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 선언한 민주통합당 7룡의 물밑 관계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조경태(왼쪽부터), 손학규, 김두관, 문재인, 김영환, 정세균, 박준영 후보가 19일 강원도 홍천 대명비발디파크에서 열린 여성정치캠프에 참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천=연합뉴스
정확히 10년 전이었던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경선은 '7룡(龍)의 전쟁'으로 표현됐다. 대세론으로 무장한 이인제 후보를 비롯해 노무현 정동영 한화갑 김중권 김근태 유종근 후보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그리고 광주 전남에서 돌풍을 기폭제 삼아 승리를 거머쥔 노 후보가 본선에서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경선에서 보여줬던 역동성이 결국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 출신으로 부산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한 조경태 의원도 "2002년 대선 승리는 경선의 역동성에서 비롯됐다. 2012년 경선도 2002년처럼 치러져야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컷오프(예비경선) 제도를 통해 2명이 탈락하긴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2012년 대선 경선도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7룡의 전쟁'으로 출발한다. 가장 먼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경태 의원을 필두로 손학규 문재인 정세균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김영환 의원, 박준영 전남지사가 출전한다.

경선 룰과 관련해 논란의 핵심이었던 결선투표제가 전격 도입됨에 따라 후보들 간 '물밑 관계'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2위만 차지해도 세 규합을 통해 역전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 일이긴 하지만 선례도 있었다. 1970년 9월 신민당의 대선 후보 경선 때 40대 기수론을 내건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후보가 맞붙었다. 1차 투표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1위(421표), 김대중 후보가 2위(382표)였다.

하지만 2차 투표에서는 3위 이철승 후보의 표를 흡수한 김대중 후보가 458표로 과반을 차지, 410표에 그친 김영삼 후보에 역전승을 거뒀다. 야당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결선투표 역전 사례로 꼽히는 선거였다.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는 여론조사 1위인 문재인 대 나머지 주자들, 이른바 비(非) 문재인 구도가 형성됐다"면서 "그러나 절대 강자가 없는 만큼 후보들 간 물밑 관계는 더 활발해질 것이며, 그럴 경우 결선투표의 결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협공 당하는 文

대체로 그렇듯, 당내에서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문재인 고문을 둘러싼 나머지 진영의 협공이 계속되고 있다. 1차 경선에서 1위는 못하더라도 2위만 하면 결선투표를 통해 역전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문 때리기'는 속도를 더 낼 것으로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내 2위를 다투고 있는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지사 그리고 당내 기반이 탄탄한 정세균 고문은 적당히 경쟁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세 사람 간의 연대가 점쳐지기도 한다.

수용되지는 않았으나 세 사람은 지난 18일에도 모바일 투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경선 룰 반영을 요구하는 등 다시 한 번 문 고문 측을 강하게 압박했다. 세 주자는 "모바일 투표가 전체 표심을 왜곡할 우려가 있는 만큼 현장 투표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손 고문은 지난 15일 당의 심장인 광주 전남대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이 민생 실패에 대해 진심으로 성찰하고 아파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운영한 세력은 두 손을 놓고 있지 않았나"라며 "반성은 물론, 성찰 불가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이 박근혜를 꺾을 수 있겠냐"며 친노 필패론(論)을 거듭 역설했다.

김 전 지사도 지난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문 고문 때리기에 가세했다. 김 전 지사는 "저는 민주당 창당을 통해 정치에 참여한 입장이고, 그분들이야말로 민주당을 오랫동안 이끌어왔던, 말하자면 당내 지배세력들이지 않냐"며 "그분들이 서로 담합해서 경선 룰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겠다고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문 고문에게 펀치를 날렸다.

비슷한 컬러 孫과 丁

정작 본인들은 "무슨 소리냐"며 손사래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손 고문과 정 고문의 컬러는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게 당 안팎 여러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손 고문은 교수, 장관, 도지사, 4선 의원, 당대표를 거쳤고, 정 고문은 대기업 임원, 장관, 당대표, 5선 의원을 지냈다. 정 고문은 "대변인 빼고는 당내에서도 어지간한 일은 다 해봤다"고 자부한다.

지지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온건개혁파인 두 사람은 중도층, 중산층에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다. 두 사람은 "결국은 콘텐츠가 이미지를 이길 것"이라며 한 목소리를 낸다.

가난한 집안에서 죽을 만큼 고생하면서 자랐다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다. 손 고문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공부했고, 정 고문은 돈이 없어서 검정고시로 중학교를 대신했다.

비슷한 '외형' 때문인지 손 고문과 정 고문 사이에는 아직까지 전면전이 펼쳐지지 않고 있다. 손 고문은 정 고문을 향해 '공식적으로' 포문을 열지 않았고, 정 고문도 "나야말로 정체성이 가장 확실한 사람"이라며 손 고문의 당적 변경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정도다. 컬러는 비슷하되 지역기반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맹공을 퍼부을 이유는 앞으로도 많지 않아 보인다.

'지역 대표' 박준영 김영환

박준영 전남지사는 7룡 중 가장 늦게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광주 전남의 유일 후보다. 따라서 박 지사가 컷오프를 통과할 경우 광주 전남을 비롯한 호남지역에서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후보 등 이른바 빅 3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박 지사의 얼마 전 발언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박 지사는 지난 16일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출연해서 결선투표제 도입 여부 등 경선 룰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후보들의 입지나 유ㆍ불리에 따라 방법을 바꾸는 그런 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결선투표제 도입에 대해 손학규 정세균 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적극 찬성한 반면 문재인 고문은 줄곧 반대해 왔다. 그러나 비문 진영의 집중공세에 시달린 문 고문 측은 지난 17일 밤 결선투표제를 수용하기로 했다.

경선 룰과 관련된 입장만 놓고 보면 박 지사가 문 고문과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박 지사가 컷오프를 통과한다면 호남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손 고문이나 김 전 지사 측으로서는 꽤나 곤혹스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지사가 "도지사직을 유지한 채 경선에 참여하겠다"고 수 차례 공언한 만큼 그가 컷오프를 통과한다 하더라도 완주는 어려울 수 있다. 공직사퇴 시한은 9월 20일이고, 민주통합당의 후보는 23일(결선투표 기준)에 확정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박 지사가 컷오프를 통과하더라도 광주 전남 경선일(9월 6일) 또는 사퇴시한인 9월 20일 직전에 후보에서 물러난 뒤 도정에 복귀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앞서 박 지사는 지난달 27일 당내 또 다른 후보인 김영환 의원과 전격 회동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30분 동안 전남지사 집무실에서 배석자 없이 비공개로 만났다.

박 지사와 김 의원 사이에는 김대중 노선을 계승하고 동교동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공통분모'와 함께 각각 광주 전남, 충북의 대표주자라는 '개별분자'를 갖고 있다. 김 의원의 지역구는 경기 안산이지만 고향은 충북 괴산이다.

박 지사는 2004년 고 박태영 전 전남지사의 자살로 인해 치러진 보궐선거 때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된 뒤 3선에 성공했고, 김 의원은 2003년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 분당 때 민주당에 남았다. 그리고 2004년에는 노 전 대통령 탄핵사건에 휘말려 역풍을 맞기도 했지만 2009년 보궐선거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골수 민주당'이라는 점에서 이심전심 통한다.

친노 때리는 조경태

조경태 의원은 지난 16일 대선 경선 룰과 관련해 이른바 비문 세 후보에 대해 "당헌, 당규를 무시한 패거리 정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 의원은 이어 "손학규 김두관 후보 측은 예비경선을 당원대상 1인 2표 방식의 여론조사를 통해 진행하자는 정세균 후보 측의 주장에 동의하는 대신 정 후보 측은 결선투표 반대 입장을 접었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이어 "손 김 정의 담합은 정책과 노선, 가치도 없이 단순히 정치적 이득을 위해 뭉쳐서 권력을 잡고자 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조 의원은 경선 룰이 확정된 지난 18일에도 "그들만의 리그"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최근 상황만 보면 조 의원의 칼끝은 문재인 고문을 비켜간 채 비문 세 주자를 겨눴지만, 전체적인 틀에서 보면 조 의원의 공략 방점은 '문재인> 김두관> 손학규' 순으로 찍힌다.

조 의원은 손 고문보다는 자신과 지지기반(부산 경남)이 겹치는 문 고문과 김 전 지사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도 높은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조 의원은 얼마 전 <주간한국>과 인터뷰에서 "친노(친 노무현)는 그들만의 패권주의에 빠져 있다"며 친노 진영인 문 고문과 김 지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문 고문을 향해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 5가지 이유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조 의원이 컷오프를 통과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문 고문과 김 전 지사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반면 두 후보에 대한 조 의원의 공세가 싫지만은 않은 손 고문 측은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민주통합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조 의원이 자신의 색깔을 보다 확실하게 내려다 보니 문 고문이나 김 전 지사와는 대립각을 세우게 된 것"이라며 "조 의원의 맹폭에 당내 유력 주자들의 상처가 커진다면 링 밖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생각지도 못했던 소득을 챙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철수-문재인 구도' 깨지나


민주 결선투표제 도입 변수 부상… 내달 25일부터 지역별 경선

최경호기자

민주통합당의 대선 경선 룰이 오랜 진통 끝에 확정됐다.

민주통합당은 지난 18일 결선투표제와 완전국민경선제가 포함된 대통령선거 경선 룰을 확정했다. 민주당 추미애 경선준비기획단장과 오영식 전략홍보본부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확정된 경선 룰을 발표했다.

민주당 간판을 달고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최대 4차례의 단계(예비경선, 본경선, 결선,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쳐야 한다. 5명을 추리는 1차 예비경선(컷오프)은 오는 29, 30일 권리당원과 일반당원이 절반씩 포함된 당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와 일반국민 여론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본선은 내달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23일 동안 지역별 순회 방식으로 진행되며, 당헌 당규에 따라 완전국민경선제로 치러진다. 단, 1위 득표자가 50% 미만에 그칠 경우 1, 2위 간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결선투표는 9월 17일부터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실시되고, 방식은 본경선과 마찬가지로 투표소 투표, 현장 투표, 모바일 투표, 인터넷 투표로 진행된다.

본선부터는 완전국민경선제인 만큼 만 19세 이상 국민이면 누구나 선거인단으로 신청할 수 있다. 선거인단 등록은 내달 8일부터 9월 4일까지 28일 동안 진행된다. 재외국민은 인터넷 투표를 통해서만 참여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야권 주자라고 하면 안철수 문재인밖에 안 보였지만,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인해 그 같은 구도가 깨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여러 후보들의 '상품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경호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