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스티브 잡스 추도식 참석 후 팀 쿡과 회동

고(故)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추도식에 참석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19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애플. 표면적으로 양사는 적군이다. 삼성은 '갤럭시 시리즈', 애플은 '아이폰 시리즈'를 앞세워 시장 점령을 노린다. 또 양사는 현재 9개국에서 특허 소송이란 '전투'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으르렁대는 관계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애플은 삼성에서 부품을 공급받는, 삼성은 애플에 필수 부품을 제공하는 '돈독한' 협력ㆍ상생 관계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19일 김포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귀국 직후 이 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보내는 분을 추도하면서 행사가 잘 끝났다. 잡스가 돌아가시기 전 어떤 추도식을 원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간결했다"면서 "추도식 다음날 사무실로 팀 쿡(최고경영자, CEO)을 찾아가서 2, 3시간 만났다. 잡스 이야기, 지난 10년간 어려웠던 이야기, 위기 극복, 양사 간 좋은 관계 구축 등이 화제의 중심이었다"고 말했다. 삼성과 애플의 '경쟁적 동반자' 관계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전면전은 지양 그러나 국지전은 계속

이 사장의 추도식 참석은 팀 쿡 애플 CEO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이를 놓고 업계에서는 "이번 추도식을 계기로 양사가 전격 화해 모드로 돌아선 것 아니냐"고 해석하고 있다.

애플의 초청에 대한 답례 차원의 추도식 참석이긴 했지만, 이 사장이 추도식 다음날 쿡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양사가 표면적으로는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전면전으로 확대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양사가 반도체 분야에서 최대 고객과 공급자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죽기 살기로 싸울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2013, 2014년에도 우리가 더 좋은 부품을 공급할 것에 대해 얘기했다"는 이 사장의 설명은 양사가 앞으로도 최소 3년간은 '공생관계'를 유지할 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CEO들의 전격 회동으로 양측이 전면전은 피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국지전은 계속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삼성은 잡스 추도식이 열린 지난 17일 일본과 호주에서 아이폰 4S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추가 소송 의향에 대해 이 사장은 "필요하면 더 할 것이고, 필요 없으면 안 할 것"이라며 "앞으로 생각을 더 해봐야 알 것 같다"고 원론적이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애플 아이폰 4S를 소개하고 있다.
#삼성 1승3패 후 1승으로 분위기 반전

삼성은 애플과 소송 전쟁 초반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애플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독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삼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중 독일(2건)과 호주 법원에서 승소했다. 반면 삼성은 지난 8월 네덜란드에서 1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지난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법원은 "표준기술은 특허료를 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프랜드(FRAND) 조항을 지켰을 뿐인데 삼성이 이를 특허 침해로 왜곡했다"는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상 기각 결정이다.

반면 법원은 "삼성이 표준기술을 독점하려 한다는 애플의 주장을 기각해 달라"는 삼성의 주장은 받아들였다. 다만 "미국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인 갤럭시 시리즈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애플의 요구에 대해서는 결정을 유보했다.

삼성으로서는 100% 만족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 셈이다. 자국 기업에 우호적인 미국 법원이 사실상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준 만큼 추후 진행될 다른 나라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허 소송은 노이즈 마케팅?

애플과 삼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애플이 출시하는 아이폰 시리즈에 삼성의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아이폰 5에 탑재될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공급도 삼성전자가 맡을 것으로 보인다. 애플로서는 제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안정적으로 부품을 수급하는 데 삼성만한 파트너가 없다.

애플은 삼성과 관계가 악화된 이후 부품 공급선 다변화 차원에서 여러 업체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공급하는 낸드플래시 반도체는 하이닉스 반도체와 일본 도시바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삼성의 손을 놓지 못했다.

이 사장이 쿡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애플이 부품 공급자를 전격 교체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일부 외신은 "아이폰 5에 들어갈 차세대 AP칩인 'A6'를 대만의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A6'는 삼성전자가 생산했던 'A4', 'A5'의 후속이다.

삼성전자로서도 최대 고객인 애플과 결별할 경우 후유증이 클 수밖에 없다. 삼성으로서는 스마트폰 업계를 선도하는 애플에 부품을 공급한다는 상징성과 함께 최대 고객이라는 실리를 포기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양사의 특허 소송이 마케팅 측면에서는 되레 득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양사의 치열한 공방전이 세계 소비자들의 이목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노이즈(Noise) 마케팅' 효과로 이어지면서 시장에서 삼성과 애플이 '양강 구도'를 굳히는 촉매제가 된다는 얘기다.

실제 스마트폰 소비자들 사이에는 '삼성 아니면 애플'이라는 인식이 점차 뿌리내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팔로는 서로를 부둥켜안으면서도 발길질을 멈추지 않는 삼성과 애플의 행보가 이래저래 재미있다.

'해결사'로 팀 쿡 애플CEO와 회동… 후계구도 본격화

●삼성 이재용 사장은

이재용(43)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그룹 후계자라는 건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이 사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이다.

스티브 잡스 추도식 참석을 위한 미국 방문을 계기로 이 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거라는 관측이 많다. 차제에 삼성의 후계구도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 사장과 비슷한 연배의 정용진(43) 신세계 부회장, 정의선(41)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은 그룹 내에서 이미 확고한 후계구도를 구축했다.

지난 17일 거행된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는 40여 명만이 참석했고, 아시아인 중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 사장 2명뿐이었다. 세계 IT업계에서 이 사장의 위상이 확인된 셈이다.

그간 이 사장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조금은 소극적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극도로 자제해 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공식석상에서 취재진의 질문에는 "회장님께 여쭤보라"는 답이 많았다.

이 사장은 그러나 잡스 추도식에 참석하고 귀국한 19일 기자들의 질문에 비교적 상세하게 답했다. 어조도 단호하고 힘이 있었다.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업계에서는 "이 사장이 '해결사' 임무를 안고 팀 쿡 애플 CEO를 만났을 것이고, 알려진 것 이상으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손에 쥐고 돌아온 것 같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실제 이 사장은 쿡과 2, 3시간에 걸친 회동에서 확실한 소득을 챙겼다. 삼성전자는 2014년까지 애플에 부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최소 3년간은 '든든한' 고객을 확보한 셈이다.

이 사장의 부상(浮上)은 연말로 예정된 삼성그룹 인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계열사별로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 중인 삼성은 조만간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럴 경우 이 사장은 후계구도를 본격화함과 동시에 그룹 내에서 다시 한 번 위상을 확인하게 된다.

이병철 회장 "IBM 대적할 인물" 1983년에 잡스 극찬

●삼성-애플의 인연은

삼성과 애플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적확(的確)한 표현은 없을 듯 하다. '애증관계'. 삼성은 창업주-현 회장-차기 회장 3대에 걸쳐 애플과 관계를 맺고 있다.

삼성과 애플의 인연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故) 스티브 잡스는 1983년 11월 서울 중국 태평로 삼성 본관 호암 집무실에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을 만났다. 73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던 이병철 회장은 잡스를 접견한 뒤 "굉장히 훌륭한 기술을 가진 젊은이다. 앞으로 IBM과 대적할 인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애플이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면서 이건희 회장도 이따금 잡스를 만났다. 또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도 미국 애플 본사를 자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잡스는 아이폰 샘플을 직접 가져와 특징을 자세히 설명해 줬다.

삼성과 애플은 1980~90년대 삼성과 소니처럼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니가 삼성의 가장 큰 고객이었지만, 애플이 아이폰 시리즈로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면서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 됐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 154조6,303억원 중 소니(4.4%ㆍ6조8,000억원)가 1위, 애플(4.0%ㆍ6조2,000억원)이 2위였다. 그러나 올해는 소니가 삼성에서 약 60억 달러어치(약 7조2,000억원)의 부품을 구입한 반면 애플은 78억 달러어치(약 9조3,600억원)를 사들여 최대 고객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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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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