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폐된 검사 비리' 잇따라 수면 위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전경. / 연합뉴스
특임검사팀, 현직고위검사 거액 뇌물혐의 첫 기소
다단계 사기범 측근과 유진그룹에서 10억 상당 금품 제공 혐의

윤모 전 용산세무서장 금품수수 의혹 조사
업체 골프접대 과정에서 현직 검찰간부 2명 동행
경찰 검사리스트 확보 불구… 감찰부 사실무근 결론
시민단체 "막대한 검찰 권력 견제… 제도 개혁 시급" 한목소리


다단계 사기범 측근과 대기업 등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현직 고위검사가 사상 처음으로 구속 기소되면서 검찰개혁의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사비리 의혹'을 수사한 김수창 특임검사팀은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근과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10억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뇌물 등)로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51ㆍ사법연수원 20기)를 구속기소했다고 지난 7일 밝혔다.

특임검사팀에 따르면 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으로 근무하던 2008년 5월부터 2010년 1월까지 검찰의 내사를 무마해주는 대가로 유진그룹 유경선(57) 회장과 동생 유순태(46) EM미디어 대표로부터 5억9,300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다. 또 이 시기에 조희팔의 측근 강모씨로부터 2억 7,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도 있다.

뇌물수수로 물의를 일으킨 김광준검사.
김 검사는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11월부터 지난해까지는 국정원 직원 안모씨 부부가 기업인을 협박해 투자금 회수 명목으로 8억원을 뜯어낸 사건에 부당개입한 대가로 안씨의 부인으로부터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12월에는 특수2부가 수사중인 KTF 납품비리 수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KTF 홍보실 임원으로부터 667만원 상당의 홍콩 여행경비를 지원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지난 2005년 6월부터 올해까지 A스틸 대표이사 이모씨(52)로부터 5,4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있다. 그동안 김 검사는 이들에게서 뇌물을 수수하면서 일반인 조모씨 등의 명의를 빌린 6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골프장 수색영장 검찰 기각

특임검사팀은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 가운데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수했다는 의혹 ▦고양 종합터미널 건설과 관련한 제일저축은행 대출개입 의혹 ▦제일저축은행 수사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 ▦모 제약회사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 ▦의정부지역 S건설사로부터 아파트 분양권 등을 수수했다는 의혹 ▦KTF로부터 향응 외에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3일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검찰 비리와 검찰개혁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검찰은 ▦종합건설업체 최모 대표로부터 1억원 수수 의혹 ▦B유업 박모 대표로부터 2,000만~3,000만원을 수수한 의혹 ▦부동산업자 김모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받은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는 확인했다. 하지만 직무관련성을 입증할 만큼 수사를 진행하지는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로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검찰이 김광준 검사를 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최근 검찰 주변과 정치권 일부에서 "비리검사가 추가로 더 있으나 검찰이 내부적으로 이들의 비리를 은폐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서는 검찰 고위급 인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검사장이 A기업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것으로 검사장의 부인이 서울 부촌으로 소문난 건물에 A기업으로부터 세내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일반인은 임대가 거의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부인이 약국을 임대한 것은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재벌 수사를 책임지는 검사장이 A기업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문제의 건물에는 여러 개인병원이 입주해 있는 가운데 약국은 부인이 운영하는 게 유일한 것이어서 '독점형 알짜'라는 말도 나온다.

검사장은 2010년, 2011년, 2012년 고위공직자 재산신고 때 신고했지만 소재지의 빌딩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더욱 의심되는 것은 검사장이 A기업과 관련된 수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검찰 수사는 '봐주기 수사'논란을 낳으며 마무리됐다. 수사 관련 핵심인물 가운데 특별히 처벌받은 이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검찰 주변에서는 검사장이 최근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 "피신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광수대)는 수사 중인 윤모 전 용산세무서장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서도 검찰 비리가 나올 조짐이다. 경찰은 현직 부장검사가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해준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윤 전 서장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분석해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다.

윤 전 서장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진 건 6월. 광수대는 서울 성동구 마장동 육류수입가공업체 T사(대표 김○○)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에서 이 업체 대표가 윤 전 서장에게 오랫동안 금품을 제공하고 골프접대를 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 수사를 받던 윤 전 사장은 9월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상 도주한 윤 전 서장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윤 전 서장이 현직 검찰 고위간부 B씨의 친형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 경찰은 B씨가 윤 전 서장의 해외 도피에 관여했는지 여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한 관계자는 B씨의 연루 가능성을 부인했다. 이 관계자는 "B씨는 검찰 내에서 매우 평이 좋은 사람이다. 그가 친형을 위해 그런 위법행위에 가담했을 리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윤 전 서장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윤 전 서장은 현재 캄보디아에 체류하고 있다. 광수는 "육류수입가공업체 대표 김모씨가 수백억원대 세금을 탈세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 대가로 금품과 골프접대를 받은 의혹을 사고 있는 윤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지난 11월 16일 발부됐다"고 같은 달 23일 밝혔다.

경찰은 윤 전 서장에 대해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청하고 지명수배했다. 경찰은 체포영장 신청과 동시에 윤씨가 골프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이를 기각했다. 경찰은 윤씨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 총 여섯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사를 통해 경찰은 주목할 만한 내용을 추가 입수했다. 그것은 윤 전 서장과 김씨가 골프를 칠 때 현직 검찰간부 2명도 같이 했다는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다. 경찰은 윤 전 서장과 김씨가 골프를 친 골프장 수사를 통해 이 골프장을 드나들었던 검사 리스트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리스트 분석을 통해 피조사자 또는 그와 관계된 인물이 로비성격의 골프를 쳤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소식통에 따르면 경찰은 이미 이 골프장을 이용한 일부 검사들의 비리 혐의를 잡고 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주철현 대검강력부장이 지방소재지 골프장에서 당시 검찰조사를 받고 있던 모 인사와 골프를 쳤다는 제보가 감찰에 접수돼 감찰조사를 벌였다.

지난 5월쯤 마무리된 이 조사에서 감찰부는 '사실무근'으로 결론내렸다. 그러나 이 내용을 제보한 이는 여전히 "사건무마청탁을 위해 골프를 쳤다"고 주장하고 있어 검찰이 문제를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지난 7일 김 검사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것과 관련, "막대한 검찰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재근 참여연대 사법감시팀장은 "그간 검사가 저질렀던 뇌물범죄 중 가장 큰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자 검찰 권력의 오만스러운 모습이 확인된 사건"이면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상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팀 간사는 "김광준 검사의 구속기소 하나로 '검찰이 정신을 차렸다'고 평가하기 아직 무리다"면서 "비리 의혹 수사, 기소 과정까지 검찰 내부에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신수경 새사회연대 대표는 "지금은 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구심이 든다. (김광준 검사 혐의도) 2008년부터이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면서 "판검사만 전담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고비처가 빨리 설치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윤지환기자 jj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