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과 인사 검증 협력시스템 구축해야보안 중시하다 검증 소홀… 김용준 낙마 밀봉인사 참극다음 인선도 부실땐 정권 초반 파행 위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 참석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류효진기자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김용준 위원장의 국무총리 후보직 자진 사퇴를 놓고 박근혜 당선인의 첫 위기가 도래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당초 김 위원장의 총리 후보 지명을 놓고 갖은 의혹이 제기되자 박 당선인 측에서는 "첫 총리를 지명하는 데 아무런 준비 없이 할 리가 없다"며 "의혹이 일고 있는 부분은 차차 해명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불과 닷새 만에 후보자가 자진 하차하는 촌극으로 마무리됐다. 이 같이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데에는 '박근혜식 깜깜인사' '밀봉인사'가 부른 참극이란 데 이견이 없다.

김 위원장의 아들 병역 문제나 부동산 등 재산과 관련한 의혹은 과거 신문기사만 들춰봐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문제가 향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분명히 야권 등에 의해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한 데도 박 당선인은 김 후보자의 지명을 강행했다.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인선 과정에서 청와대와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철저한 사전 검증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주간한국 자료사진
박 당선인이 이 같은 사항을 모두 보고 받고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봤거나 아니면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자세히 보고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자세히 보고를 받지 못했다면 인사시스템의 보고 라인이 가장 기초적인 것마저 체크하지 못할 정도로 허술하게 구성돼 있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또 보고를 받고도 무시했다면 박 당선인의 판단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가에서는 김 위원장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 당선인이 지명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즉 박 당선인이 철통 보안을 강조하는 바람에 오히려 객관적이고 공개적인 인사 검증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인사 실패 사례는 이번뿐이 아니다. 가깝게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때, 또 지난해 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구성 때에도 박 당선인의 '나홀로 인사' 스타일에 대한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1월 19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에 외부 인사 몫으로 선임된 진영아 위원이 하루 만에 자진 사퇴했다. 대선 이후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임명이 도마에 올랐고, 하지원 윤상규 인수위 소속 청년특위 위원의 경우에도 뒷말이 무성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으로부터 특수업무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하는 과정에서 박 당선인과 일정 부분 조율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선 논란이 반복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선 총리 인선과 조각(組閣) 과정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새 정부가 순조롭게 출범하려면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늦어도 2월 중순 이전에,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2월 20일까지 완료돼야 한다. 하지만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사퇴로 이 같은 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만일 이전과 같은 인사 실패 사례가 추후 조각 과정에서 반복될 경우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 각료 인선이 마무리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박 당선인이 일정 기간 현정부 장관들과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등 '어색한 동거'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의 최대 위기'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김용준 낙마, 예고된 참사

김용준 총리 후보자 인선 과정에서는 철저히 박 당선인이 비선을 이용한 나홀로 인사였다. 인사의 기본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검증을 요청하는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 박 당선인의 최측근마저도 그간 인선 이야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칠 정도라면 인선의 '폐쇄성'이 심각했다.

과거 정권의 검증담당 인사는 "통상 검증자료를 모두 마련한 뒤 지명자를 발표하는데 총리실이 발표 이후에 청문회 자료를 준비하는 것을 보며 의아했다"며 "특히 법관이나 교수 출신을 인선할 때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이런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김 후보자 논란은 예고된 참사였다"고 지적했다. '깜깜이 인사', '나홀로 검증'이라는 평가를 받는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이 워낙 보안을 중시하다 보니 검증이 소홀하고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앞으로 진행될 조각 인선이 더 큰 과제라는 우려가 많다. 17명의 장관을 비롯해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할 대상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정치권과 언론을 비롯한 각계 검증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총리를 비롯한 각료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이 스스로 후보직을 사양할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부동산이나 병역 등의 큰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처럼 판공비 관리 문제까지 파고들 경우 무사 통과할 인사들이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때문에 벌써부터 총리나 장관 후보자로 거명되던 이들 중 일부는 아예 언론에다 "공직을 맡을 생각이 없다"는 말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공직 사양에 대해 여러 사유를 대고 있지만 각종 검증 과정에서 치명적 난타를 당하며 위신만 깎인 채 사장될 것을 우려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 당선인이 정부 출범을 앞두고 더욱 조급해지고 있는 이유다.

청문회 통과 여부가 최우선

2월 안에 총리와 장관 인사청문회를 마쳐야 하는 박 당선인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인사를 고르는 것에 앞서 각종 검증 과정을 통과할지 여부를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상황이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1월31일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임명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선 협의, 그리고 김용준 총리 후보자 지명으로 박 당선인의 인선 능력에 일단 의문 부호가 생긴 만큼, 후임 각료 인선은 인사청문회를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느냐에 가장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도 '김용준 낙마'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검증을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박 당선인은 1월30일 새누리당 강원지역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현 인사청문회가 정책 능력보다는 후보자 본인이나 가족의 사생활에 대한 검증이 주가 되면서 잘못 가고 있다는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후보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결정적 흠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박 당선인이 이제서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신율 명지대 교수는 "차기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박 당선인이 잘못된 점은 지금이라도 발 빠르게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인선 실패 위험성 줄여야

총리를 포함해 20명에 육박하는 조각 인선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려면 현재 당선인 비서실에 배치된 검증 인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는 일년 내내 공직자 검증만 해도 손이 부족할 정도로 업무가 많았다"며 "대통령직인수위 단계는 단기간에 검증할 인사 대상자가 많은데다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아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검증, 인사추천회의의 심사를 거쳐 정밀 검증까지 실시하는 2중, 3중의 검증을 진행해도 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현행 박 당선인의 인사시스템으로는 기초적인 검증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박 당선인이 청와대의 검증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조각 인선의 실패 위험성을 줄이는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정권 출범 때 조각 인선을 둘러싼 논란을 빚은 것도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직전 정부와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 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박 당선인의 검증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것이 김용준 총리 후보자 인선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에 앞으로는 보안을 지키더라도 청와대와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철저한 검증을 진행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도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은 이명박 정부의 것이 아니라 국민 혈세로 운영되므로 '현정부에 빚진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권 내부에서는 인사 검증 전문가들과 정부 기관 파견자들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인사검증팀이나 태스크포스(TF)를 꾸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 당선인 측근을 팀장으로 해서 청와대 인사검증팀과 국가정보원의 자체 분석 요원들을 동원, 비상 인선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같은 구상 방안에 대한 최종 결정은 박 당선인이 내려야 한다. 만일 지금의 나홀로 인선을 고집하다 '제2의 김용준 사태'가 터질 경우 차기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은 예측 불허 상태로 흐를 수도 있다. 지금 박 당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철통 보안에 앞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검증이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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