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시중 비리 수사 끝은영향력 이용 특혜 의혹… 정용욱 전 보좌관 통해 비자금 관리설도 제기 대부분 부인으로 일관 등 진실 규명까지 난항 예고… 변죽만 울리다 끝날 수도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이 파이시티 로비자금 수수 혐의로 2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현정권 실세들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나는 사건마다 권력의 핵심부가 개입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 '방해 요인'이 많아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기까지는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최재경 검사장)는 지난 26일 최시중(75)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이 사업의 시행사인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수억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파이시티의 전 대표인 이정배씨는 지난 2007, 2008년 복합유통단지 인허가 청탁을 해달라는 명목으로 건설업체 대표이자 최 전 위원장의 중학교 후배인 브로커 이동율(61ㆍ구속)씨에게 11억여 원을 건넸고 이 가운데 5억 원 가량이 최 전 위원장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상 알선수재죄는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일에 청탁해 주는 대가로 일반인이 금품을 받을 경우 적용되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수사는 어디까지

이상득
검찰이 최 전 위원장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하자 정치권에서는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최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에 대한 온갖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최 전 위원장과 연결돼 있는 다른 정권 핵심인사들이 하나 둘 검찰에 소환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표적인 인물이 전 의원과 '왕차관'으로 알려진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직후 "박 전 차관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특정 사건이 아닌 특정인에 대해 '본격 수사'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상이 분분한 가운데 최 전 위원장의 아들 최모씨에 대해서도 검찰이 조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위원장이 소위 '양아들' 정용욱(49) 전 정책보좌관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한 뒤 이를 최씨가 관리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소식통에 따르면 검찰은 최씨가 최 전 위원장의 비리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최씨에 대한 내사자료를 분석 중이다.

박영준
일단 검찰은 최씨가 최 전 위원장의 자금을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최씨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최 전 위원장의 영향력을 이용해 '특혜'를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내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필요할 경우 최씨를 수면위로 끌어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의 아들에 대한 첩보가 적지 않게 입수됐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조사할 계획은 없다"면서 "그러나 파이시티와 관련해 최 전 위원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씨와 연결된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고, 그와는 별건으로 최씨의 비리 의혹에 대해 조사할 수도 있다. 아직은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인테리어 회사 A사를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최씨는 최근 급성장한 모 커피전문점 업체의 체인점 인테리어 사업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용욱 전보좌관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 최씨는 A사 외에도 서울 홍대 근처에서 카페와 제과점을, 그의 부인은 2007년 중국집을 실질적으로 운영했다고 한다. 또한 2010년에는 1억7,000만 원을 들여 가건물을 사들이기도 했는데, 정 전보좌관이 최씨 부부의 회사 창업비용을 대줬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최씨는 그러나 A사를 지인 명의로 운영하면서 정 전보좌관 주도하에 서울시에서 각종 디자인 관련 하청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여러 비리 의혹이 있다. 그중 아들이 최 전 위원장의 재산을 관리한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며 "아들 최씨는 과거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탈루 등 최 위원장과 관련된 여러 의혹에 연루된 바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통합당은 지난해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 당시 최 전 위원장에게 최씨의 문제를 비롯해 몇 가지 사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우선 최 위원장 본인과 관련,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던 지난 1988년 사전에 토지개발 정보를 입수해 경기 분당 이매동과 서현동의 땅을 매입한 뒤 매입자를 세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1985년 서현동 토지 매입 때와 1991년 충남 아산시 온천동의 토지 매입 당시 외지인은 땅을 살 수 없는 농지개혁법이 있었는데도, 이를 위반하고 땅을 샀다는 의혹도 나왔다.

아들 최씨와 관련해서는 5억 원대의 증여세 탈루 의혹을 받았다. 최씨는 지난 2001년 4월, 당시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파산하고 200만원의 카드빚조차 못 갚는 형편이었지만 3억8,000만원의 채무를 변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최씨가 2억1,000만원의 서울 서빙고동 금호베스트빌 아파트를 분양 받았는데, 이 자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문으로 남아 있다.

열쇠는 정용욱?

최 전 위원장의 비리 연루와 관련해 정 전보좌관이 대선 전부터 파이시티 건을 들고 다니면서 지인들에게 투자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파악돼 주목을 끈다. 검찰은 이런 내용이 사실일 경우,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 인허가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와 정 전보좌관의 친분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에 따르면 2007년 대선 전부터 정 전보좌관은 파이시티 건을 들고 다니면서 "투자하면 수십 배의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좋은 물건"이라면서 "인허가 문제는 최 위원장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며 지인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이 인사는 또 "최 전 위원장이 당시 인허가 결재권자인 오세훈 시장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안다"며 "최 전 위원장이 오 시장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때부터 관여한 데다 이 정권의 실세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최 전 위원장이 18대 총선 당시 공천 후보자들로부터 거액을 후원금조로 받아 챙겼다는 첩보를 입수, 사실 관계를 파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 전보좌관이 중간에서 심부름을 했다는 소문마저 검찰 주변에 파다하게 퍼져 있다.

2008년 4월 9일 치러진 18대 총선 직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바람을 업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의원 배지를 달려는 후보자들이 줄을 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 전 위원장은 MB 정권 실세의 한 사람으로서 세종로에 사무실을 두고 양아들 정 전보좌관을 내세워 공천희망자들과 접촉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주간한국>은 정 전보좌관과 친분을 가졌던 B씨를 어렵게 찾아내 당시 상황을 전해 들었다. 정 전 보좌관과 수시로 만났다는 B씨는 "정씨가 파이시티 투자건과 관련해 투자요청도 해왔지만, 그보다는 '총선에서 20여명의 후보자들을 관리했고 1인당 얼마씩 컨설팅조로 받았다'는 사실을 자랑했다"고 말했다. B씨는 "최 전 위원장 사무실을 들락거린 인사들은 18대에 당선된 ㅇ의원, 또 다른 ㅇ의원, ㅅ의원 등 20여명에 이른다"고 폭로했다.

B씨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또 정 전보좌관을 통해 건설업계의 이모 회장, 전 한나라당 건설분과위원장을 지낸 이모 사장 등과도 매우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 내부에서는 정 전보좌관이 방송통신 관련 업체들로부터 적지 않은 금품을 수수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는 2008년3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중소 통신업체들을 상대로 KT⋅SKT⋅LGU+의 협력업체로 등록시켜주겠다며 한 업체당 수천만 원씩 금품 수수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정 전보좌관은 그러나 검찰의 수사 움직임을 미리 알아채고 급히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묵비권에 막힌 검찰 수사

검찰의 최 전 위원장 수사는 벌써부터 난관에 봉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위원장이 사진이나 문건 등으로 명백히 드러난 사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일체 부인 또는 묵비권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조사받고 있는 진경락 전 기획총괄지원과장과 비슷한 모습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연결돼 있다. 일각에서는 "박 전 차관이 두 사람에게 같은 방식의 대응을 요청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진 전 과장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바로 잠적했다. 그러다 한 달여 후 검찰이 수배를 내리자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진 전 과장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검찰 소식통은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가 생각보다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며 "최 전 위원장은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서 수사 진행이 더디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최 전 위원장이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내용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무조건 묵비권"이라며 "검찰 내부에서는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가 변죽만 울리다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 최근 연달아 터지고 있는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에 의문을 표하는 눈초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정권 말에 여기저기 일부러 불을 질러서 여론을 흐트러뜨리려는 속셈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사건마다 정권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연루돼 조사를 받는데,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조짐이 보인다"며 "조사받는 핵심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현정권 내내 여러 의혹들을 샀던 인사들이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대로 비리에 연루된 정권 핵심 인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조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와 관련해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 기자회견장에서 "내가 몸통"이라고 외치던 모습을 주목하고 있다. 아랫사람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고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모습이 현정권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