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홍의락 의원이 17일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전 국정감사에서 김중겸 한국전력공사 사장에게 질의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들도 긴축경영에 돌입한 가운데 국민의 혈세를 물쓰듯 하는 공공기관의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매년 국정감사에서 빠지지 않고, 그 유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올해 국감에서도 공공기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와 방만경영이 어김없이 드러나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각종 수당 방만 운용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은 뿌리깊은 고질병이다. 그중에서도 각종 수당의 방만운용은 매년 국감 시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올해 국감에서도 수당을 과다하게 지급하거나 편법으로 주머니를 채우는 등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지송 사장이 8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 LH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국정감사 증인선서에 앞서 의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먼저 한국수자원공사는 자사 자문위원들에게 지급하는 수당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문병호 의원(인천 부평갑)이 수자원공사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데 따른 것이다.

수자원공사는 2010년 4대강 공사가 한창인 경기 여주의 '강천보' 건설현장에 자문위원 14명을 불러 회의를 했다. 이어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경인운하 사업 추진경과를 보고한 뒤 위원들의 자문을 받고 강천보 일대를 둘러봤다.

수자원공사는 자문위원들에게 모두 840만원을 지급했다. 한 사람당 60만원의 수당이 주어진 것이다. 이날 일정에 소요된 시간이 불과 2시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급이 30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지난해와 올해 열린 자문회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회의 일정은 거의 비슷했다. 업무보고와 자문, 현장시찰의 순으로 회의가 진행됐다. 지급된 비용도 60만원으로 같았다. 지난해엔 위원 13명에게 780만원을, 올해는 12명에게 720만원을 건넸다.

통계청도 비슷한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낙연 의원(민주통합당 전남 담양ㆍ함평ㆍ영광ㆍ장성)이 통계청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출장비가 문제가 됐다. 직원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로 '출장 아닌 출장'을 다니면서 수천만원대의 출장비를 챙겼다.

정부 대전청사에 입주해 있는 통계청에서 부속기관이 몰려있는 통계센터까지 거리는 350m다. 도보로 7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대전청사 앞에 비치된 공공자전거를 이용하면 이동시간은 3~4분으로 줄어든다.

그럼에도 통계청과 통계센터 직원들은 양측에서 열리는 회의 등에 참석하며 출장비조로 2만원씩을 지급받았다. 이런 식으로 직원들이 챙긴 출장비는 5,099차례에 걸쳐 8,469만원에 이른다.

직원 뒤봐주기 의혹

직원 뒤봐주기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 퇴직자가 설립한 회사나 재취업한 업체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 경우 입찰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 차단해 경쟁업체의 사업기회를 봉쇄하게 된다. 당연히 가격경쟁도 없다. 국민의 혈세 낭비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먼저 한국도로공사는 퇴직자가 설립한 회사에 안전순찰업무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인천 중구ㆍ동구ㆍ옹진)이 한국도로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도로공사 51개 지사 중, 고속도로 안전순찰업무를 외주로 전환한 45개 지사가 문제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줬다.

계약 방식은 100% 수의계약, 계약기간은 3년 6개월에서 7년 6개월에 이르는 장기계약이다. 도로공사가 지난해 이들 업체에 몰아준 일감은 모두 324억원. 한 회사에 평균 7억여원을 지급한 셈이다.

도로공사의 제 식구 챙기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올해 연말 나머지 6개 지사까지 독점 수의계약으로 외주를 줄 예정이다.

조달청도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의 뒤를 봐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낙연 의원이 조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퇴직자들이 임원급으로 자리를 옮기기가 무섭게 신규 계약을 맺거나 계약을 늘리는 식으로 힘을 실어줬다.

지난 2009년부터 올해 8월 말까지 퇴직한 조달청 직원 15명은 한국감시기기공업협동조합 고문, 서울경인아스콘공업협동조합 전무이사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중 퇴직 당시 3급 장비구매과장으로 근무했던 A씨는 한국감시기기공업협동조합의 고문 자리를 꿰찼다.

이후 조달청은 한국감시기기공업협동조합과 경기도 평택시 건설교통사업소에 전폭적인 지원사격을 해줬다. CCTV를 설치하는 일감을 주는 등 2년간 226건에 걸쳐 48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또 원자재비축과장(4급)이던 B씨는 2011년 '인천경기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 전무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9년까지만 해도 조달청은 이 조합과 38건의 5억7,000만원 정도의 물품을 사들였다. 그러나 B씨가 재취업을 한 지난해에는 93건, 16억원으로 계약물량을 3배 가까이 늘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조달청은 문제의 업체들에 1만1,000여건에 걸쳐 총 9,700억원 규모의 일감을 몰아줬다.

고질병 성과급 잔치

공공기관의 성과급 잔치도 매번 국감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다. 문제는 실적 부실로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음에도 거액의 성과급을 뿌렸다는 점이다. 매년 적자에 허덕이며 앓는 소리를 하던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습이다.

먼저 경영평가 최하위권 D등급 이하를 받은 공공기관 14곳 가운데 12곳이 지난해 성과급을 지급했다. 재정부는 올해 D등급 이하 공공기관에게는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럼에도 올해 9곳의 D등급 공공기관이 성과급을 나눠줬다. 자체적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이다.

실제, 한국석유공사는 2010년 1인당 1,853만원, 지난해 1,582만원에 이어 올해에도 7월 말 현재 이미 지난해의 57%에 달하는 904만원을 지급했다. 기관장은 9배에 달하는 8,104만원을 받았다.

한국철도공사도 올해 1인당 735만원의 성과급을 나눠줬다. 기관장은 지난해 1억1,124만원에 이어 올해 7,599만원을 지급했다. 지난해 1,473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던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이보다 많은 1,561만원을 건넸다.

경영평가 하위 기관 중 올해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거나 그 규모를 대폭 줄인 기관은 고작 두 곳.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과 선박안전기술공단이 전부였다.

부채 상위 10곳 중 9곳도 올해 고액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올해 1인당 1,226만원의 성과급을 나눠줬다. 올해 전기료를 4.9% 인상한 한국전력도 지난해 1인당 1,774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빚더미 올라 방만 경영

이들 공공기관엔 공통점이 있다. 매번 국감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아무리 문제를 지적해도 시정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다른 공통점은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것이다. 도마에 오른 공기업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문제없다"고 잡아뗀다. 대부분 공공기관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핑계대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 개선의지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들 공공기관이 하나같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도 같다. 2011년 말 현재 463조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약 249조원에서 연평균 16.8%씩 늘어 거의 2배 수준이 됐다. 한해 이자비용만 약 4조원3,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공공기관의 부채는 한국 경제를 흔들 수도 있는 뇌관으로 지적 받고 있다.

이처럼 공공기관들은 빚더미 위에 앉아 거액의 성과급을 챙기며 국민의 혈세를 방만하게 운용하고 있다. 매년 국감에선 따가운 질타를 받고 있지만 '쇠귀의 경읽기'에 그치고 있다. 공공기관의 풀릴 대로 풀린 나사를 조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빚더미 손실보전 공공기관 '관리 강화해야' 주장 제기


송응철기자

수출입은행과 LH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손실보전 공공기관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비례대표)은 최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2011년 말 기준 공공기관 부채는 463조5,000억원으로 국가채무보다 많은 수준"이라며 "이 가운데 54.3%인 252조원을 12개 손실보전 공공기관 부채가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실보전 공공기관은 적립금으로 손실을 보전할 수 없을 때 정부가 부족액을 보전해주도록 하는 법률 조항이 있는 기관이다.

여기엔 ▦대한석탄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LH공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장학재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재단 ▦한국무역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등 12개 기관이 포함된다.

안 의원은 "지난해 12개 기관에 대한 출자ㆍ출연ㆍ보조금으로 지급된 금액은 2조6,834억원"이라며 "수출입은행은 BIS 비율 제고를 위해서, 장학재단은 일부 손실보전금 용도 등 특정사업이 아닌 기관의 운영보조 및 손실보전 등에 집행됐다"고 말했다.

이어 안 의원은 "이러한 지원은 공공기관 부채를 일으키는 방만한 운영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손실보전 공공기관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응철기자 se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