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이 금융권을 휩쓸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지난달 17일과 18일 양일에 걸쳐 증권사와 은행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에 지난달 19일 CD 금리를 담합했다는 금융사의 자진신고가 접수되면서 조사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금융권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번 사건이 '한국판 리보금리 사태'로 비화될 조짐이 있어서다. 이 경우 문제가 심각하다. 수십조원대 과징금은 물론 대규모 집단소송 등 '메가톤급' 후폭풍이 불어 닥칠 가능성이 큰 때문이다.

혐의 확인 후 조사 진행

공정위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조사가 한창이다. CD는 은행이 양도 가능한 권리까지 부여해 발행하는 증서다. 담당자들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리를 고려해 '적정선'을 적어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금융권 안팎에선 담당 금융기관의 재량이나 암묵적 담합이 생길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공정위는 지난달 17일 10개 증권사에 조사팀을 파견해 CD 금리 책정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다음날인 18일에는 9개 시중은행을 상대로 현장조사를 벌였다. 당시 업계에선 공정위가 확실한 물증을 잡고 조사에 착수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조사관행상 현장조사는 어느 정도 혐의를 확인한 후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하자 금융권은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현장조사 직후인 지난달 19일 A금융사가 담합 사실을 털어놨다. 담합사실을 가장 먼저 신고한 업체의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는'리니언시 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공정위 조사엔 탄력이 붙게 됐다. 전례를 보면 자진신고가 접수된 사건은 결론을 내리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다 후속 자진신고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서다.

3개월에 2500억원 챙긴 셈

담합 의혹은 CD금리가 지난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3.25%에서 꿈쩍도 않았다는 점에서 비롯됐다. 같은 기간 국고채 3년물은 3.50%에서 3.19%로 0.31% 하락했다. 이 수준의 금리가 3개월간 적용될 경우 은행들의 이자수익은 2,500억여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뒤집어 보면 3개월 동안 앉은 자리에서 2,500억원의 수익을 챙긴 것이다. 반면, 은행에서 돈을 빌린 서민들의 이자부담은 그만큼 커진 셈이 된다.

문제는 CD금리가 다른 시장금리와 다른 흐름을 보인 것이 2010년 중반부터라는 점이다. 만일 CD금리가 이때부터 조작됐다면 은행들이 그 사이 거둬들인 수익은 천문학적인 액수가 된다.

공정위는 현재 '자금부서장간담회'를 뒤지고 있다. 이는 시중은행 자금담당자들의 모임으로 은행자금을 조달하는 실무자와 임원들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간담회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이 자리에서 CD 금리에 대한 각종 정보를 교환했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은 CD 금리 담합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자금부서장간담회는 매월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오찬 형식의 간담회로 공개된 장소에서 오찬형태로 이루어진다"며 "은행 자금업무의 효율적인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공정거래법 등 관련법상 금지된 일체의 행위를 한 적 없다"고 덧붙였다.

과징금에 집단소송 후폭풍

이번 CD금리 담합 의혹으로 금융권엔 메가톤급 후폭풍이 불어 닥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주식시장에 암운이 드리웠다. 코스피시장에서 은행업종 주가는 공정위 현장 조사 하루 전인 지난달 17일보다 3.46% 떨어졌다. 증권업종도 이 기간 1.75% 하락했다. 반면, 코스피는 0.05% 상승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매각 움직임도 두드러졌다. 공정위 현장조사가 이뤄진 지난달 18~20일 외국인들은 68억원 상당의 은행주를 판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이번 조사로 CD 금리가 낮아지게 되면 은행의 순이자 마진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은행의 실적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또 공정위 조사 결과 담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 5월말 가계대출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 중 CD금리 연동 대출액은 315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최대 수준인 10% 대의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모두 31조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은행을 상대로 대형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금융소비자원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계기로 은행들의 CD 금리 짬짜이 조작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CD금리 부당 이득 환수를 위한 집단 소송' 절차에 돌입하기로 했다.

금융소비자연맹도 CD금리 조작 의혹과 관련해 집단 소송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이 단체는 공정위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서 은행에 부당이득 환수를 촉구하고 거부되면 집단 소송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른 시민단체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민금융호보네트워크, 빚을 갚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참여연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진보연대, 투기자본감시센터, 금융소비자협회 등은 최근 "CD금리 밀약 의혹에 대해 금융 당국이 책임 있는 자세로 적극적인 대처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