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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맛집(329)] ‘삼해소주가’ 김택상 대표

“명주를 넘어서 외국인도 인정하는 나라를 대표하는 술 빚고 싶어”

삼해소주로 어머니가 ‘무형문화재 제8호’ 명인으로 선정돼

술 빚는 일에 전력한 김 대표 ‘8호 명인’ 이어받아

옛 정신 살리되, 새로운 방식을 찾아 삼해소주 질 높여가

서울시 유일의 ‘식품명인’…‘국가대표 술(國酒)’ 제조 희망

  • 소줏거리 앞에서 김택상 대표.
삼해소주가(三亥燒酒家).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142. 크지 않은 공간이다. 대표 김택상.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전통술’을 만든다.

조선 말기, 김 대표의 선대(先代)는 호조참판을 지냈다. 그분이 충청도 대천(보령)으로 낙향했다. 고향은 서울이자 대천이다. 김 대표의 어머니가 윗대부터 전해오던 ‘삼해소주’를 빚었다. 어머니를 이어 서울의 전통식품 명인 8호를 잇고 있다. 김택상 대표를 만났다.
  • 김택상 대표의 어머니 이동복씨는 1993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선정되엇다.
소주는 증류주다

용어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김택상 대표가 빚는 술은 삼해소주다. 삼해주와는 다르다. 소주는 증류주(蒸溜酒)다. 중국의 바이주(白酒), 서양의 위스키도 마찬가지. 모두 증류주다. 중국 바이주는 ‘고량주(高粱酒)’라고도 부른다. 수수로 빚은 증류주다. 서양의 위스키도 마찬가지. 쌀이 아닌, 우리가 잡곡이라고 부르는 곡물로 빚은 증류주다. 보리, 호밀, 옥수수 등으로 빚는다. 삼해소주는 쌀, 찹쌀 등으로 빚는다.

증류주는 곡물을 많이 사용하여 빚는 술이다. 먼저 곡물을 발효시킨다. 막걸리, 청주, 약주 형태의 술이 나온다. 가장 높은 도수는 대략 19도 정도다. 발효주를 바탕으로 증류 과정을 거치면 소주 같은 증류주를 얻을 수 있다. 도수가 높다. 대부분 40도를 넘긴다. 술의 양은 적다. 잡곡 등을 사용하면 색깔이 고운 술도 얻을 수 있었다.

  • 소주는 사용하는 곡물이나 과일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삼해소주’는 ‘삼해주’와 다르다. 증류주와 발효주의 차이다.

옛 기록에는 ‘삼해주’가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유암 홍만선(1643-1715년)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제2권 치선(治膳)”에도 ‘삼해주’가 있다.

“삼해주(三亥酒)는, 정월 첫 해일에 매 씻은 찹쌀(粘米) 1되를 가루로 만들어 묽은 죽을 쑨다. 식은 뒤에 누룩가루ㆍ밀가루를 각각 1되씩 섞어 독에 넣는다. 다음 해일(亥日)에 매 씻은 찹쌀ㆍ멥쌀 각각 1말로 구멍 떡(孔餠)을 만들어 쪄서 식힌 뒤 먼저 빚은 술밑에 섞어 독에 넣는다. 세 번째 해일에 매 씻은 멥쌀 5말을 쪄서 식힌다. 끓는 물 세 놋동이(鍮盆)를 식혀 한 데 넣고 석 달 지나면 쓴다. 속방(俗方).”

홍만선은 17∼18세기를 살았다. 조선 숙종 연간이다. 삼해주를 만드는 방식을 ‘민간’에서 얻었다고 했다. ‘속방(俗方)’은 민간의 방식을 이른다. 숙종 이후인 영ㆍ정조시대에는 ‘민간의 삼해주’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 술이 괴기 시작하는 모습.
삼해소주를 찾아서

‘삼해소주’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보기 쉽지 않다. 삼해주는 고려 말 문신 이규보(1168∼1241년)의 <동국이상국집> 제6권에 나타난다. “(전략) 다시 한 병의 술 가져오니 정이 두터운데/더구나 삼해의 맛 또한 뛰어났네”라는 시구다.

이규보의 시대는 몽골의 고려 침략기 혹은 그 이후다.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증류식 소주(燒酒)는 몽골 침략기에 한반도에 전래되었다. 이규보의 시에 나타나는 ‘삼해주를 가져온 이’는 최추부(樞府), 최 씨(최공연)로 중추원의 고위직 관리다. 당대의 실권자가 이규보를 찾았을 때 그 술이 귀한 증류주 ‘삼해소주’라 하더라도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해(亥)’는 돼지, 혹은 돼지날(亥日]을 뜻한다. <산림경제>의 ‘삼해주’ 빚는 법은 “정월 첫 해일에 술을 빚기 시작해서 정월의 중, 하 해일에 덧술을 하고, 석 달이 지나서 술이 완성된다”고 했다. ‘증류주 삼해소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주가 필요하다. ‘삼해소주’와 ‘삼해주’를 연관시키는 이유다.

<산림경제>에 의하면 삼해주는 12일씩 모두 두 번의 간격을 두고 24∼25일 만에 빚어야 한다. 그 후 석 달을 묵혀두면 술이 완성된다.

  • 옛 정신을 따르되 새롭게 발전한다. 사진은 유럽의 소줏고리다. 금속제품.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표현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왜 정월일까요? 냉장 냉동 시설이 없던 시절입니다. 추운 겨울에 술을 담그면 술 익는 속도가 늦어집니다. 술이 괴고, 익는 속도가 느리면 맛은 깊어집니다.”

곡물도 이 무렵이 가장 맛있다. 늦가을에 수확하고 시간이 흐른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곡물의 맛도 깊어진다.

‘삼해소주’를 위한 술을 만들 때, 김 대표는 나름의 방식을 찾아냈다. ‘법고창신’. 옛 정신을 살리되, 새로운 방식을 찾는다. ‘삼해소주’는 이른바 삼양주(三釀酒)다. 세 번에 걸쳐 빚는 덧술 방식이다. 술 빚는 이들은 ‘농(濃)담금’이라고 부른다.

‘밑술’도 다른 부분이다. <산림경제>와는 다르게 첫 ‘돼지날’에 술을 빚기 전 미리 밑술을 준비한다. 쌀을 가루 내어 죽으로 마련한다. 같은 양의 누룩을 섞는다. 술은 경기도 파주의 양조장에서 빚는다. 서울 삼청동의 공간은 주로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체험 학습 등을 진행한다.

‘일양(一釀)’ ‘이양(二釀)’ ‘삼양(三釀)’의 과정을 거치며 쌀, 찹쌀 등을 누룩과 더하여 술을 빚는다. 덧술을 할 때마다 그 이전에 사용한 누룩 찌꺼기들은 빼낸다. ‘잡내’가 나기 때문이다. 매번 술의 도수가 높아진다. 술이 완성되면 증류 과정을 거친다. 삼해소주가 탄생한다. 덧술을 하는 시기도 <산림경제>와는 다르다. <산림경제>의 시기는 12일 기준이다. 김 대표는 36일 기준으로 덧술을 한다. ‘농담금 삼양주’를 바탕으로 증류한 삼해소주는 맛이 단 편이다. 과일향이 난다.

“옳고 그르다는 뜻이 아니고,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화근내’가 나는 소주보다는 맑고 깔끔한 맛을 좋아합니다.”

‘화근내’는 ‘불 냄새’라고도 한다. 술 빚는 이들이나 주당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더러는 사투리로 ‘낸내’라고도 한다. 증류 과정에서 생기는 냄새다. 이 냄새를 맡으면서 “이게 진짜 소주”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이 냄새를 싫어하는 이도 있다.

  • 소주는 서양의 위스키, 중국의 고량주, 일본의 고구마 소주같이 증류주다. 외국인이 소줏고리에서 증류과정을 체험하고 있다.
  • 체험학습 수강생이 담근 술을 확인하고 있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김택상 대표에게 전해지다

김택상 대표. 1951년생이다. 충남 대천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보령시다. 양조장 집안이었다. 1950년대 지방. 양조장 주인은 유지였다. 남자 형제만 여섯.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서울로 유학을 떠났고 대학까지 마쳤다.

어머니는 시어머니로부터 술 빚는 법을 배웠다. 삼해소주의 시작은, 김 대표의 기억으로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라고 술 빚는 법을 혼자서 익혔을 리는 없다. 그 윗대, 먼 그 윗대로부터 배웠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술 빚는 것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양조장 냄새, 술 냄새가 익숙했지요.”

6형제 중 셋째다. 술 빚는 일을 물려받은 이유도 간단하다. “손재주가 있어서”였다. 김 대표의 ‘손재주’는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2016년 서울시로부터 ‘식품명인’ 인정을 받았다. 서울시 유일의 명인이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방학 때 대천에 내려가면 양조장 일을 도왔습니다. 형들이나 형수, 동생들 모두 양조장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각자 하는 일도 있었고요. 결국 제가 물려받았습니다.”

경영학을 공부했다. 평범한 삶이었다. 대부분 그러하듯 그도 적당한 직장에 들어갔다.

“1990년 무렵, 서울시에서 ‘서울의 전통적인 음식, 술’을 찾다가 우연히 어머님을 찾았습니다.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삼해소주’ 빚는 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시에서 어머님께 연락을 한 것이지요.”

경복궁에서 시연회를 하고, 농협 등에서 초청하는 각종 행사에 참석해서 삼해소주를 소개했다. 1993년 어머니는 ‘무형문화재 제8호’ 명인으로 선정되었다. 삼해소주를 빚는 장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어머님이 장인, 명인으로 인정을 받은 후, 여러 행사에 다니셨습니다. 무형문화제로 지정되고 나서 ‘보조금’도 받으셨고요. 행정적인 부분들, 돈을 쓰고 나면 영수증 처리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일이 많은데 그걸 연로하신 어머님 대신 제가 했지요. 술 만들거나 행사 참여하는 것도 늘 곁에서 돌봐드리고요.”

김택상 대표가 ‘무형문화재’가 된 과정도 쉽진 않았다. ‘전수장학생’ ‘이수자’ ‘전수조교’ 등 생소한 용어들이 등장한다.

“어머님이 1927년생이십니다. 이제 ‘삼해소주’를 빚는 일도 어렵지요. 다섯 해 전쯤에 제가 ‘무형문화제 8호’를 물려받았습니다. 어머님은 ‘명예보유자’로 남으셨고요. 술 빚는 일에 뛰어들면서 고통도 많이 겪었습니다. 당장 경제적으로 힘들었지요. 직장도 그만두고 어머님 곁에서 행사 준비하고 따라다니고, 술 빚고 하느라 정작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요.”

  • 삼청동에 자리한 이유는 내외국인들에게 좀더 널리 삼해소주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술을 빚고 싶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전수조교가 되었을 때 20만 원쯤의 돈을 받았다. 1990년대라고 하지만 직장 봉급에 비하면 초라한 액수.

“술 빚는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반대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불쑥 술 빚는 일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참 잘 결정했어요”라고 선뜻 박수칠 ‘아내’는 드물다. 역시나 술 빚는 일을 하면서 예상했던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그 어려움의 깊이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퍽 고단한 시절이었다. 막노동도 해봤다. ‘번듯하게 사는 형제가 많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형제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돈도 보태고, 일손도 보탰다. ‘술 빚는 양조장’에서 무료 봉사를 한 이도 있다.

“돈이 없으면서도 삼청동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삼청동이 서울의 ‘중심’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선대가 사시던 곳이니 고향이나 마찬가지지요. 삼청동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삼청동에는 여러 분야의 ‘장인’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도 이름만 ‘장인’ ‘명인’이 아니라 실제로 ‘나라의 술’ ‘국주(國酒)’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명주를 넘어서서 외국인들도 인정하는 나라를 대표하는 술을 빚고 싶습니다.”

글ㆍ사진=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

[삼청동 주변 맛집 4곳]

호반
오랫동안 재동에서 영업하다가 낙원동으로 이사했다. 대창순대와 콩비지찌개, 모양 없이 담근 물김치가 압권이다. 양도 푸짐하고 음식 맛도 수준급이다.

한뫼촌
무용가 고 최승희가 살던 집으로 알려졌다. 작지만 정갈한 마당이 있고 ‘ㄷ자 집’에 방마다 식탁을 놓는다. 정갈한 한식이다. 그릇, 인테리어, 음식 모두 수준급.

병우네
삼청동 일대에서는 호남 해산물 중심 전문점이다. 홍어 등과 더불어 민어회, 조림, 탕이 수준급이다. 가벼운 식사로는 민어탕(맑은 탕)이나 조림 등이 좋다.

라면55번지
라면이 소재가 된 한식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라면을 사용하되 국물, 수프 부분은 식당 내부에서 만들어서 내놓는다. 북어, 쇠고기, 각종 야채 등을 잘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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