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총장 호감도 1위… 野, 안·문 선두 박원순 다크호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청와대 접견실로 안내하고 있다. 고영권기자 /2013-08-23(한국일보)
변신 시도, 지방선거 출마 유동적
새롭게 부상, 홍준표··원희룡 기지개
안철수신당-민주당 관계 설정 최대 변수
마지막 도전, · 재선 관건

세상에서 정치권처럼 변화 무쌍한 곳도 없다. 오죽하면 정치를 움직이는 생물에 비유했을까. 특히 우리나라처럼 격변의 정치가 쉴새 없이 반복되는 곳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듯 내일 일도 예견하기 어려운 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그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기약도 없이 무려 4년 2개월 이후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2017년 12월 펼쳐질 19대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7개월 여 밖에 되지 않았고 임기가 4년 반 가량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무슨 차기 대선 운운하느냐고 지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역대 대선을 되짚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5년 전 이명박정부 취임 초에도 박 대통령은 이미 가장 유력한 차기 후보로 꼽혔고 당내에서도 친박계라는 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떨어졌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사실상 박 대통령은 18대 대선을 겨냥한 몸풀기를 시작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단일화 논의를 위해 만난 무소속 안철수 의원(왼쪽)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 류효진기자 /2012-12-06(한국일보)
10년 전 노무현정부가 들어섰을 때에도 세인들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박근혜 의원을 당시 야권의 유력 후보로 꼽고 있었고, 여권에서는 노 대통령과 후보 경선을 치른 정동영 의원 등을 후보감으로 점찍었다. 실제 18대 대선은 이들 4명의 각축장이었다.

따라서 차기 대선을 지금 시점에서 거론하는 게 이른 감은 있지만 여야간 큰 틀의 격돌은 정해져 있고 각기 후보군은 최종 출전권을 향한 잰걸음에 들어가 있기에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미래의 대한민국을 그려볼 수 있는 작은 포인트가 되기엔 충분할 것 같다.

주목되는 반기문의 급부상

추석 연휴 직전에 여론조사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차기 대선 후보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흥미로운 내용이 나타났다. 정치권에 전혀 발 들여놓지 않았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4.9%로 전체 1위를 차지한 것. 2위에는 안철수 무소속 의원(19.9%), 3위엔 문재인 민주당 의원(8.7%)이 올랐다. 이어 서울시장(7.0%), 경기지사(4.3%), 새누리당 의원(4.1%), 새누리당 의원(3.2%), 민주당 고문(2.8%) 순이었다.

2위 안 의원과 3위 문 의원, 4위권의 박 시장과 김 지사, 정 의원 등은 그간 여야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전력이 있어 당연히 차기 후보감으로 예견됐지만 이들을 제치고 반 총장이 1위에 오른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 진다.

정몽준
반 총장이 대선을 언급한 적도 없고, 여의도와는 아무런 인연을 가진 적이 없는데도 지금 시점에서 차기 대선에 가장 가까운 인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반 총장의 호감도는 지역별로 대구 경북에서 46.8%로 조사돼 고향인 충청지역(20.8%)보다 배 이상 높았다. 호남(13.5%)이 가장 낮았다.

여야 지지층 별로는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33.7%로 높았고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의 호감도는 10.3%에 그쳤다. 연령별로 비교적 고르게 호감도가 나타났으며 20대(28.1%)가 60대 이상(22.2%)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충북 음성 출신인 반 총장은 1944년생으로 올해 69세며 대선이 치러지는 2017년에는 73세가 된다. 만일 대선 출마에 나설 경우 고령이 다소 걸림돌이 될지는 모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71세에 당선됐고 민주당 후보군인 고문도 대선 해에 70세가 되기에 반 총장의 경우도 나이 부분이 그다지 결정적 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호감도 분석에서도 나타나듯이 2016년 12월 임기를 마치는 반 총장이 귀국할 경우 야권보다는 여권의 러브콜이 쇄도할 가능성이 높다. 후보군이 적지 않은 야권보다는 상대적으로 여권 성향의 반 총장에게 현정부가 매력을 느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1970년 외무고시 합격 이후 줄곧 외교부에서 근무한 외교통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육영수 여사와 고향(충북 옥천)이 같은 충북이란 점에서 박 대통령도 반 총장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김무성
물론 반 총장은 문재인 안철수 의원이 야권 후보로 부상하기 전 야권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본인이 대선 출마를 강력 부인하면서 유엔 사무총장 재선에 전념하는 바람에 대선 후보군에서는 사라졌었다. 그러나 반 총장이 최근 박 대통령의 극진한 영접을 받았고 새마을운동을 제3세계 국가 등에 보급하려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반 총장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여권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김태호 의원과 경기지사, 임태희 원희룡 전 의원 등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경우 정권 핵심층에서는 차기에 대한 방향타를 단번에 선회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권 후보군 기지개 시작

2002년과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대선 도전에 사활을 건 의원을 포함해 경기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의원, 원희룡 오세훈 전 의원 등도 4년여의 장기 레이스에 대한 태비를 갖추고 있다.

정 의원은 전국의 복지 시설과 탄광, 농가 등 민생 현장을 도는 하방(下放)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재벌 2세에다 대기업 오너 출신이란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생각이다. 정 의원은 최근 박 대통령이 주창하는 창조경제를 비판하면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전략도 모색 중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한 행태와 같은 맥락이다.

김문수
지사는 내년 지방선거에 불출마하면서 중앙 정치에 복귀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 중이다. 정 의원과 김 지사는 1951년 생으로 62세 동갑이다. 다음 대선에선 66세가 되기에 연령적으로 보면 사실상 19대 대선이 최적기인 셈이다.

김 지사는 지난달 15일 지방단체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통일을 통한 성장과 지역 균형발전에 초점을 맞춘 8ㆍ15 경축사를 발표했다. 중앙정치 복귀를 위한 선언적 의미가 담겨 있다.

현정부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주자가 의원이다. 5선의 김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 공무 모임인 '근현대 역사교실'을 발족하면서 본격적인 당내 세 규합에 나섰다. 김 의원은 일단 내년 여름 치러지는 전당대회를 1차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 당 대표에 오르면 2016년 20대 총선의 공천권을 상당 부분 행사할 수 있어 세력 확보가 용이해진다. 그가 최근 들어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강조하는 등 우측 행보를 걷고 있는 점도 이런 목표점과 맞닿아 있다.

홍준표 지사는 큰 꿈은 마음에 담아 둔 채 조용한 행보 시작을 준비 중이다. 홍 지사는 보궐선거로 지사에 당선됐기에 내년 지방선거에서 한번 더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이후 여권의 변화상을 지켜보며 당내 경선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경선 출마 시 굳이 지사 직을 버리지 않아도 되기에 내년 재선 성공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태호 의원과 오세훈 전 시장, 원 전 의원 등은 대외적 행보를 활발히 하지는 않고 있으나 내년 지방선거 이후 보폭을 넓힐 태세다.

서청원
여권에서 이들 외에 눈여겨 볼 인사로 전 의원이 있다. 서 전 의원은 경기 화성갑에 보궐선거 공천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서 전 의원이 여의도 복귀에 성공할 경우 차기 당 대표에 근접할 수 있는 유력 주자가 된다. 1943년생으로 차기 대선에서는 74세가 된다는 점에서 고령 부분이 부담이지만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고 당권까지 거머쥔다면 욕심을 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야권은 문재인-안철수의 리턴매치?

야권에서는 지지율 조사 결과와 같이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가장 앞서 있다. 한번 대선에서 패배한 문 의원(8.7%)보다는 안 의원(19.9%)이 한발 앞서 있는 형국이다.

전체 후보군 조사에서 2위에 오른 안 의원은 30대와 화이트칼라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여전히 60대 이상(8.0%) 등 노령층에서의 저조한 지지율이 숙제로 남아 있다.

안 의원은 지방선거를 겨냥한 세력 확보 차원에서 신진 인사 발굴에 여념이 없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신당 돌풍이 불 경우 이를 바탕으로 20대 총선과 19대 대선까지 가속 페달을 밟겠다는 복안이다. 안 의원은 최근 대학을 도는 강연 정치를 재개한 바 있다. 야권의 유력 주자인 안 의원의 대선 행보에는 민주당과의 관계 정립이 가장 큰 문제다. 지난 대선처럼 야권 후보 단일화에 나설지, 그 이전에 민주당과 통합할지는 가늠키 어렵다.

박원순
문 의원은 전체 여론조사 3위에 올라 유력 후보군에는 여전히 이름을 걸어 놓았다. 하지만 지난 대선 패배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는 눈치다. 전체 지지율도 4위인 서울시장(7.0%)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자강(自强)을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부산에 머물면서 정국 해법을 찾고 있지만 대선 재도전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야권에서는 이들 두 명의 주자 외에 서울시장이 다크호스로 꼽힌다. 내년 지방선거 재도전을 약속한 만큼 이에 성공할 경우 파괴력은 배가된다. 중앙정부의 무상보육 지원 강화를 주제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복지 분야에서 박 대통령과 서서히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에는 개인적인 출판 기념회도 가졌다. 안 의원과 문 의원의 대여(對與)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언제라도 대항마로 출전이 가능한 예비주자임에는 틀림없다.

민주당 고문도 이번 대선 도전을 마지막 기회로 삼고 있다. 독일 베를린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면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설 분위기다. 경우에 따라 안 의원과 손잡을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안 의원이 차기 대선에서 55세가 되는 만큼 '손-안 연대'로 20대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당권은 안 의원, 대권은 손 고문으로 양분하는 식의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밖에 소장파 그룹에서는 인천시장과 충남지사가 거론되고 민주당 내에서는 정동영 정세균 고문이 여전히 호남 주자로서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19대 대선은 4년 2개월여가 남았다. 그 안에 수많은 정치 경제적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현 시점에서의 대선 논의는 뜬구름잡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여야 후보군의 마음은 이미 4년 후를 달리고 있다.

손학규
염영남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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