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개발 둘러싼 복마전동대표간 "명예훼손" 불화"입주민 일부 이권 개입" 재판부 고소인 손 들어주자"재판부 녹취록 공판기록 서류검토도 제대로 안해"피고소인 대법원 상고 제기

대한민국 부촌의 상징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재개발 사업추진을 둘러싸고 동대표들 간 마찰로 진흙탕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한때 강남 최고의 부촌으로 명성이 자자했고 지금도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잡고 있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뒤숭숭하다. 재개발 사업추진을 놓고 동대표들 간의 마찰이 송사로 비화돼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어서다.

사건을 요약해 보면 동대표들끼리 관리규약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명예훼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고소인이 검찰에 피고소인 측을 고소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는 3조7,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개발 사업이 있다. 입주민들 사이에선 재개발 사업 추진을 앞두고 입주민 일부가 이권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이 주목을 끄는 것은 4조원에 가까운 재개발 사업의 방향이 사건의 결말에 따라 바뀔 수도 있어서다.

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일단 고소인 측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이에 피고소인 측은 재판부에 강력히 항의하며 항소에 이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피고소인 측은 "1심, 2심 재판부가 제출된 증거서류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판결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고소인 측은 상고를 통해 앞서 있었던 재판의 불명확한 부분을 짚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과 내막

일단 재판부는 고소인이 주장한 피고소인들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벌금형을 내렸다. 이에 대해 피고소인 측은 "명예훼손 부분은 인정하나 허위사실유포에 대한 부분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있는 사실을 이야기 한 것이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명백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피고소인 측은 "명예훼손 여부에 대해서는 재판부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러나 여러 증인들의 증언과 각종 문건 등 증거들을 통해 우리가 고소인에 대해 문제 삼은 부분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또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입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공익을 위해서였다. 상대방을 음해할 목적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고소 사건을 비화된 과정을 보면 입주자대표회장이던 A씨가 회장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관련 규약개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동대표들은 "A씨가 불투명한 방법으로 과거 3선 개헌과 같은 행위를 하려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피고소인 측에 따르면 A씨는 주민투표과정에서 동대표들이 이번 규약개정은 "동대표와 회장이 선거절차 없이 2년간 자동으로 소급하여 임기가 연장되기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았다.

피고소인들은 "A씨가 일방적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지도 않고 관리사무소를 통하여 주민투표 중에 임의로 투표함을 회수하고 자기가 투표함을 급조(라면박스)하여 재투표를 했다"며 "그 기간 중 3일간이나 경비들을 교육시킨다고 하며 투표함의 이동을 감시하여야 할 경비원들에게 저녁 9시쯤에 투표함을 들고 각 세대를 한 바퀴 돌면 표가 많이 걷힐 거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A씨가 부정선거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소인 측이 A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비롯된다. 피고소인 측은 A씨에 대해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있고 그 이유는 재건축 사업의 이권을 노리고 있어서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이 사건이 핵심이다. 건설회사 오너인 A씨가 재개발 사업의 이권을 노리고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이를 위해 각종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혹을 피고소인 측이 제기한 것이다.

만일 피고소인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향후 막대한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대형 비리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하지만 검찰과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모두 허위사실로 결론 내렸다.

재판부의 판단과 오류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보면 피고소인 측은 2009년 5월 25일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의실에서 개최된 아파트 주민 74명의 모인 간담회에서 "내가 동대표를 한 10여년 하면서 이렇게 깊숙히 썩어가는, 동대표가 썩어 가는 것을 보고 나섰다"며 A씨가 입주자회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허위사실을 말했다.

또 A씨가 연임을 하려는 것에 대해 "A씨가 차기에 재건축을 할 때 떡 고물이라도 좀 얻어먹지 않을까 해서 그런 것 같다"며 "재건축의 온갖 돈을 노리고 들어온 사람들한테는 도저히 동 대표회의를 맡길 수가 없어서 여러분들을 오늘 모시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나 있다.

이어 "A씨가 제 14, 15대 회장으로 있는 동안 그 이전보다 수입금액이 7~10배 증가했다"며 A씨가 마치 불법으로 자금을 횡령하고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말했다는 게 검찰의 공소내용이다.

검찰에 따르면 A씨가 회장으로 연임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개정하였다 하더라도 주민들이 선출하여 주지 않으면 연임이 불가능한 것인데도 마치 피해자가 회장을 계속하는 것처럼 호도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재판부도 같은 시각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들의 주장에 따라 제시한 증거는 증거로서 부족하고 A씨가 위법한 사실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적시했다.

또 피고소인들이 주장한 A씨의 위법 사실과 이권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제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A씨가 이권으로 노리고 회장 연임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없고 위법행위를 했다는 주장도 관련된 증거를 통해 입증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피고소인 측은 검찰과 재판부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피고소인 측은 "검찰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가 제기한 의혹들 가운데 상당부분은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다"며 "예컨대 A씨가 주민들을 상대로 부정선거를 한 부분도 CCTV와 관리소장 그리고 입주민들의 증언 등 증거가 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증인들이 나와 증언한 내용을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판결을 내렸다"며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사건의 내용과 그에 대한 자료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우리 측에서 항의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피고소인 측은 "A씨가 용역들을 동원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A씨가 입주자 대표회의를 개최해 재건축 추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 100명을 회장인 자신에게 위임해줄 것을 요청하는 안을 8월, 9월 2차에 걸쳐 상정 하였으나 참관한 주민들의 항의와 야유로 무산됐다.

그러자 신원 미상의 검은 정장을 한 우락부락한 청년 20명을 회의실 입구 2층 계단에 배치하여 자신의 지지세력만을 입장시키고 참관주민 및 반대세력의 입장을 원천봉쇄하고 입장을 통제했다고 피고소인 측은 주장했다. 피고소인 측은 "이로 인해 동대표 참석률이 구성원 과반수에 미달했다"고 성토했다.

이 같은 내용은 2009년 10월쯤 한 지상파 주요 뉴스시간에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분노한 주민들은 A씨가 거주하는 10동을 비롯 당시 회의에 참석한 동대표가 거주하는 해당 동을 순회하면서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는 등 대소동이 벌어졌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