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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인도에 빠진 남자 현몽스님

“딴 얘기 집어치우고, 인도에는 가보셨어요? 언제 한 번 꼭 가보세요. 제가 간 곳으로 가시면 딱 좋아요. 인도는 영혼의 땅이예요. 살면서 꼭 한 번은 가봐야 한다니까요.”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 에 나오는 지산 스님의 실존모델 현몽 스님(56). 여든셋인 노모와 함께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벌써 네번째 하산 뒤 마련한 거처다.

그가 요즘 앓고 있는 인도 열병은 정말 지독해보인다. ‘덜 떨어진’ 나염기술 때문에 빨 때마다 옷 색깔이 달라진다고 투덜대면서도 손님만 오면 신나게 입는 것이 티베트인들의 옷이다. 주황색 무늬의 두건도 두른다. 실제로 그와 썩 잘 어울린다. 쉰이 한참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만한 용모에 유창한 영어실력까지 갖췄으니 넉달간의 여행에서 국적불문의 여난을 겪었다는 얘기가 그럴 법도 하다.

◆일곱번의 사랑과 그만큼의 이별, 그리고 인도로의 ‘떠남’

거실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코브라 신상과 피리부는 신상도 앉아 있다. 벽에는 어느 시골 장터에서 사왔다는 값싼 인도제 양탄자도 큼지막하게 걸렸다. 볕 잘 드는 베란다에는 인도의 돌부처님까지 앉아 평택 땅에 해가 뜨고 지는 양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인도에서 그토록 ‘잘 쉬다가’ 온 것일까? 답은 ‘아니올시다’ 이다. 오히려 그의 평생 자존심 상할 푸대접만 받다가 왔다. 그가 만난 인도인은 대개가 사기꾼 아니면 협잡꾼이었고 동양인중에서도 한국인 알기를 우습게 아는 그들 때문에 120일 대부분을 싸움으로 보냈다.

인도로 갔던 것은 ‘죽도록 외롭고 허무해서’ 였다. 일곱번째 여인 정여혜와 최근 헤어진 뒤 그는 더 큰 허무와 방황에 빠져 있었다.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죽기를 바라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따라다니던, 그리고 그 어떤 사랑으로도 끝내 해결되지 않던 외로움과 허무를 이 길로 아예 끝장내고 싶었다.

어느날 타임지에 ‘한 많은 사람은 인도로 모인다’ 라는 헤드라인이 보였다. 그는 누구보다 한 많은 사람이었으므로 인도로 ‘가야만 했다.’

경비는 한때 그의 최고의 연인이었던 ‘배비’ 가 자살 직전 보내준 돈 2,000달러로 마련했다. 10년 동안 고이 간직해오다가 이젠 자신도 곧 죽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으로 그 돈을 찾아 인도로 향했던 것이다.

인도에선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내내 전투였다. 외국인들을 ‘봉’ 으로 아는 끔찍한 자동차들에게 시달렸다. 살벌한 협박으로 돈을 울궈내는 택시운전사를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고 심지어 같은 한국인들로부터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인도는 ‘세상에서 믿을 사람은 오직 자신뿐’ 이라는 진리를 더욱 뼈저리게 가르쳐준 곳이었다.

그래도 부당하면 맘껏 항의하고, 온갖 해괴한 패션으로 다녀도 ‘스님이 이래도 되냐’ 고 이죽거리지 않는 자유의 땅. 특히 히말라야는 그 모든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꼭 가볼 만한 영혼의 땅이었다. 어떤 절망과 고통도 그 앞에선 툭 터질 것 같았다. 부처가 되겠다는 욕심을 버릴 것. 연애를 끊을 것. 글을 끊을 것. 그리고 잘난 척 하지 않을 것. 그는 자신이 가져간 모든 숙제와 화두를 히말라야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 끝에 마침내 님을 얻은 곳도 그곳이었다.

◆열아홉살때 출가, 반복되는 입산·하산

그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열아홉살때 출가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이 수덕사. 도무지 인생은 허무하게만 보였고 그의 마음에 드는 건 ‘중 질’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중이 최첨단 직업 같았고 21세기를 이끌어갈 주역 같았다.

스님이 된 지 7년째 되던 어느날. 그는 산사를 찾은 한 여대생과 연애 끝에 결국 절을 뛰쳐나왔다. 예기치 않게 이 여대생을 찾아온 친구를 강간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도 이때. 종단으로부터는 승적을 박탈당했다.

이후 그는 숱한 여자들을 만나고 사랑했다. 그중 ‘배비’ 는 그가 평생에 가장 사랑했던 두 여인중 하나다. 한때 그녀와 동거도 했고, 그 끝은 그녀의 죽음으로 마감됐다. 애욕에 대한 집착과 허무에 갈등하는 그를 ‘위해서’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다시피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 어느날 그와 전화를 하던 중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다.

그 뒤 여러 번의 연애와 입산, 하산이 반복됐다. 그리고 정여혜라는 여인을 만났다. 9년간의 열애였다. 한때는 그녀와 살기 위해 술장사를 할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나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녀를 위해서’ 그가 일방적으로 헤어질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연락을 끊은 지 3년째.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녀 곁을 완전히 떠나지 못한 듯 했다. 인도여행담을 적은 책에서조차 그는 책 앞뒷면을 그녀에 대한 연시로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연애는 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뛰어난 여성인데 나같은 남자를 만나서 인생이 불행해졌습니다. 중과의 사랑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진짜 훌륭한 남자는 한 여자를 오래 사랑하고, 고생해서 그 여자를 벌어먹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더 훌륭한 남자여야 했는데, 나는 그녀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외로움 피해 다시 떠나는 ‘외로운 인도 여행’

외로운 사람은 차라리 혼자일 때가 덜 외롭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자칭 홀로당, 홀로종 교주답게 그는 술도 혼자 마신다. 한번은 눈오는 날 혼자 추녀끝 마루에 앉아 소주팩 13개를 비우고 24시간 뒤에 깨어난 적도 있고, 또 언젠가는 어느 큰 기념행사장에서 설법을 맡은 날, 사람들의 짖궂은 관심에 오기가 발동해 독한 양주 한 병을 단숨에 ‘병나발’ 불고 바로 기절해서 병원으로 실려간 적도 있다. 그래서 그날의 설법은 ‘그것으로 땡.’

건강도 예전같지 않다. 인도에서 돌아온 뒤 그는 심하게 아팠다. 병도 숱하게 달고 왔다. 심한 천식 증세에다 위염, 장염까지. 꼬박 다섯달 동안을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워낙 객지에서 새우잠을 자며 고생한 탓에 팔이 제일 먼저 고장났다. 세수는 커녕 손을 들지도 못할 정도였다. 어렵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는 책을 썼고, 작년 7월부터는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 외엔 일절 외부와의 연락도 끊어버렸다. 모든 번잡스러운 일들이 피곤해졌다.

그가 불청객을 물리치는 또 하나의 처방. 그의 아파트 현관문에는 요즘 이런 쪽지가 붙어 있다. ‘이 집에는 정신질환자가 살고 있습니다.’ 한동안 극성 기독교인이나 잡상인 등쌀에 다른 것을 써붙여본 적도 있지만, 이만큼 효과만점인 게 없다. 이 쪽지를 붙인 뒤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는다고. 정신병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오는 3월이면 그는 다시 인도로 떠난다. 단 한번으로는 뿌리 뽑히지 않을 만큼 외로움의 내력이 깊은가 보다. 다녀올 여정을 낱낱이 알려주는데 도무지 인도에 가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그 지명이 귀에 다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히말라야를 ‘마스터’ 하고 올 모양이다. 그리고 인도에서 돌아오면 다시 산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말하는 그의 표정이 슬픈 건지 즐거운 건지 가늠할 길이 없다.

“이번 인도 여행을 끝으로 모든 걸 정리하려고 합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산으로 올라갈 겁니다. 이젠 중다운 중이 돼야지요. 갈 곳도 이미 정했습니다. 절 옆에 흙집도 짓고 어머니도 모시다가 나중에 다시 혼자가 되면 히말라야로 들어가 살 계획입니다. 이번에 가는 길엔 그것까지 두루 살펴보고 올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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