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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98 올해의 인물 '클린턴과 스타검사'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98 올해의 인물’ 로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를 선정했다. 타임은 클린턴 대통령이 미 역사상 두번째로 상원에서 탄핵판결을 받게 됐고 스타 검사는 클린턴 섹스스캔들을 끝까지 추적한 공로에 따른 것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클린턴과 스타검사의 악연은 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4년 8월 스타가 화이트워터 사건 전담 특별검사로 임명된 뒤 지금까지 쫓고 쫓기는 관계였던 것. 스타는 화이트워터 사건, 폴라 존스 성추문 사건 등 클린턴의 각종 스캔들을 추적했지만 번번이 결정적인 단서를 잡는데 실패했다. 그는 그러나 98년 1월 클린턴이 전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갖고 위증을 종용한 혐의가 담긴 테이프를 입수하면서 ‘르윈스키 스캔들’ 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이것이 올해 내내 클린턴을 괴롭히게 될 악몽의 시작이었다.

클린턴 죽이기, 여론 의외로 냉담

스타의 ‘클린턴 죽이기’ 는 9월 ‘스타보고서’ 공개로 절정에 달한다. 그가 클린턴 탄핵을 위한 실질적이고 믿을 만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하원에 전격 제출, 의결을 거쳐 인터넷에 공개한 500쪽의 보고서는 포르노보다 더한 선정성으로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포르노 잡지 ‘허슬러’ 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로마저 “포르노의 신기원을 열었다” 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보고서가 99년 1월로 예정된 미상원 클린턴 탄핵심의의 구체적인 사유를 제공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론은 클린턴의 발목을 잡기 위한 스타의 집요한 추적을 외면하는 분위기다. 보고서 공개 직후 부모들은 신문을 감추기 바빴고 전세계 언론은 ‘쓰레기’ 가 됐다는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다. 대통령의 비리를 들어냈다는 공로로 박수를 받았어야 할 스타의 입지는 외려 좁아졌다. 반대로 궁지에 몰린 클린턴에게는 묘한 동정표가 던져졌다. 계속된 경제호황 때문이든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미국인의 심리 때문이든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의 지지는 식지 않았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12월21일 클린턴의 직무지지도는 일주일전보다 4% 올라간 72%를 기록했다. 위기에 처해 분별력을 잃어버린 클린턴이 8월 수단·아프간 공습, 12월 이라크공습을 감행,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에 대한 미국인의 애정은 변함없었다.

타임은 “두 사람은 고집이 세고 완강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성격과 가치관이 극단적으로 달라 서로 뒤엉킨 역사의 한짝이 됐다” 고 평했다. 극단적으로 말해 스타가 그토록 클린턴에게 집착하지 않았다면, 클린턴이 ‘빈대 하나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면 섹스스캔들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 이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클린턴이 잡으려던 빈대가 르윈스키든 스타검사였든.

남편때문에 속 썩는 힐러리도 후보에

이밖에 타임은 ‘올해의 인물’ 로 유력하게 거론된 후보들을 소개했다. 98년의 뉴스메이커로 타임이 꼽은 인물은 다음과 같다.

힐러리 클린턴 92년 대선 유세 당시 클린턴이 내건 구호는 ‘Buy One, Get Two(하나를 사면 둘을 드립니다)’ 였다. 클린턴 한사람에 투자하면 힐러리의 능력까지 얻는다는 것. 클린턴의 표현대로 덤으로 출발했던 힐러리는 98년 당당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섹스스캔들로 얼룩진 한해를 보냈던 남편 클린턴 대통령의 추락은 오히려 힐러리의 승승장구를 더욱 빛냈다. 힐러리는 섹스스캔들이 폭로된 1월중순부터 우익의 음모로 몰아붙이며 남편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신뢰를 과시하는 정면돌파작전을 펼쳤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둔 것도 힐러리의 공으로 돌려졌다. 그가 최근 패션잡지 ‘보그’ 에 모델로까지 등장하자 특유의 강인함에 여성적인 우아함이라는 덕목까지 더해졌다. 타임은 힐러리가 ‘올해의 인물’ 선정과정에서 막판까지 남편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강력한 후보였다며 그가 ‘클린턴보다 더나은 반쪽’ 이라고 평했다.

오사마 빈 라덴 8월 케냐와 탄자니아 미대사관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 사우디아라비아 재벌의 아들이자 독실한 이슬람신자였던 라덴은 79년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소련에 대항하는 이슬람 동포들을 돕기 위해 무자헤딘 반군조직에 가담했다. 당시 무자헤딘을 비밀지원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따라서 라덴은 미국이 키운 호랑이였던 셈. 89년 소련군이 철수하자 라덴은 사우디로 돌아왔으나 이집트와 알제리 이슬람단체들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국적을 박탈당한 뒤 수단을 거쳐 아프간에 은거중이었다. 미국의 수단·아프간 공습은 숨어있는 라덴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라덴을 잡지도 못한데다 무기생산시설로 몰아 폭격한 수단공장은 제약공장이었다는 반발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10월 영국이 디스크 치료차 런던에 들렀던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를 전격 체포하자 세계는 깜짝 놀랐다. 이전까지 허공에만 떠 있던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 는 명제가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이었기 때문. 피노체트는 73년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권좌에 올랐다. 90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의 통치기간은 암흑의 시대였다. 사망 3,000명, 실종 1,000명, 고문불구자 10만명, 국외추방 100만명이라는 통계가 보여주듯 피노체트는 인간도살자나 다름없었다. 그의 집권기간 칠레는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분배의 불평등이 심한 나라로 전락했다. 그러나 체포 뒤에도 신병인도 문제로 논란이 거듭돼 ‘인권과 국경’ 의 명제가 지상에 완전히 발을 디디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주목 받는 마하티르의 ‘마이웨이’

마하티르 모하마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는 98년 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에도 기죽지 않은 독불장군. 마하티르는 IMF와 미국이 요구하는 개혁조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내 갈길을 가겠다’ 식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5월 개도국 회담에서 마하티르는 “IMF에 머리를 숙이느니 가난하게 살겠다” 며 의지를 피력하는 한편 “국제투기꾼들의 환투기조작이 아시아를 갉아먹었다” 고 주장했다. 또 “언제까지나 서방측 논리를 따를 순 없다” 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아시아 전역이 망해가는데 그냥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곧 실천에 옮겨졌다. 9월 고정환율제 도입과 링기트화 통화거래 국내한정등 일련의 외환시장 통제비상조치를 선언한 것. 외환안정화대책이 발표되자 주가가 일제히 상승하고 환율이 안정되는 등 마하티르의 도박은 일단 효험을 거두는 듯 했다. 그러나 경제정책 문제로 잦은 마찰을 빚어온 안와르 전부총리를 해임, 남창혐의로 재판정에 세우는 무리수를 두면서 다시한번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배국남·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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