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개선 실패 그룹 보살핌만 바래

서울 중구 장충단로에 위치한 신세계건설 사옥.
사상 최대의 위기상황을 맞은 신세계건설에 그룹 차원의 지원이 또다시 반복될지 주목된다. 내부거래 위주의 사업 체질을 바꾸고자 했던 시도들이 실패로 끝나며 진퇴양난에 빠진 신세계건설에 대한 신세계그룹의 지원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 방법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 특히, 정기주주총회에서의 정관변경으로 그동안 잠잠했던 유상증자설마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적자전환에 자본잠식도 코앞

'디자인신세계'라는 이름으로 1991년 설립된 신세계건설은 1994년에는 신세계백화점 특판 가구영업팀ㆍ인테리어팀ㆍ디스플레이팀을, 1996년에는 신세계백화점 건축팀을, 1997년에는 기술안전팀과 빌딩관리사업부 등을 통합하며 현재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신세계건설이 영위하는 사업은 크게 건설과 레저 부문으로 나뉜다.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설 부문의 주요 사업품목에는 백화점, 할인점, 아웃렛몰 등 대형판매시설 건설, 역세권과 상업시설을 연계한 복합개발사업, 주거 및 업무시설 신축 등이 포함된다.

시공능력평가순위 39위인 신세계건설은 지난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세계건설은 2013년 개별기준 매출 4,414억 원, 영업손실 202억 원, 당기순손실 1,311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대비 26.4% 감소했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측면에서는 아예 적자전환한 것이다.

재무안전성도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해 개발사업 부실로 대손충당금을 설정하면서 총 1,027억원 규모의 손상차손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신세계건설의 자본총계는 280억원으로 급감했다. 자본금이 2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아슬아슬하게 자본잠식을 피해간 셈이다. 2012년까지만해도 자본총계 1,601억원으로 자본금 대비 801%였던 것과 비교하면 재무안정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본총계의 급감으로 부채비율은 1,870%까지 치솟았다. 2012년의 부채비율 263%와 비교하면 1년 새 7배나 폭등했다.

실패 겹치며 위기 확산

수치로 드러나는 실적보다 더욱 큰 문제는 이후 전망조차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건설경기 불황이 이어지며 수많은 건설업체들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이에 굵직한 건설사들의 경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해외플랜트 건설이라는 새로운 수익창구에 뛰어들었고 중견 건설사들은 구조조정을 거듭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그룹 물량위주로 성장한 신세계건설에게는 뾰족한 대안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신세계건설은 백화점 업계 2위 신세계와 대형할인마트 1위 이마트 등 그룹 계열사들이 발주하는 상업시설 공사 물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가도를 밟아왔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2010년~2012년 신세계건설의 그룹공사 비중은 전체 매출의 70%를 웃돌았다. 신세계건설이 2000년대 중반부터 외부 민간수주를 확대해왔다고는 하지만 그룹공사 위주의 사업 구조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건설업계에서는 지난해 신세계건설의 추락에 대해 '온실 밖으로 눈을 돌린 화초의 좌절'이라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그룹 차원의 내부거래로 성장해왔던 신세계건설이 체질개선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신세계건설의 발목을 잡았던 사업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서울 길음동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었다. 신세계건설은 2007년 추진 이후 장기간 지연됐던 길음동 주상복합 개발 사업을 지난해 6월 따냈다. 그러나 4개월 만에 공사 계약이 해지됐고 채무보증을 선 시행사의 차입금(1,350억원)을 떠안으며 873억원을 손실처리하게 됐다.

인천 청라국제업무타운 사업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해당 사업의 위험성이 커지고 착공이 장기간 지연되자 외국인 출자자가 주식재매입옵션(풋옵션)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신세계건설은 해당 건으로 지난해 252억원을 비용 처리해야만 했다. 대규모 대손상각으로 적자가 불어나며 자금 사정에 빨간불이 켜지게 된 것이다. 대손충당금 설정과 대손상각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은 미수금이 수백억원 가량 남은 상태라 전망이 더욱 어둡다.

경기도 여주에 자유CC(18홀) 외에 인피니티CC(18홀)을 추가로 건설하면서 대규모 자금을 끌어다 쓴 것도 신세계건설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신세계건설의 총차입금은 트리니티CC 관련 대규모 자금 투입으로 지난해 10월 말 기준 2,509억원으로 확대됐다. 모두 1년 이내 만기가 다가오는 단기차입금으로 상환 압박을 만만치 않은 상태다.

유상증자 지원으로 자금 몰아줄까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신세계건설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그룹의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룹 차원의 유상증자 지원 등으로 자금 확보하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에도 신세계그룹을 물심양면 도왔다. 지난해 10월 신세계건설의 장충동 사옥을 228억원에 매입해 우회적으로 자금을 지원했고, 858억원 규모의 하남유니온스퀘어,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등의 공사 물량도 밀어줬다. 미뤄왔던 매출채권의 대금결제를 한 방에 해결해줘 현금흐름을 도운 데다 한동안 중단됐었던 계열사 대상 골프장 회원권 판매도 재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신세계그룹의 신세계건설 지원과 관련해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유상증자 부분이다.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신세계건설은 발행예정주식수를 1,000만주에서 1억주로 늘리고 보통주와 우선주로 제한됐던 발행주식 종류도 상환주식과 의결권을 배제한 주식 등으로 다양화하는 정관변경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신세계건설은 그동안 시장의 유상증자설을 부정해왔다. 그러나 건설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정관변경이 그룹 차원의 유상증자 지원의 사전작업이었다는 해석이 비중있게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신세계건설 관계자는 "차입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금사정에는 문제가 없다"며 "올해 그룹공사가 상당부분 늘어난 만큼 흑자전환이 예상된다" 고 밝혔다.



김현준기자 real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