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무팀장 핵심 사안 증언 번복해 신빙성 논란 불러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현재 상고심과 파기환송심, 그리고 항소심을 받고 있는 재계 총수들의 이름이다. 지난해 이어졌던 총수들의 철창행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심 공판이 진행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향후 거취가 주목된다.

이 회장이 구속 기소된 지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중순 처음으로 법원에 출두한 이후 매주 공판을 진행해 온 재판부는 7일 결심 공판과 2월 중 열릴 선고공판만을 남겨두고 있다. 신장 이식 수술로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진 이 회장으로서는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기대하겠지만 공판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개월 만에 수사 완료

검찰이 이재현 회장의 비자금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한 것은 CJ그룹 본사, 제일제당센터 및 임직원 자택 등의 압수수색에 나선 지난해 5월21일부터였다. 이후 검찰은 CJ그룹 세무조사 자료, 주식거래자료, 주주명부, 해외대출 및 부동산매매 관련 금융거래 자료 등을 차례로 확보하고 CJ그룹 회장실 재무담당인 신동기 부사장을 구속기소 하는 등 일사천리로 수사를 진행했다. 이 회장 또한 6월22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7시간, 11시간의 소환조사를 받았다.

수사에 나선지 41일 만인 지난해 7월1일 이 회장을 구속수감한 검찰은 2주간의 보강 수사를 거친 후 이 회장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및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국내 3,600억원, 국외 2,600억원 등 총 6,200억원에 달하는 이 회장의 비자금에는 선대로부터 상속한 재산과 횡령한 회사 자금, 차명주식을 매입ㆍ관리하면서 불린 자금 등이 혼재돼 있었다.

검찰은 이 회장이 회장실 산하에 총수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2팀’을 운영하며 비자금 조성을 맡겨 왔고 해외 법인에도 전담 직원을 두고 비자금을 관리했다고 보았다. 특히, 해외 비자금의 경우 전부 회사 자금 횡령을 통해 조성된 것이 눈에 띈다. 해외 비자금 조성을 위해 이 회장은 총 19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조세피난처에 설립하고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 소재한 7개 외국 금융기관에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546억원의 세금을 포탈했다. 검찰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계좌 중에는 이익의 귀속자가 이 회장으로 적시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이 회장은 인도네시아 법인 등에 근무하지도 않았던 임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처럼 꾸며 해외법인자금 115억원을 횡령했고, 개인 소유의 건물 2채를 일본에서 구입하면서 현지법인을 담보로 제공하고 연대보증을 세워 각각 244억원, 569억원을 빼돌린 혐의도 받고 있다.

핵심 증언 번복 재판 영향 줄 수

CJ 사건은 지난해 12월30일까지 세 차례의 공판을 거치며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 전 재무2팀장으로 이 회장의 개인재산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이 모씨의 증언과 제반 증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사 초기 이씨가 검찰에 넘긴 USB에는 이 회장의 일본 빌딩 구입과 횡령액, 국내 차명재산 관리 내용 등이 담겨 수사의 단초이자 주요 증거로 작용됐다. 이후에도 이씨는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이 돈을 요구한 정황, 이 회장과 전군표 전 국세청장, 신동기 CJ글로벌홀딩스 부사장 등이 회동했던 사실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검찰의 빠른 수사를 도왔다.

재판 과정에서도 이씨의 역할은 컸다. 2013년 12월17일 열린 첫 공판부터 검찰은 ‘CJ는 저에게 조국이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씨의 편지를 증거로 제시했다. 해당 편지는 이씨가 이 회장에게 복직을 요구하며 2007년 보낸 것으로 비자금 조성 및 세금 포탈, 해외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한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재현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차명주식을 불리는 것을 재무2팀의 업무가치평가(KPI) 기준으로 삼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30일 열린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씨는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 및 보관 수법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비자금은 CJ그룹 본사 14층에 위치한 비밀금고에 1만원권으로 1억 단위씩 보관, 필요할 때마다 회장실에 전달됐다.

이씨는 “비밀금고 안에 들어있는 현금 중 회사자금으로 사용된 돈은 전혀 없었다”며 “일단 비밀금고에 들어가면 모두 이 회장의 개인재산으로 바뀌어 자택 보수비, 차량ㆍ의복 구입비, 미술품ㆍ와인 구입비, 카드대금 지불 등으로 이용됐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CJ 사건의 대부분을 전 재무팀장인 이씨의 진술 및 증거자료에 의거했으나, 지난 30일 3차 공판에서 이씨는 검찰측과 변호인측 신문때 엇갈리는 증언을 반복해 신빙성 논란을 낳았다.

이씨는 검찰 신문에서 “법인자금 603억 여 원을 빼돌려 가족 생활비 및 차량 구입, 미술품, 와인 구입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씨는 변호인 반대 신문에서는 “자동차, 와인 등 사적 비용은 비자금이 아닌 차명 재산 매각 대금, 즉 개인 재산으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회사 돈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검찰 진술을 번복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씨는 검찰 진술에서 “부외자금이 회사를 위해(공적으로)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증언했지만, 변호인 신문에서는 “조성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 없으며, 공적 용도에 대한 정확한 취지도 알지 못한다. 자금이 포괄적으로 섞여 있어 공적인지, 사적인지 그 사용처에 대한 개념도 잘 모르겠다”고 엇갈린 발언을 했다.

이밖에 이씨는 비자금 조성과 부외자금 조성 등과 관련해 말을 바꾸거나 진술을 번복해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을 낳았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 씨가 부외자금 조성 등과 관련한 업무는 실질적으로 한 달 여 밖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회장의 개인 재산 관리 업무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것 같다”며 증언의 신빙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CJ 측은 이씨 퇴사 시 차량 트렁크에서 회사 관련 서류 및 수표 들어 있는 가방이 발견됐으며, 퇴사 후 이씨가 금전을 요구하는 등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CJ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된 이씨의 증언이 신빙성 논란을 불러오면서 재판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더구나 7일 재판에서는 전재무팀장이 이씨의 증언을 반박하는 사실들을 밝힐 것으로 알려져 이 회장에 대한 혐의는 더욱 불투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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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