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이용해 서비스 기사 쥐어짜

"본사로부터 해피콜이 오면 꼭 10점 부탁드립니다." 서울시 상봉동에 사는 김명민(가명ㆍ23)씨의 집에 인터넷 설치를 마친 LG유플러스 기사 이재호(가명ㆍ40)씨는 김씨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다. 분명히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정작 해피콜이 왔을 때, 이씨가 약속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은 사실을 떠올린 김씨는 "9점은 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10점이나 9점이나 높은 점수인데 별 상관이 있겠냐는 김씨의 생각과는 달리 해피콜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이씨의 월급봉투에서는 5만원이 사라졌다.

유무선 인터넷, IPTV, 전화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거대 통신기업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 일하는 하도급 비정규직 서비스기사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조합원이 매일 십수명씩 늘어나는 현 추세로 볼 때 최소 1,000명 이상이 가입하는 거대 노동조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규모만 놓고 보면 최근 큰 반향을 가져왔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보다도 월등하다.

관계자에 따르면 양사 노동조합은 지난 7월부터 비공개로 준비돼왔다. 양사 노동조합의 이름이 걸린 깃발이 내걸리기까지는 약 8개월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노동조합을 준비해왔으며, 조합원들로부터 폭발적인 환영을 받고 있을까. <주간한국>에서 그 배경을 살펴봤다.

붕어빵처럼 똑 닮아

1997년 설립, 이듬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SK브로드밴드는 1월 기준 IPTV 215만명, 인터넷 459만명, 집전화 466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대기업이다. 지난해 각각 2조5,394억원, 732억원의 매출,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성적도 좋다.

SK브로드밴드는 지역 내 마케팅과 고객가치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행복센터'를 2009년 출범시켰다. SK브로드밴드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의 개통, 장애처리 등을 담당하는 기존 '고객센터'의 업무에 지역 마케팅과 체계적 고객 관리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행복센터의 목적이다.

현재 SK브로드밴드는 90개의 행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직접 계약을 맺는 1차 협력업체 형태의 중간업체 산하에 2~3개 지역의 행복센터를 운영하는 다단계 하도급 형태다. 대부분의 행복센터에는 정규직으로 된 AS 기사와 개인 도급계약 또는 소사장제를 맺고 있는 개통ㆍ철거 기사들이 포진해있다.

1996년에 설립, 2000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LG유플러스도 상황은 비슷하다. ITTV 159만명, 인터넷 294만명, 집전화 468만명이 가입해있는 LG유플러스 유선부문은 지난해 1조2,105억원의 수익을 달성했다.

LG유플러스는 70개의 고객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 센터는 중간업체 산하에 다단계 하도급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고객센터별 평균 인력운영 실태를 감안할 때 LG유플러스에서 하도급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서비스기사들은 대략 3,000여명으로 추정된다.

갖은 명목으로 월급 떼어가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하도급 계약의 불법성은 근로계약서에서부터 드러난다. 서비스센터 대부분이 근로계약서를 아예 쓰지 않거나 작성하더라도 교부하지 않은 것이다. 작성된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불법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의 근로계약서에는 '무단결근 3일 이상은 퇴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퇴직급여는 월 급여에 포함해 지급한다' 등의 위법한 내용이 다수 담겨있었다.

또한, 하도급 비정규 기사들은 별도의 수당 없이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왔다고 전해진다. 1주일 평균 근로시간을 따져보면 법정 한도(52시간)를 훨씬 초과한 60~70시간에 달한다. 한 LG유플러스 기사는 "휴일이나 저녁 늦게라도 고객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야 했다"며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나 수당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상당수 하도급 비정규 기사들은 4대 보험료의 사용자분 및 퇴직금을 직접 부담하고 있었으며 업무에 필요한 유류비, 통신요금, 자재 구입비 등도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데다 만약 다칠 경우 모든 사고 처리 비용도 스스로 충당했다.

평가 등급에 따라 월급이 차감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기사 명함을 가진 고객이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연결되지 않아 콜센터로 전화를 걸어도 페널티, 해피콜을 통해 고객으로부터 10점 만점을 받지 못해도 페널티, 설치 상태 검사 시 불량이 발견돼도 페널티, 2회 이상 지각을 해도 페널티를 받는다. 페널티를 받을 때마다 5~10만원의 급여가 차감되는 구조라 서비스기사들은 보통 매월 70~90만원 수준의 월급을 빼앗긴다. 주말, 휴일도 반납하고 매일 10시간이 넘게 일을 하더라도 정작 손에 쥐는 돈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진수 민주노총서울본부 법률지원센터 노무사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하도급 비정규직 기사들을 조사한 결과 급여를 공제하는 항목이 너무 많았다"며 "충격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도급 이용해 노동법 피하려는 꼼수

일련의 사태에 대해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측은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SK브로드밴드에서는 "서비스센터들은 독립법인이기에 우리가 법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LG유플러스 또한 "하도급 업체는 우리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위장도급'을 이용한 원청의 횡포"라고 규정하고 있다. 직접 고용 형태가 아닐 경우 노동 관련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가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이다.

류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하도급 비정규직 문제는 결론적으로 위장도급 문제로 귀결된다"며 "교육도 원청이 하고 근무복도, 명함, 명찰도 모두 원청의 마크가 찍혀있는데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소장은 "최근 문제가 불거지자 SK브로드밴드가 서비스기사들의 명함을 SK브로드밴드 소속에서 서비스센터 소속으로 바꾸고 있다고 한다"며 "노동법을 지키기보다는 현 사태를 회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소장은 "일부 서비스센터에서는 개통ㆍ철거 기사들을 묶어 한팀으로 운용하는 소사장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는 삼성전자, 티브로드 등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심각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현준기자 realpeac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