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범죄수사 연구소 검증자료 김 중위 부친 입수해 공개종전 자살설에 의문 타살 의혹 뒷바침 근거 제시 국방부선 자살 결론 유지

김훈 중위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이 김훈 중위 사망사건과 관련된 기사와 자신이 밝혀온 사실들을 정리한 대형 도면을 설명하고 있다.
“14년 전 김훈 중위의 죽음을 자살로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자문을 의뢰했다는 것은 자살을 합리화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국방부의 이러한 태도는 유족을 비하하고 전군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경비소대(JSA) 241GP에서 의문사한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68)은 지난 6일 매우 분노한 얼굴로 국방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김씨는 특히 미범죄수사연구소의 공문보고서(2009년 10월 14일)를 제시하며 김훈 중위의 ‘타살’을 더욱 강하게 주장했다.

뉴욕 주정부 소속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는 김훈 중위의 왼손 손바닥에서 발견된 뇌관화약성분이 ‘자신에게 겨눠진 총을 막는 과정에서 생긴 방어 자세’일 것이라며 자살 가능성을 배제했다. 노 박사는 30여 년 동안 1,000 구가 넘는 권총 사망자 시신을 부검하고 사인을 분석한 법의학자다. (상자기사 참조)

‘왼손 손바닥에서 발견된 뇌관화약성분’은 국방부와 유족 간에 자살과 타살을 규정짓는 중요한 증거의 하나로 거론돼 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민주통합당 서종표 의원(예비역 육군대장)이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자살 결론’에 문제를 제기하고, 국방부에 요구한 ‘김훈 중위 자살 판단 근거 자료’가 제출되면서 뇌관화약성분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훈 중위 왼손 손바닥의 화약잔재가 '타살'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미범죄수사연구소의 공문보고서(위^2009년10월14일)와 미국 군수사연구소 보고소(1998년 3월 25일)
주간한국이 공개(제2398호, 2011년 11월14일자)한 ‘뇌관화약 감정서’, ‘총기 자살자의 손에서 화약성분 검출 관련 논문’ 등의 자료에는 국방부가 고수해온 ‘자살’ 결론의 논거에 상반되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중 국립수사과학연구소가 작성한 ‘뇌관화약 감정서’(손에 대한 뇌관화약 검출여부 확인)는 김훈 중위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국방부가 1999년 1월 25일 경기도 광주의 특수전 학교 실내 사격장에서 사건 현장의 권총과 같은 M9베레타 피스톨로 국방부 요원 3명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발사한 3명 모두의 오른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됐다.

이렇듯 권총을 쏜 사람의 손을 검사하면 발사자 손에서는 뇌관화약 성분인 바륨과 안티몬이 검출된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에서, 왼손잡이는 왼손에서 화약흔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 군수사연구소가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시료를 정밀 조사한 보고서(1998년 3월 25일)에는 김훈 중위 오른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없고, 대신 왼손바닥에서만 화약흔이 나왔다고 돼있다. 때문에 미국 군수사연구소는 보고서에 “스스로 쏘았다고 귀결 지어서는 안된다”는 특별 문구까지 삽입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발사자의 38%만이 뇌관화약이 검출된다는 논문 통계를 근거로 여전히 ‘자살’ 결론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국방부가 제시한 논문의 통계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통계가 조작에 이용됐다고 주장한다. 즉 국방부가 인용한 38% 의 통계는 피스톨과 리벌버 총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종합해 내린 결과라는 것이다. 권총 발사 시 뇌관화약이 검출되는 피스톨 총과, 거의 검출되지 않는 리벌버 총의 결과를 종합한 것은 김훈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김훈 중위 사망사건이 일어난 같은 조건의 장소에서 M9베레타 피스톨 총으로 실험한 결과에선 100% 뇌관 화약이 검출됐다. 다시 말해 사건 현장과 다른 일반적인 통계를 갖고 ‘자살’로 꿰맞추는 것은 억지라는 게 유족 측의 주장이다.

김훈 중위의 왼손 손바닥 화약 잔재에 대해서도 국방부는 총을 발사할 때 총열을 고정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자살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군범죄수사연구소의 증거 추적 감정보고서(1998년 3월 25일)는 “왼손 손바닥에 화약 잔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자살자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는 사항에 유의할 것”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여기에 노 박사의 보고서까지 나오면서 김훈 중위 공방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타살’ 유력 증거 여럿 나와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씨는 그동안 군관계자, 시민단체, 개인 등의 지원을 받아 김훈 중위 사망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 왔다. 하지만 최근 국방부가 또다시 ‘자살 결론’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사를 앞세워 사건을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강력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김씨는 “나와 내 자식이 삶을 바친 군이 진정한 강군이 되길 바라면서 국방부 장관에게 몇 차례 건의문을 보내 진실규명을 요청했는데, 돌아온 것은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는 추한 모습뿐이었다”며 분개했다.

그는 또 “국방부가 재조사를 빙자해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견해를 이미 밝힌 바 있는 총기 전문가가 아닌 법의학자들에게 또다시 법의학 자문을 받은 것은 ‘자살’을 정당화하려는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훈 중위 유족은 지난 해 11월과 12월 국방부 조사의 문제를 지적하고 수사 관련자 처벌과 김 중위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장문의 편지와 건의문을 국방부장관과 육군 참모총장 앞으로 보냈다.

문제는 그 이후. 국방부 조사본부측이 12월 중순, 갑자기 유족이 요청하지도 않은 재수사를 하겠다며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사인규명을 위해 조사가 완료되면 유족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김척씨는 이에 대해 “재수사는 유족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살을 합리화하기 위한 쇼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가 ‘자살’이라는 결론을 고수하기 위해 또다른 조작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국방부 ‘재조사’ 노림수 있나

김훈 중위는 육군사관학교(52기)를 나온 전도유망한 청년장교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의 사인(死因)은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자살’로 공표된 후 여러 ‘타살’ 의혹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자살이란 불명예가 뒤따랐다.

1998년에는 김훈 중위 소속 부대원의 북한군 접촉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특조단)이 구성돼 김 중위 사인을 원점에서부터 재조사에 들어갔지만 특조단은 유족의 수사과정 참여를 막고, 천주교인권위원회의 현장 총기 시험(지문 및 화약 반응)도 사실상 취소하는 등 ‘자살’ 결론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 때문에 특조단의 최종 수사결과(1999년 4월14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와 유족 간에는 자살 동기, (손의)화약흔, 혈흔관계, 총기 지문, 현장 철모 등 여러 쟁점에 대해 대립을 보였다.

국방부가 자살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다른 3개 국가기관의 판단은 달랐다. 국회는 1999년 초 국방위 산하에 ‘김훈 중위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를 두고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인 후 그 해 5월 31일 부실 수사에 대한 의문 15가지를 제기하며 ‘김훈 중위는 타살당했다’는 요지의 활동 보고서를 펴냈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김훈 중위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훈 중위 사건을 3년여에 걸쳐 조사한 결과, 2009년 11월 2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중위 유족의 의사에 반하는 국방부의 재조사는 또 한번의 ‘자살 합리화’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유족 측에 따르면 국방부 조사본부가 재조사와 관련해 자문을 의뢰한 사람은 과거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자살’을 주장했던 이상한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부교수라고 한다. 이 부교수는 김 중위 사망 당시 부검 군의관이었으며, 권총 발사 시 뇌관화약이 38%만 검출된다는 논문 통계를 근거로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 화약흔이 안 나온다고 그 손으로 총을 안 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자살 결론을 유지한 바 있다. 또한 뇌관화약이 왼손 바닥에서 검출된 것에 대해 왼손으로 오른손 일부를 덮고 있는 상황이라면 왼손에 검출될 수 있고, ‘방어자세’ 주장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사실상 ‘자살의 증거’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38% 논문 통계를 적용하려면 권총의 종류, 화약량, 발사 장소와 위치(실내, 실외), 기상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일반적인 통계로 자살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법의학자 황적준 교수는 1999년 1월 15일 국방부 특조단 법의학 토론시 김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해석했다. 황 교수는 최근 국방부가 의뢰한 김 중위의 왼손 손바닥 뇌관 화약에 대해 “방어자세에서 생성되었을 가능성 보다는 왼쪽 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권총의 탄피방출구 부위를 지지하고 오른쪽 손의 엄지로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다면 변사자에서 확인되는 특징적인 소견들이 생성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노여수 박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은 정규 육사출신 장교인 데다 권총 사격훈련도 많이 한 장교가 그런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JSA 출신의 한 전역병은 “자살을 무슨 묘기대행진으로 아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척씨는 국방부가 김훈 중위 사인과 관련한 여러 쟁점에 대해 ‘자살’에 동조하는 학자들을 통해 자료를 확보한 만큼 앞으로 ‘자살’에 꿰맞춘 총기 실험도 진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최근 미 육군총장이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의 유족 건의를 받아들여 군이 은폐했던 ‘죽음의 진실’(교전 중 죽었다던 미군이 사실은 아군 총에 맞고 버려진)을 밝힌 예를 들면서 “군이 국민의 신뢰받는 강군이 되려면 진실 앞에 당당해야 한다. 김훈 중위 사건은 군이 바로 서느냐 하는 척도”라고 강조했다. 박종진 기자

<관련기사>

주간한국이 처음 공개하는 미 범죄수사연구소의 공문보고서(2009년 10월 14일)는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김훈 중위의 왼손 손바닥 화약 잔재에 대해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화약흔은 세가지 경로를 통해 사람의 손에 남을 수 있다.

a) 본인이 직접 화기를 발사했을 경우 b) 본인이 화기를 발사하지 않았으나 손이 화기 근처에 있었을 경우 c) 화약흔이 다른 경로를 통해 피해자의 손에 남게 되는 경우이다.

이 3가지 사항을 분석하면 a)항은 김훈 중위가 오른손잡이므로 왼손으로 격발할 수 없고 c)항은 김훈 중위 사건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다. 따라서 김훈 중위의 왼손 손바닥 화약 잔재는 b)항에 해당된다. 즉 ‘자살’이 아니라는 얘기다. 미 뉴욕주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는 근접사에 따른 왼손 손바닥 화약잔재는 방어자세시 현상으로, 명백한 타살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박종진 기자

<인터뷰> 김훈 중위 부친 김척 에비역 중장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은 육사21기로 1965년에 임관한 뒤 평생을 야전군에서 근무해온 온 전형적인 무골이다. 1997년 말 1군단장을 끝으로 전역했으나, 2개월 뒤 김훈 중위의 갑작스런 죽음을 맞고는 진실을 밝히는데 혼신의 전투를 펼치고 있다.

-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작년 12월 김훈중위 사건에 대해서 재조사한다고 통보를 했는데 입장은?

“뜻밖이었다. 수년간 국방부 장관 등 군에 진상규명을 요구했어도 반응이 없었는데 작년 말 주간한국, 시사인 등 언론이 나선 게 영향을 준 것 같다. 하지만 지난 14년 동안 국방부는 자살 입장을 고수해 왔기 때문에 재조사를 한다고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살이란 결론을 합리화 하기 위한 술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 국방부의 입장 변화를 믿지 못하는 이유는?

“말로 다하기 어렵다.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하고 신뢰 있는 국내외 기관의 판단도 모두 무시하는데 어떻게 신뢰하겠나. 미리 ‘자살’로 결론 내려놓고 여기에 꿰맞춰 해석하고, 불리한 증거는 없애거나 엉뚱하게 풀이하는데, 분노를 너머 대한민국 군의 미래에 절망감마저 느꼈다.”

- ‘자살’이 아니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든다면?

“실험에서도 나타났듯 총(M9 베레타)을 쏜 사람의 손에는 반드시 화약잔재가 남는다. 그런데 김훈 중위는 없다. 머리 정수리 피멍이나 총이 발사된 전후 상황은 ‘타살’을 말해 줄 뿐이다. 무엇보다 ‘자살 동기’가 없다. (사망)1주일 뒤 있을 내 생일을 준비하고, 외국 친구 만날 계획을 얘기하던 아이였다. 육사에서도 우수한 성적과 체력을 평가받은 장교로 군인의 자부심이 강했다. 자살할 이유가 없다.

- 국방부가 재조사를 하겠다면서 과거 김훈 중위 사건을 자살로 결론지은 사람들에게 자문 의뢰를 했다고 하는데

“국방부의 자살을 합리화하기 위한 술수라고 생각한다. 김훈 중위 사망 시 부검을 했던 이상한 군의관은 절차를 무시하고 미리 자살로 결론내 공표했는가 하면, 수시로 말을 바꾸고 유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황적준 교수는 ‘자살’ 결론에 맞춰 억지스런 자살 자세와 탄도 등을 언급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권총 전문가가 아니고, 김훈 중위 같은 사례를 실제 접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상한 군의관은 국회에서 M9베레타 총을 처음 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제적인 권총 분야 전문가의 진단은 무시하고 두 사람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김훈 중위 사건을 자살로 결론지은 국방부의 태도엔 문제가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국방부 조사본부는 자살을 합리화하려는 획책을 중지하고 미군감정서(98년 3월 25일), 미군지문감정서(98년 3월 27일), 그리고 미범죄수사연구소가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답변했던 보고서(2009년10월14일)를 미국 권총감정전문기관에 의뢰해 권총발사 여부 사항을 확인해줄 것을 요청한다. 또한 국방부 재조사 결과발표는 공개적으로, 질의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한다.”

박종진 기자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