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는 형제끼리 사이좋게 경영권을 이어받으며 사업을 이어가는 이른바 '형제경영'을 해나가는 기업들이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형제경영 기업들이 경영권을 놓고 심한 갈등을 벌이는 등 '형제의 난'을 겪으며 그룹이 쪼개지곤 한다.

두산 또한 지난 2005년 형제의 난을 경험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다시 자리를 잡은 두산가(家)의 형제경영은 이제 사촌경영으로 넘어가며 더욱 단단한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다.

2001년부터 두산중공업 몸담아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의 차남이자 박정원 (주)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현재 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는 박용만 두산 회장이 박 부회장의 삼촌이다.

1965년생으로 올해 47세인 박 부회장은 경신고를 거쳐 연세대 경영학과를 1988년에 졸업했다. 대학 졸업 직후 당시 두산 계열사였던 동양맥주에 사원으로 입사하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 부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1990년 뉴욕대 MBA 과정을 마쳤다.

두산가 4세 경영인들의 산실이라 불리는 뉴욕대 MBA는 박 부회장 이외에도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두 아들인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과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 박용현 전 두산 회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사장 등을 배출했다.

뉴욕대 MBA를 마친 박 부회장은 글로벌 광고대행사인 맥켄 에릭슨을 다니기도 했다. "남의 밥을 먹어봐야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다"는 두산가 고유의 경영철학이 작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1993년 두산 미국지점으로 돌아온 박 부회장은 1997년 두산상사의 이사가 됐다. 이후 두산백과 BU장, 두산자동차 BU장(1999년) 등을 거친 박 부회장은 민영화 직후인 2001년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장(부사장)으로 부임한 뒤로 줄곧 중공업 일을 맡아왔다.

2007년 마침내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박 부회장은 2009년 초부터 두산 최고업무책임자(COO)를 겸임하며 경영능력을 폭넓게 키워왔다. 박 부회장은 올해 박용만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음에 따라 공석이 된 (주)두산 회장에 오른 박정원 두산건설 회장과 함께 승진, 부회장직을 달고 형을 보좌하게 됐다. (주)두산의 지분 상으로도 박정원 회장의 바로 밑인 박 부회장은 두산가 4세 중에서도 특별히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원칙 강조하며 소통도 즐겨

박지원 부회장은 원칙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번 정해진 원칙은 절대로 어기는 법이 없는 박 부회장의 성격 때문에 두산중공업 또한 경영자의 생각 변화에 따라 휘둘리는 다른 기업과 달리 정해진 계획대로 성장하고 있다.

원칙을 중시하는 박 부회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노동-무임금 원칙 고수다. 한국중공업 인수 이후 반복되던 강한 노조투쟁에 대해 당시 신임 기획조정실장이던 박 부회장은 원칙 준수를 강하게 내세우며 노사관계의 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구조조정 광풍이 한번 몰아친 이후 두산중공업은 금속노조 내에서도 경영처우가 좋은 기업으로 거듭났다는 후문이다.

멘토라 불리는 박용만 회장처럼 트위터 소통을 즐겨하는 것도 박 부회장의 특징이다. 올해 들어 다소 뜸해지긴 했지만 박 부회장은 이번 런던올림픽 400m 예선 때 실격 판정을 받았던 박태환이 판정 번복으로 다시 결선에 나가게 되자 "아싸!! 박태환 결선 진출!!!!!!!"이라는 트윗을 올리며 기쁨을 나누는 등 여전히 온라인 소통에 열심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공업이라는 딱딱한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는 별개로 박 부회장은 예술ㆍ스포츠 등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해외 출장길에 오를 때면 직접 카메라를 챙겨 풍경ㆍ인물 등 다양한 그림을 담아온다. 사내 야구 동아리인 기가와트의 구단주와 선수를 동시에 맡으며 땀을 흘리기도 하고 골프는 싱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에서 경영 실력 두각

박지원 회장이 이끌고 있는 두산중공업은 발전 플랜트, 해수 담수화ㆍ수처리 플랜트 등을 제작해 국내외 시장에 공급하는 회사다. 2001년 30대 중반이었던 박 부회장이 기획조정실을 맡은 지 10년 만에 두산중공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2002년 2조7,716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8조4,955억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1,501억원에서 5,696억원으로 4배가 넘게 늘어났다. 해외 수주 비중 또한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잦은 인수ㆍ합병을 통해 중공업 기업으로 도약한 두산에서 박 부회장이 인수합병(M&A) 전면에 나선 것은 2009년 스코다파워 인수 때로 꼽힌다. 당시 두산중공업이 터빈 원천기술을 보유한 체코 발전설비업체 스코다파워를 5,000만유로(한화 약 8,000억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박 부회장은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물론 그룹 내 M&A 전문 파트인 CFP(Corporate Financing Project)팀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박 회장이 전반적인 과정을 총괄했고 스코다파워 인수로 두산중공업은 한발 더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반기 실적 관심

두산중공업은 지난 상반기 1조5,000억원 내외의 다소 부진한 수주 성적표를 받았다. 유럽발 글로벌 경기둔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모양새다. 그러나 계절적 성수기와 함께 발전 및 해수담수화 부문의 수주가 확대될 경우 하반기에 상당 부분 만회할 수 있을 예정이다.

올 하반기 두산중공업은 사우디 얀부3 담수화 발전 플랜트 및 아시아 지역 화력발전 플랜트 EPC(설계ㆍ구매ㆍ시공) 공사 수주를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대부분 조 단위 규모의 플랜트인 까닭에 관련 사업들을 모두 수주할 경우 목표인 10조8,000억원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두산중공업은 3년 연속 10조원 이상 수주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새롭게 부회장 명함을 받은 박지원 부회장이 계획했던 3대 목표치(매출 10조70억원, 영업이익 6,500억원, 수주 10조8,000억원)를 달성하고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