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메이커’ 이해찬의 당대표 등극에 따른 득실은?

이해찬
'킹 메이커'가 돌아왔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잇달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공을 세웠던 '킹 메이커' (60)이 컴백했다. 그냥 돌아온 게 아니라 당대표라는 ' 특별완장'까지 찼으니 말 그대로 화려한 복귀다.

4ㆍ11 총선에서 지역구(세종시) 당선으로 17대에 이어 8년 만에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의원은 지난 9일 막을 내린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에서도 최종 승자가 됐다.

지역별 대의원 투표에서는 김한길 의원(2위로 최고위원 선출)에게 열세를 면치 못했던 이 대표이지만 전체 투표의 70%를 차지하는 모바일 투표에서 전세 반전에 성공한 끝에 0.5% 포인트 차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이 대표가 당의 전면에 나섬에 따라 당내 대선 주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일단은 이 대표와 가장 가까운 상임고문이 이번 경선의 최대 수혜자처럼 보인다. 문 고문은 지난달 원내대표 경선 때부터 ' 당대표-박지원 원내대표' 안(案)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준 상임고문, 경남지사 등 다른 예비주자들도 본격적으로 전개될 당내 경쟁 구도에서 나쁘지 않은 위치를 점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손 고문 등이 지역 순회경선에서 나름대로 '힘'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문재인
이 대표가 지역 경선에서 고전한 것도 손 고문과 김 지사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향후 당내 대선 레이스에서 특정 주자의 독주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4일 (사)국가비전연구소가 민주통합당의 전국 대의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문 고문이 24.4%, 손 고문이 22.8%, 김 지사가 20.7%의 지지를 받아 세 사람이 절묘하게 정립(鼎立)했다.

, 친노 울타리 벗어나야

문 고문은 지난 10일 오전 '민주당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지역이나 계파를 넘어 경쟁하고 협력해야 한다"며 "저도 큰 승리를 위해 온몸을 던지겠다. 하나 됩시다. 시작합시다. 꼭 이깁시다"라며 사실상 대선 출사표를 밝혔다.

경선 기간 내내 긴장을 늦추지 못하던 문 고문은 이 대표의 승리로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어쨌든 문 고문은 이 대표와 한 배를 탄 것 아니겠냐"며 "문 고문이 이 대표의 승리를 계기로 다시 상승세를 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학규
문 고문에게 관건은 친노 프레임 극복 여부다. 노 전 대통령 덕분에 오늘날 문 고문이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문 고문의 가장 큰 한계가 노 전 대통령이다.

대선후보 경선이 친노 대 비노 구도로 좁혀진다면 문 고문으로서는 승리를 낙관하기 어렵다. 당대표 경선에서도 입증됐듯이 당 안팎에는 친노만큼 비노도 많고, 실제로 비노 연합군의 위력도 만만치 않다. '탈(脫) 노무현'을 선언한 문 고문으로서는 친노 프레임을 벗어나 외연을 확대해야만 승리를 바라볼 수 있다.

주위에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라"는 주문을 받는 문 고문은 지난 12일 종전과는 달리 강한 어조로 대선 승리를 자신했다. 문 고문은 "(안철수 원장에게) 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후보가 돼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이길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 친노 속으로?

손 고문은 지난 11일 전격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손 고문 측의 한 관계자는 "손 고문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굳이 6월 말까지 기다릴 이유가 있느냐'는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두관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김한길 의원이 승리했다면 손 고문이 출마 선언 시기를 좀 늦췄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며 " 2강 체제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손 고문 측이 서둘러 움직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공교롭게도 손 고문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게 될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은 문 고문 측이 먼저 낙점한 곳이다. 문 고문 측은 "우리가 거기서 할 계획이라는 게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손 고문 측이 출마 선언을 결정해서) 기분이 묘하다"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손 고문은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그래도 HQ(학규)"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수도권을 비롯해 충청 강원 광주 전남 등지에서 손 고문의 '보이지 않은 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한길 의원이 아쉽게 역전패를 당함에 따라 손 고문은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손 고문은 비노의 '대표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집어 말하면 친노와는 껄끄러운 관계다. 실제로 손 고문과 이 대표의 관계도 매끄럽지는 않다. 손 고문은 17대 대선 패배 직후에 치러졌던 2008년 1월 대통합민주신당의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했고, 이에 반발한 이 대표는 문을 박차고 당을 뛰쳐나갔다.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비노의 대표 격인 손 고문이 친노와 전략적으로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향후 관전포인트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대타 아닌 주전으로

경선 과정에서 김 지사는 대표 대신 김한길 의원의 손을 잡음으로써 '-박지원- 연대'와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김 지사는 이 대표와 연대하지 않고도 경남 경북 등지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과시함으로써 더욱 강한 인상을 심었다.

그런 가운데 강창일 김재윤 안민석 김영록 문병호 민병두 배기운 최재천 김승남 홍의락 의원 등은 지난 11일 김 지사의 대선 출마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두 자릿수가 넘는 현역의원들이 원외 인사의 대선 출마 선언을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당대표 경선 과정을 통해 김 지사가 좀더 선명하게 색깔을 드러냈다"고 전제한 뒤 "김 지사는 친노 그룹에서는 비주류이지만 '이장에서 대통령까지'라는 스토리가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런 반면 김 지사가 '대체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냉정한 지적도 있다. 같은 친노 진영의 고문을 대체할 만한 주자로는 김 지사만한 인물이 없지만, 김 지사를 독자적인 '상품'으로 봤을 때는 느낌이 좀 달라진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관계자는 "문 고문과 김 지사는 같은 친노인 데다 지역 기반도 부산 경남으로 겹치기 때문에 본격적인 레이스가 펼쳐지면 두 사람 간에 생사를 건 혈투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