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계-롯데, 인천터미널 부지 공방"롯데-인천시 본계약 보류" 인천지방법원 권고… 28일 심리 후 3월 결론1997년 신세계-인천시 20년 장기임대가 시초법적공방 마무리돼도 불씨

인천터미널 및 주변환경 조감도
인천터미널 부지를 놓고 벌이는 신세계와 롯데의 법정 공방이 늦어도 3월 중에는 '일단' 끝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14일 열린 인천터미널 부지 '매매계약 이행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에서 인천시에 "재판부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본계약 체결을 보류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권고했다.

이에 인천시 측은 "3월 말까지는 매매계약을 완료하지 않겠다"며 "다만 극심한 재정난이 우려됨으로 매매대금 종결일 이전에 가처분결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인천시의 요청과 본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할 때 인천지방법원은 오는 28일 두 번째 심리를 마치고 늦어도 3월 중에는 결론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법적 공방이 어느 한 쪽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완전한 결말은 되지 못할 전망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인천터미널 부지를 둘러싸고 인천시-신세계-롯데의 입장차이가 큰 데다 계약체결 과정에서 발생한 의혹도 상당수"라며 "법정 공방이 내달 중 마무리되더라도 실질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싹터

인천터미널 부지를 둘러싼 신세계-롯데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부터다. 그러나 분쟁의 씨앗은 1990년대 후반부터 움틀 시기만을 엿보고 있었다.

인천터미널 부지는 완공 시점인 1997년부터 20년간의 장기임대계약을 인천시와 1994년 체결한 신세계가 그동안 이용해왔던 땅이다. 1997년 인천터미널과 함께 문을 연 신세계 인천점은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전국 백화점 매출 7위, 그룹 내 매출 3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점포로 성장했다.

롯데도 신세계와 비슷한 시기에 인천에 발을 들였다. 롯데는 1999년 동아시티백화점을 인수해 롯데백화점 부평점을 열었고 2002년에는 신세계 인천점과 불과 1㎞ 떨어진 곳에 롯데백화점 인천점을 개장했다.

그러나 야심 차게 붙은 상권대결에서 롯데백화점 인천점은 신세계 인천점에 밀려 만년 2위 업체에 머물렀다. 인천점과 부평점 매출을 합해야 가까스로 신세계 인천점 매출 절반 수준에 다다를 정도로 규모 차이가 확연하다. 롯데가 2017년에 종료되는 신세계의 임대계약 시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라는 유통업계 전문가들의 해석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롯데가 인천터미널 부지를 매각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데 반해 신세계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공개입찰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되더라도 '우선매수권'을 가지고 있는 터라 바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2011년 이미 임대차 계약 연장을 기정사실화하고 매장면적을 1만6,500㎡ 늘리는 대규모 증축 리뉴얼한 것도 이를 뒷받침했다.

지난해 9월 인천시가 롯데를 인천터미널 부지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며 상황은 돌변했다. 인천시와 롯데는 매각대금 8,751억원에 인천터미널 부지를 넘기겠다는 내용의 투자약정을 체결, 사실상 매각계약을 종결했다.

예상외의 전개에 당황한 신세계는 문제를 법적 공방으로 끌어들였다. 신세계는 지난해 10월 8일 인천시를 상대로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인천지방법원이 "신세계 측이 보전하고자 하는 권리의 존재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가처분신청을 기각하자 신세계는 같은 달 23일 '부동산 매각절차 중단 및 속행 금지 가처분신청'을 다시 냈다. 인천지방법원이 두 번째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며 사실상 인천터미널 부지 매각작업은 중단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인천시와 롯데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인천시는 법률전문가들의 의견과 정책조정회의를 거쳐 롯데와 인천터미널 부지매각 본계약을 체결했다. 재정이 어려운 인천시로서는 세수 확보가 최우선 과제였다는 명목을 내세운 것이다.

매입주체를 롯데쇼핑이 아니라 롯데쇼핑이 외국인 투자를 받아 세운 롯데인천개발로 바꾸고 총 매매대금은 기존 액수(8751억원)보다 249억원 올라간 9,000억원으로 책정, 헐값매각 논란을 불식시켰다.

인천시와 롯데가 본계약을 체결했음에도 신세계는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을 취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신세계는 인천시와 롯데가 본계약을 체결한 직후인 지난달 31일 '매매계약 이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럼에도 롯데가 롯데인천개발을 통해 자금 마련에 박차를 가하자 지난 8일에는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며 맞섰다.

계약과정에서 의혹 증폭

인천터미널 부지를 둘러싼 갈등의 쟁점은 간단하다. 인천시 상권을 장악할 수 있는 노른자위 땅을 놓고 벌이는 신세계-롯데의 갈등과 심각한 재정난으로 매각대금을 빨리 받고 싶은 인천시의 입장이 뒤섞인 것이다. 문제는 인천시와 롯데의 계약과정에서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왜 수의계약을 체결했어야만 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조금이라도 많은 매각대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인천시는 롯데와 신세계, 그리고 당초 유력 매수자로 지목됐던 현대백화점 등을 포함해 공개입찰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인천시는 지난해 중반 인천터미널 부지 매각 논의가 나왔을 때부터 매수자로 롯데를 지목, 특혜의혹을 양산했다.

인천시는 "신세계가 해당 부지를 매수할 의사와 자금력이 없기 때문에 매수적격자인 롯데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신세계 측은 "우리는 이 부지를 입찰을 통해 사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왔음에도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인천시 측은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세계에 터미널 부지 매입을 요구했지만 수개월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고 매입 의사도 없다고 밝혔다"며 "뒤늦게 롯데쇼핑이 매수에 참여하자 온갖 방해와 음해를 일삼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해당 부지의 가치로 볼 때 신세계가 어떤 식으로든 계약을 이어나가려 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인천시-롯데 간 수의계약에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법적 공방을 풀어내기 위해 롯데 측에서 설립한 롯데인천개발의 존재도 상당한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수의계약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급조해 만들었지만 오히려 더욱 큰 논란만 낳고 있는 것이다.

롯데인천개발은 롯데가 인천터미널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설립한 특수목적회사다. 롯데는 외국인투자기업인 롯데인천개발을 앞세워 비로소 수의계약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롯데인천개발은 등기이사 4명을 모두 롯데의 기존 임원들로 채우며 논란을 일으켰다. 대표이사는 롯데쇼핑의 김현수 재무부문장이 맡고 있고 명노훈 호텔롯데 경영지원부문장, 석희철 롯데건설 건축사업본부장도 등기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갑 감사 또한 롯데쇼핑의 마케팅부문장을 겸직하고 있다.

외국인투자기업이라면서 외국인은 단 한 명도 회사 운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인천터미널 부지 매각 계약과정에서 불거진 수의계약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위장 외국인투자기업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인천지방법원의 권고를 인천시에서 받아들이면서 인천터미널 부지 계약에 대한 법적 공방은 내달 중 결판이 날 예정이다. 이미 본계약이 상당 부분 진행된 이상 승리의 무게추가 롯데와 인천시 측에 기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혹이 상당수 남아있는 이상, 법적 공방의 승자가 누가 되건 간에 앞으로도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