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TF 운영 중… 野 "사람 살리는 입법 중심"

[주간한국 박철응 기자]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중점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 개혁'이 제시됐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2030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에 참석해 "정부 공직자들에게 재정에만 의존하는 정책, 상의하달식 규제에 의존하는 정책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라고 늘 주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경 분야를 예로 들며 규제가 아닌 기술로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아파트 공사 현장 노동자(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없음)
ⓒ연합뉴스 아파트 공사 현장 노동자(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없음)

 

윤 대통령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이미 지난해 11월 규제와 처벌 중심에서 기업의 자기 규율 예방 체계로 바꾸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다음달까지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1년간 산재 사망 820명...지난달 59명
떨어지고, 깔리고, 끼인 순으로 사고

중소기업인 대회에는 9개 그룹 총수들도 참석했으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요새 경기가 어렵지만 대통령 말씀처럼 우리 모두 원팀이 돼서 노력하면 이 긴 터널도 곧 지나가리라 믿는다"며 건배를 제의했다. 테이블에는 치킨과 맥주 등이 올랐고, 윤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합창단의 축하 공연 노래인 '우리는'을 함께 손잡고 불렀다.  

같은 날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지하 2층 주차장에서 작업하다 7m 아래인 지하 4층으로 떨어져 숨진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노동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 사고 현장은 공사 금액 50억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수는 820명, 지난달만 해도 59명에 이른다. 지난달 사고 유형을 보면 '떨어짐'이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깔림' 11명, '끼임' 9명, 물체에 맞음' 4명 등 순이었다.

이번달 들어서도 보도된 사망 사고만 따져 이미 30여건이 발생했다. 최근 사례를 보면 2톤짜리 철제 구조물이 넘어지면서 50대 노동자가 깔려 숨졌고, 알루미늄 재활용 공장에서 일어난 폭발로 60대 노동자가 전신 화상을 입어 유명을 달리 했다. 알루미늄을 녹이는 작업 당시 용광로 온도는 1000도 이상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도 국도 공사 현장에서 옹벽과 토사 사이에 끼이고, 벌목 작업을 하다 쓰러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았으며, 밸브 누출 검사 중 폭발로 튀어나온 기구에 맞는 등 다양한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달 초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20대 노동자가 작업 도중 쇠 파이프 표면을 건조하는 용도의 고온 수조에 빠져 숨지는 일도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말 한국제강 대표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바 있다. 지난해 3월 60대 노동자가 1.2톤 무게의 방열판에 다리가 깔려 숨진 사고와 관련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다.

재판부는 수년에 걸쳐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되고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다는 점을 짚으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의 시행 유예기간이 있었고 이 기간 중에도 사망사고가 발생해 다른 사업장에 비해 안전 조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됐던 점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법 적용이 실제 중대재해 사고를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민주노총은 한국제강 판결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반복적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이었음에도 검찰은 2년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최저 형량인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년 3개월 만에 내려졌고, 지난해에만 250여건이 넘는 법 적용 대상 중대재해가 발생했으나 검찰의 기소는 14건에 불과하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창사 이래 470여명의 노동자가 죽어 나간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도, 법 시행 이후에 4건의 중대재해가 연속 발생한 DL이엔씨를 비롯한 재벌 대기업의 중대재해는 검찰 기소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노동부와 검찰은 신속하고 엄정한 법 집행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도 힘을 보태고 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일 년 반이 되어간다. 그런데 노동 현장의 산재 사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처벌과 규제 중심에서 자기규율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면서 법 개정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 발생을 줄일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사람을 살리는 입법을 중심에 두고 6월 국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 50인 미만 유예, 법 개정 요구
LG디스플레이 직원 극단적 선택도

반면 중소기업계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의 유예를 요구하고 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최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영 책임자 범위, 중대산업재해 정의 등을 보다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모호한 법 규정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모든 것을 처벌을 능사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아서 전문가 TF를 구성해서 지금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건설업이나 제조업 공장뿐 아니라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들의 극단적 선택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에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서 LG디스플레이 팀장급 직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에는 고인이 결혼기념일에 새벽 3시까지 야근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글이 올랐다. LG디스플레이는 고인의 새벽 3시 출입기록을 확인했으며, 유족은 경찰 조사에서 "팀장 승진 뒤 업무가 과중해 힘들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 서울지부는 지난 24일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 앞에서 개최한 'LG  노동자 공동 투쟁 선포 대회'에서 "LG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하는 40대 노동자가 과도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면서 "다시는 LG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나서겠다. 일방통행 LG를 민주적 LG로, 노동무시 LG를 노동존중 LG로, 금속노조의 민주적 노동조합들이 나서겠다"고 밝혔다. 

가전제품 수리 서비스 기사들로 구성된 LG전자지회와 고객상담 서비스 자회사에서 일하는 하이텔레서비스지회, 시스템에어컨 유지보수 자회사 하이엠솔루텍지회, 유통매장 베스트샵 노동자들로 구성된 하이프라자지회, 방문점검 회사 노동자들인 LG케어솔루션지회 등이 참여했다. 

 


박철응 기자 hero@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