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무형자산, 인지도 개선에 집중투자

고려 신종1년인 서기 1198년, 수도 개경에서 만적(萬積)이라는 노비가 주동한 반란 음모가 적발됐다.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 최충헌의 사노였던 만적은 동료 노비들과 함께 상전을 죽이고 정권을 잡을 계획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만적은 개경 북산(北山)에 모인 동료 노비 100여명에게 “태어날 때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노비들이 언제까지 상전밑에서 고생을 해야 하느냐”라고 주장,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80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버린 탓일까. 2000년 3월 한국에서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만적의 얘기가 무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브랜드에 따른 ‘차별화 현상’이다. 즉, 똑같은 제품이지만 브랜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가격이 2~3배 이상 차이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등 주요 그룹은 ‘브랜드 자산’을 전략의 핵심 축으로 활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재벌중 선진경영기법 도입에 가장 발빠른 모습을 보이는 삼성그룹은 최근 브랜드를 ‘기업의 대표적 무형자산이자 기업가치 형성의 핵심 요소’로 규정하고 브랜드 가치의 증대를 위해 다각적인 투자를 펼치기로 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하주호 과장은 “최근 세계적 브랜드 평가기관인 인터브랜드로부터 삼성의 전자제품 브랜드 가치가 국내 최고인 52억달러에 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2003년까지 이를 200억달러로 향상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과장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를 위해 2000년 시드니올림픽 스폰서 마케팅으로 2억달러를 투자하는 등 해외시장에서의 인지도 개선에 집중투자를 할 예정이다.

IMF체제 이후 한국에 상륙한 외국기업도 국내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토종 브랜드를 인수, 세를 넓혀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1998년 삼성제약(에프킬러 제조회사)을 인수한 한국존슨은 브랜드 값으로 297억원을 지급했으며 질레트 역시 로케트 전지의 브랜드 사용권을 7년동안 독점 사용하는 조건으로 660억원을 지불했다.


인터넷혁명으로 브랜드 중요성 커져

그렇다면 사전적으로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경쟁자와 구별,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명칭’인 브랜드가 사전적 의미 이상의 중요성을 갖게 된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인터넷 혁명과 재벌의 선단식 경영의 해체라는 시대변화때문이다.

우선 인터넷 혁명. 삼성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인터넷 혁명으로 소비자의 구매 방식이 근본부터 뒤바뀐 것이 브랜드 자산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삼성 경제연구소는 ‘브랜드 자산의 가치와 구축방안’이라는 자료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면 한 소매점포에서 다른 점포로 이동이 가능하며 각종 상품 가격을 자동으로 비교하는 소프트웨어까지 등장했다”며 “브랜드력이 없는 회사는 ‘제살 깎아 먹기’식의 가격경쟁을 치른 후에 패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재벌체제의 근간이던 ‘선단식 경영’의 붕괴도 브랜드에 대한 인식변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즉, 경영의 투명성이 강조, 계열사에 대한 직접적 재무지원이 가능한 상황에서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를 지원하는 방법은 ‘앞선 브랜드’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삼성, 현대그룹 등 재벌의 금융독점이 문제가 되자 “재벌계열 금융회사들이 그룹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도 ‘삼성’,‘현대’,‘LG’안에 깃들인 막강한 힘을 반증하고 있다.


유명브랜드 따라 배우기

1998년 상업·한일은행이 합병해 출범한 한빛은행 광고팀은 ‘한빛’이라는 상표와 로고를 불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총자산이 100조원을 넘어서는 국내 최대 은행인 ‘한빛은행’의 후광을 이용해 전국 각지에서 ‘한빛 부동산’, ‘한빛 학원’, ‘한빛 짜장면’등 ‘한빛 시리즈’가게들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이미지 실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관련법규상 ‘한빛’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는 로고까지 사용하는 경우에는 철저히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하나은행, 삼성그룹 등 일반인에게 신뢰감을 주는 브랜드를 갖고 있는 회사도 비슷한 상황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조철환·주간한국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