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가장 먼저 극복 '功'… 양극화·취업난·경제난 심화 '過'측근 참모들 상당수 구속수출주도 경제활성화 정책… 일부 재벌기업만 배불려'747 公約' 결국 '空約' 으로

이명박
누구에게나 시간은 빨리 흐르지만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대통령만큼 세월이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을까. '권불오년'(權不五年)과 '화무오년홍'(花無五年紅). 아마도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의 지금 심정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불과 5년 전인 2007년 12월에 이 대통령은 역대 대선 사상 가장 큰 표 차이로 2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는 두 달 후 청와대에서 봉황 무늬 의자에 앉았다. 그때 이 대통령의 심정은 어땠을까.

당연히 임기 5년 내 국가적 과업을 완수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5년 이란 긴 세월이 보장돼 있는데 지금의 열정과 의욕이라면 무엇을 못해내겠느냐는 자신감도 넘쳤을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세월은 쏜살 같았다. 자신이 의도했던 국정 목표를 얼마나 이뤘는지는 지금 시점에서 판단키 어렵지만 이 대통령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이번 대선을 지켜봤을 것이다. 두 달 후 18대 대통령에게 봉황 무늬 의자를 넘겨 줄 생각을 하면서 5년 전 당시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역사에 대한 평가는 후사가들에 맡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임기가 이어지는 상황인데도 이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을 비롯해 각계의 공격 대상이 됐다. 객관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같은 공격의 와중에 매우 박한 평가점을 받았다. 총선과 대선이 임기 마지막 해 실시된 데다 지난해 10월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마저 있었던 게 가장 요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 11월 22일 광주광역시 영산강에서 열린 '4대강 살리기 희망선포식' 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연합뉴스
야당은 거의 1년 넘게 현정부의 실정을 물고 늘어졌고 여당마저 어느 순간부터는 이 대통령과 결별 수순을 밟았다. 선거전에서는 아무래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 유권자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됐던 1992년에도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 열렸다. 하지만 그때는 군 출신 노태우 대통령 시절이라 상대적으로 지금에 비해 레임덕 현상도 크지 않았고 그의 든든한 후원자격인 군부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경우 보위하던 친이계 의원들은 이번 총선을 통해 친박계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지리멸렬했다.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정치적 멘토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비리 혐의로 구속됐고, 측근 참모들도 상당수 수감됐다. 그를 지켜줄 정치적 후원자들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내곡동 사저 부지 비리 의혹이 터진 이후 큰형과 아들은 특검의 조사까지 받았다. 이 문제가 다음 정권에서 다시 불거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보호막이 사라진 상태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두 차례의 큰 선거 때문에 레임덕이 생각보다 조기에 닥쳐온 것이다.

이 같은 선거가 줄줄이 치러지는 상황에 안철수 전 후보 같은 제3 세력이 정치 쇄신을 기치로 목소리를 높여가다 보니 이 대통령은 더욱 많은 사람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업적을 언급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점점 빠져들었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공(功)마저도 과(過)로 취급 받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주요 선거가 끝났다. 여야가 다시 차분히 지난 5년을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 대통령의 실정을 지나치게 부각하면서 공격했던 것은 아닌지, 이 대통령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냉철히 지난 5년을 되짚어보고 이 대통령이 지나간 길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할 때다. 승계할 것은 승계하고, 보정할 것은 보정하고 버려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비판하며 접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만큼 여야가 뜨겁게 맞붙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그에 따라 국민도 여야로 갈려 다소 비생산적인 논쟁에 매몰돼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냉철하게 이 대통령의 지난 임기 4년 10개월을 떠올려보자.

4대강 주력하다 민생 파탄?

야권에서는 현정부를 총체적으로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했고 경기는 바닥을 치고 있다. 부동산 경기는 얼어붙었고 대학등록금과 사교육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취업난은 여전하고 대북관계마저 악화 일로에 놓여있다는 게 주 공격 포인트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임기 내 환경 오염 문제를 유발한 4대강 사업에 치중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의 균형적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자. 사회적 양극화가 이전 정권보다 더욱 심해졌다는 부분은 딱히 수치나 통계로 규정하긴 어렵다. 체감적으로 그런 것 같다는 분위기에 편승한 논리다. 더구나 사회적 양극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계속돼 온 문제다.

사회적 양극화는 경기 부양과도 직결돼 있다. 전체적인 경기가 살아나 경제적 훈풍이 사회 곳곳에서 불면 서민들의 지갑이 두툼해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정부가 재벌기업 등 특정 집단에 부(富)가 편중되는 것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경제적 자립을 돕는 정책에 힘을 기울인다면 양극화 해소에 어느 정도 진척을 볼 수 있다.

현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대기업의 수출 활동 등에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쪽은 이런 식으로 수입이 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정작 아래로는 이 같은 소득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다. 여기에다 재벌기업이 소상공인의 생활을 위협할 만한 업종까지 치고 들어왔고 골목상권을 잠식할 대기업 산하 대형 마트들이 속속 고개를 들었다.

수출 주도의 경제 활성화란 부분에서는 나름 성과를 보였다고는 하나 일부 재벌기업만 배 불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현정부가 일단 위는 열었으니 차기 정부가 아래로 내려보내는 일에 치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와 대학등록금, 사교육 문제는 사실 이전 정권에서부터 시작됐다. 강남지역 30평형대 아파트 시가가 12억~13억원에 육박하면서 강북지역의 같은 평형대에 비해 최고 4배가량 비싸진 게 바로 이전 정권 일이다. 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생전에 "부동산 빼고는 참여정부가 꿀릴 게 있느냐"고 말한 바 있다.

서울 인근 경기 지역의 부동산 건설 붐도 이때 일어났다. 그때부터 우후죽순 지어진 아파트 촌의 분양이 당초 생각보다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자 그 후유증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현정부가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학등록금이나 사교육 문제 부분도 딱히 이 정권 들어 더욱 심화했다고 볼 여지는 없으나 마찬가지로 왜 이에 대한 해소책 마련에 소홀했느냐는 지적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밖에 대학입시 문제와 공교육 강화가 당초 기대치에 못 미쳤고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에서도 별반 얻은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경제위기 극복 세계 최고

현정부도 5년의 성과에 대해서는 할말이 적지 않다. 먼저 정부 취임 첫해인 2008년에는 미국발 금융 쇼크로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등 기라성 같은 투자은행이 부도나면서 그 여파는 세계 전체에 미쳤다.

당장 유럽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어 아시아 국가로 위기의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미국은 양적 완화 정책을 통해 마구 달러를 찍어냈고 인플레 현상은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유럽에서도 그리스 스페인에 포르투갈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국가적 부도를 맞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이들 국가의 재정위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현정부는 외교적으로는 주요20개국(G20) 회의의 서울 유치와 한중일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등의 노력을 기울였고 대내적으로는 기업들의 수출 강화를 통한 내수 진작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 중 가장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국제사회에서 받게 됐다. 이와 관련 미국의 경제전문지 FP지는 최근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은 세계 최고"라고 격찬했다.

원전 수출도 이 정부의 히트작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우리 기술에 대한 원전 수출 계약을 성사시켜 원전 수출국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원전 선진국인 프랑스를 상대로 일군 성과라서 더욱 값졌다. 이후 우리는 동유럽 국가 등에 제2, 제3의 원전 수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또 한미 동맹 강화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등도 주요 성과로 볼 수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서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야권이나 일부 환경단체는 크게 잘못된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4대강 유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극렬 시위를 벌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4대강의 환경 오염이 심각해지면 가장 먼저 재산상 피해를 보는 쪽은 유역 주민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태껏 조용하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야권은 물론 학계와 언론계에서도 불필요한 곳에 국부를 낭비한다는 반대가 빗발쳤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후 우리 경제의 비약적 발전에 가장 필요했던 것이 고속도로였다는 것이 입증됐다. 때문에 4대강 사업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국정의 우선순위가 4대강 사업에 맞춰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국책 사업에 소홀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의 소지는 물론 있다.

또 취임 전 공약인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시대, 세계 7대 경제국) 목표는 물거품이 됐다. 결국 공약(空約)으로 끝났다는 지적은 가능하지만 현정부는 "이젠 국내 경제도 모든 면에서 세계 경제와 연동돼 있어 우리 경제 성장률도 전체적인 세계 경장지표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이유를 댄다.

즉 세계 경제가 불황을 거듭할 때 우리만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반대로 세계 경제가 호황인데 우리 혼자 뒷걸음치는 일도 흔치 않다는 일이다. 이와 관련 현정부 관계자들은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3% 안팎의 성장률을 보인 건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며 "오히려 참여정부는 세계적 호황기에도 4% 성장에 그친 바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권에도 우리 국민은 딱히 우수한 성적표를 쥐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현정부 역시 역대 어느 정권과 마찬가지로 국가 발전을 위해 힘껏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젠 선거도 끝났으니 굳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댈 필요도 없다. 떠나는 이들에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면 족하다. 평가는 후대에 맡기자.



염영남 한국일보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