식의 카레를 내놓는다. 매운 카레도 있다. 내부 분위기도 정갈하고 벽을 장식하는 그림들도 볼 만하다.

마라케쉬나이트

국내에서 보기 드문 모로코 음식 전문점이다. 샌드위치, 햄버거 방식의 음식도 있다. 밀가루 빵과 고기를 북 아프리카 방식으로 먹는 셈이다. 고기는 양고기, 닭고기 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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