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해묵은 검ㆍ경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국내 최대 규모 룸살롱으로 알려진 어제오늘내일(YTT)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자 경찰에 날을 겨누고 있다. 이에 경찰이 강력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아울러 최근 2년간 옥살이를 한 끝에 무죄로 풀려난 지방 경찰서장이 인터넷에 비통한 심정을 담은 글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글을 올린 주인공은 홍동표 전 청주 흥덕경찰서장이다.

홍 전 서장은 글에서 "검찰로부터 표적수사를 당해 억울하게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이 일로 가정과 명예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박성진 부장검사)는 국내 최대규모 룸살롱인 어제오늘내일(YTT)의 업주 김모(52)씨를 수십억원대 탈세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검찰은 영업에 관여한 김씨의 동생도 함께 구속기소하고, 명의상 대표인 박모씨 및 YTT 법인은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2010년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업체 운영 관련 세금 30억4,800만원을 포탈한 혐의(특가법상 조세포탈 등), YTT 개업 이전인 2006~2009년 다른 룸살롱을 운영하면서 논현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에게 단속무마 등 명목으로 4,800만원을 상납한 혐의(뇌물공여) 등을 받고 있다.

경찰 상납리스트 존재하나

김씨는 탈세 과정에서 YTT매출을 호텔매출로 속이는 수법 일명 '카드깡' 외에 현금매출을 누락하거나 여종업원 봉사료 지급 내역을 허위·과대 계상하는 등 다양한 수법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YTT가 호텔과 유기적으로 '원스톱 성매매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하루 평균 200~300회의 성매매 알선이 이뤄졌다는 점을 근거로 영업기간 2년간 최소 8만8,000차례의 성매매가 지속됐을 것으로 추산했다.

검찰은 김씨가 YTT 운영 과정에서도 단속무마 청탁 등으로 경찰관에게 금품을 제공했는지 여부, 추가 조세포탈을 벌였는지 여부 등을 계속 수사 중이어서 수사 상황에 따라 검ㆍ경 갈등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김씨 형제와 단속 공무원과의 유착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불법운영에 관여한 공무원 등 공범을 계속 수사해 유착 관계를 근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구속 기소한 김씨 형제로부터 주기적으로 상납받은 경찰관이 다수 있을 것으로 보고, 상납 리스트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룸살롱 황제' 이경백(구속기소) 사건을 수사하다 유흥업소와 관할 단속 공무원의 유착관계가 드러나자 범위를 확대해 YTT 수사에 나섰다.

지난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하순쯤 서울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강남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등 풍속업소 담당 직원과 삼성, 청담, 압구정 지구대에 근무한 경찰관들의 전체 명단을 요구했다.

검찰 압박 경찰 대응카드는?

명단에 오른 경찰관의 숫자는 700~8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검찰이 요구하는 대로 당시 직원 명단을 작성해 검찰에 보냈다. 검찰이 혐의가 있는 경찰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근무경력이 있는 직원 명단을 모조리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관 상납비리를 빌미로 경찰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린다.

검찰의 수사에 대해 김기용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실체가 없는 것이 수십명이니 수백명이니 하고 언론에 나오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수사 후 비리 경찰관이 몇 명이다 하는) 정확한 숫자가 발표된 이후 기사화가 돼야 한다"며 "안타까운 현실이다. 삼류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막연하지 않나"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얼마 전 모 경찰 간부가 언론에 안철수 후보 사찰을 거론한 데 대한 일종이 경고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대선을 앞두고 경찰의 대선 정보활동 등 선거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차단 또는 축소하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불과 수개월 전부터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경찰 내 특정 세력이 모 대선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활발히 돌았다. 그러나 경찰은 정치적인 해석은 경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검찰이 경찰을 견제하려는 의도는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경찰의 움직임이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선거와 별도로 검찰은 꼬투리가 잡혔을 때 확실히 경찰을 길들이겠다는 의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표적수사 대응해야

홍 전 서장은 지난 8월 20일 경찰 내부 통신망을 통해 올린 '저는 검찰과 싸워 이겼습니다'라는 제목의 A4용지 3쪽 분량의 글에서 "검소한 생활로 공직자의 본분을 다하려 자제하고 스스로 낮췄다"면서 "그러나 검찰의 표적수사로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공직의 명예가 하루아침에 깨지고 말았다"고 비분강개했다.

홍 전 서장은 "검찰은 추측만이 가득한 공소장을 작성해 기소하면서 저의 결백은 허공에 맴돌았다"며 "검찰은 별건·주변수사로 사돈의 8촌까지 모두 수사했으나 추가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은 내가 돈을 받았을 것이라 예단하며 표적수사를 했고 브로커의 허위진술과 짜맞추기 증거물로 날 구속했다"며 "당시 공소장을 보면 'A는 B다'가 아니라 'A는 B일 것이다'로 돼있다. 공소장에 진실은 없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또 홍 전 서장은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왜 날 구속 기소했는가 골몰히 생각해봤다"면서 "검찰의 수사독점을 비판하고 경찰의 수사권독립을 주장했던 내 전력이 검찰의 감정을 자극했던 결과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홍 전 서장은 지난 2009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본 검찰 특수부의 증거 조작 사건을 사례로 들며 "증거도 없이 나를 구속하고 난 후 '우수검사'표창을 받았던 담당검사는 영전까지 했다"며 "당시 검사와 결재라인에 있었던 검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홍 전 서장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리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범죄인이 되고, 억울하게 옥살이할 가능성이 많다"며 "오늘은 경찰서장이 구속됐지만 내일은 어떤 국민이 억울하게 옥살이할지 모른다.

홍 전 서장은 2009년 11월23일부터 2010년 6월까지 불법 오락실 단속과 관련해 고향 선배인 브로커 K씨에게 단속정보 등을 제공하고 5,15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또 홍 전 서장과 함께 브로커에게 단속정보를 제공하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유모 경사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