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전 의원이 2021년 1월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 반박' 무고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봉주 전 의원이 2021년 1월 2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성추행 의혹 보도 반박' 무고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친명횡재, 비명횡사’ 소리를 듣던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상황은 막판까지도 계속됐다. ‘비명횡사’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히던 박용진 의원은 서울 강북을 후보 경선에서 ‘현역의원 평가 하위 1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친명계 정봉주 전 의원에게 패했다. 30% 감산을 받으면서도 3자가 대결한 1차 경선을 통과해 결선까지 가는 저력은 보였지만, 결국은 22대 총선 출마의 길이 막혔다.

사실 예고된 결과였다. ‘하위 10%’ 통보를 받은 박 의원은 결선에서도 경선 득표율 30% 감산의 불이익을 안고 경선을 치렀다. 더욱이 상대는 강성 팬덤들의 지지 속에서 정치 재기 의지를 불태우던 정 전 의원. 현재의 민주당 구조 속에서는 상대가 되기 어려운 승부였다.

그동안 박 의원은 민주당의 공천 과정에서 ‘비명횡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박 의원이 쌓아온 의정활동의 성과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하위 10%’라는 판정을 수긍하기 어렵다. 박 의원은 2018년 국정감사에서 사립 유치원 비리 문제를 공론화시키면서 ‘국감 스타’ 의원이 됐다. 모두가 언급을 피하던 문제에 대해 박 의원이 물꼬를 트자 여론이 움직였고, 유치원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또한 재벌개혁에 앞장섰던 몇 안 되는 국회의원이었다.

무엇보다 박 의원은 민주당 내부에서 팬덤 극단주의 정치에 휩쓸리지 않고 지도부를 향해 쓴소리를 하며 균형적인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왔다. 그랬던 박 의원이기에 ‘하위 10%’ 통보는 본인은 물론이고 민주당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재명 지도부에 쓴소리를 자주 하던 비명계였다는 이유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반면 박 의원을 꺾은 정 전 의원은 민주당 안에서 강성 팬덤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에게는 ‘미투’ 관련 의혹이 계속 따라다녔다. 정 전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는 기자 지망생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으로 컷오프됐다. 이번에도 예비후보 심사적격 판정부터 논란이 있었지만, 총선 본선에 오르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정 전 의원은 2021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고 사법리스크를 털어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사건에 관한 민사소송에서 재판부는 “보도를 통해 적시된 사실이 허위임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문에 적시한 바 있다. 그러니 ‘미투’ 의혹은 이번 총선에서 다시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정 전 의원이 그런 벽을 넘어 16년 만에 다시 총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된 데는 그를 열렬히 지지하는 팬덤 지지층과 뒷배경이 되는 친명 지도부가 있기 때문이다.

정봉주와 박용진의 이 같은 경선 결과는 민주당의 이번 공천에서 강성 노선의 친명계가 온건 중도 성향의 비명계를 완전히 제압한 그동안의 공천 과정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친명계와 비명계의 차이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입장과 태도에 따라 나뉘지만, 그 바탕에는 ‘개딸’로 표현되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맞추는 노선을 가느냐, 중도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노선을 가느냐에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 강경파만 득세하는 민주당

개혁신당의 조응천 의원과 금태섭 전 의원은 박 의원이 경선에서 패배하자 기자회견을 열고는 “‘조금박해’는 민주당 내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증표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민주당에는 조금박해가 없다”고 말했다. ‘조금박해’는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내에서 소신의 목소리를 내던 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등 비주류 의원 4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금박해’의 동료로서 민주당 경선 결과에 대한 비판을 한 셈이다.

특히 금 전 의원은 “민주당은 어떻게 박용진 같이 바른 정치인을 내치고 온갖 논란과 막말 시비로 점철된 정봉주를 선택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정 전 의원은 4년 전 제 지역구에 저를 잡겠다고 온 사람”이라며 “그 당시 그가 영상에서 저에게 ‘너 한번 만나면 죽여버려 이제. K머시기! 이 X만한 XX야! 전국 40개 교도소 통일된 조폭이 내 나와바리(구역)야’라고 했다”고 공개했다. 당시의 유튜브 영상을 확인하면 이는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친문계인 전해철 의원(경기 안산갑)이 친명계 양문석 전 통영고성지역위원장에게 패했다는 경선 결과 소식도 전해졌다. 양 전 위원장은 지난해 6월 페이스북에 전 의원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면서 “수박의 뿌리요, 줄기요, 수박 그 자체인 전해철과 싸우러 간다”고 썼다. 또한 “민주당에 치명적인 반개혁 세력인 ‘수박’의 뿌리를 뽑아버리겠다. 수박 자체를 깨뜨려 버리겠다”고도 했다. 이에 민주당은 당 단합 훼손과 품위유지 위반 등을 이유로 양 전 위원장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지만, 막상 ‘당직 자격정지 3개월’의 솜방망이 처분으로 경선 참여의 길을 열어줬다.

강성 친명계가 온건 비명계에게 승리를 거둔 이들 사례는 이번 민주당 공천을 특징짓는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에서 빙산의 일각이다.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 지역을 열거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지역을 손에 꼽는 것이 훨씬 빠르다.

우상호 의원의 불출마로 청년 전략 특구로 지정된 서대문갑 경선에서는 ‘대장동 변호사’로 알려진 김동아 변호사가 권지웅 전 비상대책위원, 김규현 변호사를 꺾고 공천을 따냈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 변호사는 예비 경선에서 탈락했었다. 그런데 ‘안희정 성폭력 2차 가해 논란’이 불거진 성치훈 전 청와대 행정관 대신 후보로 구제돼 ‘친명횡재’라는 얘기가 나왔다.

비명계의 온건한 현역 의원들이 경선에서 탈락한 사례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6일 공개된 경선 결과에서 강병원·김한정·박광온·윤영찬·전혜숙·정춘숙 의원 등이 탈락했는데, 이들은 모두 중도 성향의 온건 노선을 추구해 온 비명계 의원들이었다. 지난 10일 발표된 전략선거구 4곳의 경선에서 박선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인천 부평을), 김남희 변호사(경기 광명을), 이상식 전 국무총리 민정실장(경기 용인갑), 이광희 전 충북도의원(충북 청주서원)이 승리했는데, 이들은 대부분의 친명계로 분류된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이라는 지적이 무성하지만, 민주당의 공천은 막바지로 갈수록 그런 성격을 더욱 굳혔다. 22대 국회에서는 확고부동한 ‘이재명 당’을 만들겠다는 친명계와 그 지지층은 조금도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이 대표는 기자회견을 결고 “당원과 국민이 저희 몸부림에 응답했다. 혁신공천으로 공천혁명을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이제 민주당은 미적대는 정당이 아닌 일머리 잘 알고, 추진력 강한 검증되고 유능한 일꾼들로 완전히 진용을 새로 갖췄다”고도 말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의 결과가 이 대표와 친명계의 눈에는 그렇게 비쳐지고 의미 부여가 된다.

이렇게 되면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의석이 얼마나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역대급 강경 노선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이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역대급 강성 지도부’라는 평을 받아왔다.

고민정 최고위원만이 ‘친문’으로 분류될 뿐 정청래, 박찬대, 서영교, 장경태, 서은숙, 박정현 최고위원은 하나같이 친명계로서 대여 강경투쟁을 선봉에서 이끌었다. 대선 패배 직후 ‘검수완박’을 밀어붙이는 입법 독주를 할 때도,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1차 부결시킬 때도,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킬 때도 친명 지도부는 민주당의 강경론을 선도했다.

최근에도 이 대표는 “주권자 국민은 무도하고 무능한 윤석열 정권을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 공언했고, 정청래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와의 1대1 토론을 거듭 제안한다”며 “카카오톡 친구 한동훈을 데리고 나와도 좋다”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으로 깃발과 상징이 계승됐다”면서 “축구로 치면 차범근, 황선홍, 박지성, 손흥민으로 깃발이 계승된 것과 같다”고까지 말했다.

“민생은 없고, 정책도 없는데 홍보 원맨쇼를 대통령이 하고 다닌다”고 윤 대통령을 비난했던 서영교 최고위원은 정 최고위원과 함께 ‘찐명’으로 불리며 단수공천을 받았다. 장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 캄보디아 사진의 조명 연출 의혹을 제기해 연일 뉴스를 탔던 인물이다.

21대 국회에서 이렇게 초강경 지도부가 앞장서서 강경 노선으로 치달았던 민주당이었다. 중도층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강경일변도 노선을 비명계 의원들은 우려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3일 전북 전주 경기전 앞에서 취재진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3일 전북 전주 경기전 앞에서 취재진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독재 종식’ 내건 조국혁신당, 윤대통령 조기퇴진 목표

그런데 강경 노선으로 달렸던 민주당으로는 부족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지난 3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조국 대표를 선출하면서 정식 출범한 조국혁신당이다. 조 대표의 수락 연설을 들어보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저는 지난 5년간 무간지옥에 갇혀 있었다. 온 가족이 도륙되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며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파괴하는 윤석열 정부의 역주행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저 조국은,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을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하는 소명이 운명적으로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저는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빨리 물러나도록 만들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 대표는 “검찰독재의 조기 종식과 민주공화국의 가치 회복”을 목표로 제시했다. 검찰 독재를 끝낸 후 민생과 복지가 보장되는 ‘제7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것이 탄핵을 통한 것인지, 거리에서의 투쟁을 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윤 대통령을 조기에 퇴진시키겠다는 것이 조국혁신당의 입장이다. 민주당도 ‘윤석열 심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윤 대통령을 중도 퇴진시키겠다는 말은 조심하는 편이다. 원내 제1당으로서 자칫 중도보수층의 역풍과 결집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은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런 초강경 발언을 쏟아낸다.

조 대표는 창당 이전에 이런 말들을 했었다.

“민주당은 수권정당을 지향하기 때문에 진보층 외에 중도층도 고려해 움직여야 하므로 신중할 수밖에 없다.”, “가칭 ‘조국신당’은 윤석열 정권의 조기종식을 바라는 진보층의 목소리를 더 반영하려고 하는 정당이다.”, “민주당과 서로 따로 또 같이 가는 것이 맞다.”

“민주당보다 더 앞서서, 더 빨리, 더 강하게 싸우려고 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 민주당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역할 분담을 해 자신들은 민주당보다 더 강경하고 왼쪽으로의 노선을 가겠다는 의미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의지가 있어도 조심해야 하는 캠페인을 담대하게 전개하겠다. ‘검찰독재 조기 종식’, ‘김건희 씨를 법정으로’ 등 캠페인을 해서 범민주진보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겠다”는 조 대표의 말이 그것이다.

실제로 조 대표는 지난 12일 “22대 국회 첫 행동으로 한동훈 특검(특별검사)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조 대표는 특검법이 “여러 범죄 의혹에도 제대로 된 수사조차 받지 않았던 검찰 독재의 황태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평범한 사람과 같이 공정하게 수사받도록 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조 대표가 개인적인 원한의 복수를 하려는 법이라고 해석한다. 조 대표가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을 향해 드러내곤 하는 분노와 적개심에는 자신이 주장하는 ‘멸문지화’를 당한 데 대한 개인적 울분이 충분히 읽힌다.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 정치를 하고 선거에 뛰어드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순 없지만, 어쨌든 그것이 현실이고 그런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은 일단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은 37%, 민주당은 31%로 나타났다. 여러 신당 가운데서는 조국혁신당이 6%의 지지율을 기록하여 가장 앞섰다. 조국혁신당의 상승세는 비례대표 정당투표 의향 조사에서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비례정당인 ‘국민의미래’는 37%, 민주당이 추진한 야권비례연합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은 25%를, 조국혁신당은 15%를 기록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조국혁신당에서 주장하는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가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실망한 야권 지지층이 최소한 비례투표에서는 조국혁신당을 대안으로 삼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에게는 자칫하면 비례대표 의원을 10석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낳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이 약진하더라도 국민의힘의 지지층을 데려오는 것은 아니다. 야권 내부에서 정해져 있는 파이를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조국혁신당이 생각하는 것보다 중도층과 2030층에서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조 대표가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히 높다.

다만 조국혁신당의 강경한 목소리가 야권의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환경에서는 민주당도 선명성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조국혁신당은 ‘검찰독재의 조기 종식’을 외치는 판에 민주당은 공허한 ‘심판’ 얘기만 하다가는 존재감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 총선을 앞둔 조국혁신당의 등장은 야권 전체를 강경 노선으로 치닫게 하는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와 조 대표는 지난 5일 만났을 때 4·10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의 심판에 힘을 합치자고 뜻을 모았지만, 조국혁신당이 너무 힘을 얻으면 민주당의 힘이 약해지는 제로썸 게임의 구조이기에 협력과 경쟁 사이에서의 민주당의 셈법이 복잡할 수밖에 없다. 조국혁신당과 거리를 두자니 그쪽으로 지지층이 빠져나가는 상황이 곤혹스럽고, 그렇다고 조국혁신당과 손을 잡자니 다시 ‘조국의 강’을 되돌아온 모습으로 중도층의 이반을 낳을 위험이 있기에 적절한 관계 설정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4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지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이 4일 국회 소통관에서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지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야권 비례위성정당의 공천, ‘강성 투사’ 우선 공천으로 진통

이렇게 강경으로 치닫는 야권의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야권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 내용이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비례대표 후보 30명을 내는데 이 가운데 민주당이 20명, 진보당·새진보연합이 각 3명씩 추천한다. 시민사회는 공개 오디션을 거쳐 ‘국민후보’ 4명을 추천한다. 여러 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먼저 새진보연합의 용혜인 상임 선대위원장이 자신을 비례대표로 공천함으로써 보기 드문 ‘비례 재선’을 노린 ‘셀프 공천’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제한된 여러 조건 속에서 민주개혁 진보의 승리와 기본소득당의 성장을 위해서 제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재선을 하고 싶으면 비례에는 다른 인재를 추천하고 자신은 지역구 선거에 나가야지, 혼자서 비례 의원을 독차지하는 것은 노회한 정치인들 뺨치는 과도한 욕심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야권의 비례위성정당에서 이어진 논란거리는 반미 성향 투사들을 우선하는 이념 공천 결과였다. 더불어민주연합이 시민사회 몫으로 공천해 발표한 명단이 그러했다. 비례대표 1번은 한미연합 군사훈련 반대 집회에 참여해 온 ‘겨레하나’ 활동가 출신인 전지예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으로 결정됐다. 비례대표 17번을 받은 정영이 전 전남 구례군 죽정리 이장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사무총장이자 ‘통일선봉대’ 대장으로 경북 성주에 가서 사드배치 반대시위를 이끈 인물이다.

4명 가운데는 임태훈 전 군인권센터 소장도 포함됐는데,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받은 전력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은 한미연합훈련 반대와 주한미군 철수인가 반미인가'라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언급과 국민의힘의 공세가 잇따르고 민주당 측에서도 재검토를 요청하자, 결국 전 운영위원과 정 전 이장은 자진 사퇴했다. 이어 임 전 소장은 후보 심사 과정에서 컷오프됐다. 다른 인물들이 재추천됐지만 진통에 따른 파장이 작지 않다.

그런 가운데 진보당에서는 장진숙 공동대표, 전종덕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손솔 수석대변인, 새진보연합에선 용혜인 상임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공동대표, 최혁진 전 문재인 정부 사회경제비서관을 비례대표 후보로 각각 선출했다. 그대로라면 과거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 계열이 비례에서만 최소 3석 이상을 챙겨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 이후 진보당 계열과는 선을 그어왔던 이제까지의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민주당이 그동안의 선거에서 중도 우선의 기조를 취하던 것과는 딴판으로 비쳐졌다.

이러한 변화에는 총선 후 재판 결과와 차기 대선 행보에 불안감을 느끼는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지지하는 외부 세력을 규합해 지지기반을 확장하려다가 생겨난 무리수로 해석된다. 이재명 세력의 확장에 조급하게 매달리다 보니, 충분히 예상됐던 문제들을 그냥 건너뛰다가 사고들이 생겨난 것이다.

야권 비례위성정당의 후보 공천이 야권 내에서조차 합의를 이루기 어려울 정도의 ‘투사’ 우선의 공천으로 치달았던 것도 작금의 야권 분위기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민주당 같으면 ‘몸을 사린다’는 비판을 자기 진영의 시민단체들로부터 받으면서 신중했던 판단들을 이제는 긴장 해제라도 한 듯 주저 없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거 때면 중도화 경쟁 벌이던 관행 깨진 야권

본래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야 정당들은 중도화 경쟁을 벌이는 것이 통상적인 모습이었다. 여야 공히 자기 진영 표의 결집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고 캐스팅 보트인 중도성향 부동층의 지지를 받아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야권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민주당과 그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조국혁신당, 더불어민주연합은 초반부터 초강경 노선으로 갈 태세를 보여주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도 극단적인 강경 노선에만 매달리다가 중도층의 이반을 낳아 정권까지 내줬는데, 일단 민주당이 다시 친명계 후보들이 석권한 강성 정당으로 짜여졌다. 그런 민주당의 투쟁도 성에 차지 않는 듯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하지 못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하고, 더불어민주연합에서는 강한 이념지향성을 가진 투사들을 우선적으로 후보로 공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보니 신당 가운데서도 양비론적 입장을 갖고 있는 개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같은 당들은 존재감이 없다. 총선을 앞두고 야권 전반에 강경한 목소리만이 득세하는 상황이다. 강경으로 질주하는 야권에게는 지금 브레이크가 없다. 이런 상황이 4월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판명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남지 않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