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상인들의 생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상생은 뒷전, 무차별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대기업들 때문이다.

여론의 비판과 중소상인들의 호소, 관련 부처의 계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탄탄한 자본력과 유통망 앞에 중소상인들은 속수무책이다.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골목골목에서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중소상인들의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대기업은 대체 어딜까. <주간한국>은 중소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나쁜 대기업'들을 차례로 짚어본다.

MRO사업 진출해 논란

동국제강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디케이유엔씨가 빈축을 사고 있다. 소모성자재 구매다행(MRO)사업에 뛰어든 게 화근이 됐다. MRO사업은 기업체 유지ㆍ보수ㆍ운영에 필요한 소모성 자재의 구매와 관리를 대행하는 것으로 필기구와 복사용지, 프린터 토너 등 사무용품과 청소용품 등 수만개 제품을 망라한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디케이유엔씨는 1997년 탑솔정보통신으로 설립된 회사다. 2003년 통신 사업 부문을 분리해 탑솔티엔에스를 설립한 데 이어 2005년 동국제강그룹 계열사에 편입되면서 디케이유엔씨로 재탄생했다.

당초 이 회사는 (38.91%)과 동생인 장세욱 유니온스틸 사장(37.70%)이 지분 76.61%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9월 장세주ㆍ장세욱 형제는 디케이유엔씨 지분을 각각 15.1%(2만7,369주), 14.2%(2만5,689주)를 주당 12만6,994원, 총 67억원에 동국제강에게 매각했다.

이에 따라 과 이 보유한 지분은 15%씩으로 줄어들게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증여세(최고세율 50%)를 회피하고, 양도소득세(세율 20%)만 부담하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디케이유엔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동국제강을 상대로 MRO사업을 시작, 올해 유니온스틸 등 계열사로 대상 기업을 확대하고 있다.

동국제강의 MRO사업은 디케이유엔씨가 운영하고 있는 통합구매시스템으로 물품 혹은 인력을 조달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디케이유엔씨는 시스템을 통해 구매되는 중간 마진을 매출로 흡수할 수 있다.

장세욱 동국제강 사장
사회적 문제 비화돼도 '묵묵'

디케이유엔씨의 MRO사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갑다. MRO사업에 진출한 시기가 MRO사업 논란이 불거진 시점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사소한 물품까지 MRO 계열사를 통해 구입하다 보니 이들 회사와 연을 맺지 못한 영세 업체는 살 길이 없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었다.

비판은 거셌다. 당장 중소기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앞다퉈 재벌 그룹이 MRO사업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정부 역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방안을 강구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급기야 대기업의 MRO사업은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고,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웅진그룹, 한화그룹, STX그룹 소속 계열사의 부당지원행위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60억원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또 동반성장위원회는 수차례에 걸쳐 사업이양 등을 권고했다.

화들짝 놀란 대기업들은 일제히 MRO사업을 정리하고 나섰다. 삼성은 당시 MRO 계열사이던 아이마켓코리아를 전격적으로 매각했다. 그룹의 9개 계열사가 지분 59% 가량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이중에서 37%를 인터파크에 팔면서 사실상 사업을 정리했다.

SK그룹도 계열사 MRO코리아의 간판을 '행복나래'로 바꿔 달면서 사회적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행복나래의 수익금 3분의2 이상은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한화 역시 네트워크 구축 및 컨설팅 계열사 한화S&C의 MRO사업을 매각했다.

놓치기 아까운 '돈줄'

이런 기류 속에서도 디케이유엔씨는 MRO사업을 손에 꼭 쥐고 있다. 디케이유엔씨를 보는 시선이 고울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디케이유엔씨가 MRO 사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까닭은 뭘까.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대기업 입장에서는 MRO 사업은 놓치기 아까운 '돈줄'이다. 각종 자재를 대량 구매하면서 얻을 수 있는 비용절감 효과는 막대하기 때문이다.

실제, 동국제강그룹은 MRO사업에 힘입어 지난해 매출 2,000억원을 달성했다. 전년도 매출 1,060억원의 2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동국제강그룹은 매출 증가액 가운데 약 30%를 MRO사업으로 얻었다. 디케이유엔씨는 올해 다른 계열사로 MRO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비슷한 수준의 매출 증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기업을 등에 업고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오너일가 부의 축척 수단으로 편법 운영할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다. 여기에 MRO시장은 지난해 23조원, 올해 30조원 대의 성장성을 이어가고 있는데다 해외 물량 수주나 신사업 구상 측면에서도 포기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