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저지 마포구 주민대책위원회' 소속 상인들이 지난 3월 서울 성산동 홈플러스 월드컵점에서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에 대한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참여연대, 함께하는시민행동, 환경정의, 경제민주화시민연대….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저지를 위해 모인 시민단체들이다. 여기에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범야권 인사들도 총동원됐다. 망원시장상인회, 월드컵시장상인회, 마포구상인총연합회, 마포희망나눔 등 해당 매장으로 인해 직접적인 손해를 입게 되는 단체들 이외에도 전국단위의 경제ㆍ시민단체들과 범야권 인사들이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저지를 위해 단결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개' 매장의 입점을 막기 위해 수많은 경제ㆍ시민단체들과 범야권 인사들이 총동원된 이유는 간단하다.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형마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홈플러스와의 대결에서 선전할 경우, 점차 사그라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를 다시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완전한 입점저지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상태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입점할 경우 막대한 피해 예상

홈플러스 합정점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새로 입점하게 될 주변에 이미 홈플러스 매장 2곳이 위치, 해당 지역 전통시장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던 중소상인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위축될 대로 위축된 전통시장 근처에 또 하나의 대형마트가 들어설 경우 중소상인들이 극심한 손해를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 서울시가 의뢰해 한누리창업연구소가 발표한 '대형마트 홈플러스 테스코 합정점 입점 예정지역 현장 실태조사 및 상권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 합정점이 들어설 경우 반경 500m 이내 소매업 545개 점포의 평균 매출, 영업이익이 각각 24.5%, 66.8%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당초 홈플러스 합정점은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 메세나폴리스 내 4,300여 평의 규모로 8월 말 입점이 예정돼있었다. 문제는 합정점이 들어설 경우 반경 2.3km 내 홈플러스 매장만 3곳에 달한다는 점이다. 특히 전통시장인 망원시장과는 불과 670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영진시장, 합정시장과의 거리는 100m 정도에 불과하다.

2010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 13조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전통시장으로부터 반경 1k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원칙대로라면 홈플러스 합정점은 현재 위치에 들어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포구의회는 관련 조례제정을 2011년 4월 공포했고 홈플러스는 그해 1월 발 빠르게 점포개설 등록을 마쳐 해당 규제에서 비껴갈 수 있었다.

입점저지 위해 각 계 힘 모아

홈플러스 합정점 근처의 중소상인들이 입점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이후 상인들은 시민단체들과 연합해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저지 마포구 주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결성, 끈질긴 싸움을 벌여왔다.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결사반대'라고 쓰인 노란 조끼를 입고 시장 곳곳에 현수막과 포스터를 붙이는 등 지역 주민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집회 때는 아예 모든 상인들이 철시하고 참여했다.

수차례에 걸친 홈플러스 측과의 조정회의가 수포로 끝난 후에는 아예 홈플러스의 본사가 위치한 주한 영국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대책위 측이 스콧 와이트만 주한 영국 대사에게 보낸 항의 서한에는 "귀국도 지역 상권과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부분 대형마트를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홈플러스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지역상권 붕괴와 전통시장을 파괴하는 상황이 하루빨리 중단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이 예정된 8월에 들어서는 아예 장사를 접고 싸움에 전념하기도 했다. 10일부터 장사를 접고 천막농성을 벌이기 시작했고 19일에는 입점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매장 진입을 시도했다. 24일에는 '아름다운 동맹'이라는 이름의 시민문화제를 열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마포구, 서울시의회와 범야권 인사들도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저지에 힘을 보탰다. 마포구는 지난 1월 '유통기업 상생발전회'를 열어 합정점 입점 철회 권고를 의결했고 서울시의회는 지난 7월 홈플러스 신규 입점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마포구를 지역구로 하고 있는 정청래 민주통합당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 대선 예비후보인 문재인 의원도 나섰다. 정 의원과 박 시장은 각각 "지역공동체와 중소상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서울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울 것", "홈플러스 합정점에 대한 최종목표는 입점저지"라는 말로 의지를 나타냈고 문 의원은 '골목상권 보호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10대 정책'을 발표하며 "합정동 홈플러스 매장 입점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입점저지 무산돼도 의미 커

경제ㆍ시민단체들과 범야권 인사들이 연대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사실상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을 완전히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데다 홈플러스도 입점저지 운동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홈플러스 측은 "이미 지난 2007년부터 합정점 입점을 위해 절차를 밟아왔다"며 "8월 말로 예정된 입점일은 잠정적으로 연기됐지만 완전히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대형마트들의 골목상권 잠식에 대한 제재 움직임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요즘 들어 각 지자체별 법원들이 잇달아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위법'이라 판결하면서 그동안 월 2회 휴무를 해왔던 대형마트들이 영업을 재개하고 있다. 정부 또한 지난달 17일 '기업투자 및 고용애로 해소 방안'을 통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 규제를 풀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동안 뜨거웠던 유통업의 경제민주화 논의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경제ㆍ시민단체들과 범야권연대는 이번 홈플러스 합정점 입점저지를 '경제민주화 논의를 되살릴 수 있는 불씨'로 보고 힘을 보태고 있다. 설사 합정점의 입점저지가 무산되더라도 이번 투쟁으로 되살린 경제민주화 논의를 대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계획이 깔려있는 것이다. 홈플러스 합정점이라는 일개 매장에 재계의 눈이 몰려있는 이유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