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종연횡 통한 대형화 바람, 벤처산업 진출도 본격화

“헤쳐 모여.”

연예계가 정신없이 변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연예계를 강타하고 있다. 바로 합종연횡을 통한 대형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고 있는 것.

20여명의 톱스타가 뭉쳐 대형 매니지먼트회사를 만드는가 하면 규모를 늘리고 그 세를 바탕으로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는 프로덕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유망 벤처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맺은 레코드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는 한 연예계 인사의 말에서 변화의 바람을 실감할 수 있다.

갑작스런 대형화 태풍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또 어디로,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합병바람

신년 벽두의 연예계에 불어닥친 합병 바람의 원조는 ‘KS미디어’다. 바로 조성모, M-차일드를 소속한 GM뮤직과 터보, 포지션을 키워낸 스타뮤직이 그들이다. 이들의 합병 소식은 가요계를 강타했다. 국내 음반업계에서 수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스타뮤직과 GM뮤직의 합병은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국내 가요 프로덕션이 각자 자기만의 영역에 대한 배타의식이 강했던 터라 함께 일한다는 새로운 의식의 태동이라는 의미도 있다. “‘뭉친다’는 말이 생소한 가요계에 합병 얘기는 신선한 충격이었죠.

하지만 우리도 뭉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흐름이예요. 21세기는 대충 정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와는 다를 것이란 생각입니다.” 스타뮤직의 권승식 사장과 GM뮤직의 김광수 사장의 이구동성이다. KS미디어는 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계기로 건전한 기업마인드를 도입하여 21세기 문화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KS미디어의 태동은 ‘헤쳐 모여’를 폭발시켰다. 엄정화, 이동건을 소속하고 있는 누리기획(대표 한석창)과 박남정, 미스터 투, 송대관을 길러낸 대하기획(대표 장의식)도 ‘J&C미디어’로 합병을 선언했다. J&C미디어는 여기에 그치지않고 신승훈을 소속하고 있는 오즈기획(대표 이규덕)을 끌어들여 명문 프로덕션 구축에 나섰다.

3월22일은 연예계 변화의 의미있는 날로 인식된다. 톱스타 20여명이 소속된 국내 최대 연예 매니지먼트회사가 탄생했고 또 굴지의 도레미레코드사(대표 박남성)는 유망 벤처기업인 나눔기술(대표 장영승)과 두인전자(대표 김광수)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었다.

또 최수종 차인표 유인촌 이정길 박상원 등 중견 스타들이 인터넷 방송국 씨엔지티비닷컴의 주주로 참여했다. 이들은 각기 활동을 하면서도 공동체 의식을 영유할 계획이다.

벤처기업 로커스와 영화사 우노필름, 그리고 매니지먼트회사 EBM이 만든 ‘싸이더스’(SIDUS·라틴어로 별이라는 뜻)는 소속된 연예 스타의 이름만으로도 거대 군함을 연상시킨다. 김혜수 전도연 정우성 장혁 전지현 박신양 한재석 최지우 손창민 차태현 설경구 남희석 이휘재 유지석 윤해영 등 굴직한 스타들이 한가족으로 뭉쳐 예전에 없던 대형화가 완성됐다.

출범 첫해인 올해 매출 400억원, 순이익 6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자신하는 싸이더스측은 앞으로 영상산업, 음반산업, 매니지먼트 등 대중문화 전반에 손을 댈 계획이다.

도레미레코드, 나눔기술, 두인전자의 제휴는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그 능력과 잠재력은 어느 회사보다 크다.

현재 국내 최대 음반사로 많은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도레미레코드, 음악 컨텐츠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는 나눔과 두인의 제휴는 음악 포털 사이트를 통해 음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휴는 도레미레코드사의 지분을 나눔기술이 40%, 두인전자가 20%를 매입해 이루어졌다.


코스닥 열풍

대형화의 종착역은 코스닥 시장에 있다. 연예 종사자들끼리의 합병이 일반 대중과의 합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스닥 등록은 투자자를 모집해 대형 엔터테인먼트회사를 만들고 연예산업의 기둥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우선이다. 물론 코스닥 열풍에 편승, 한몫 잡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욕심도 작용하고 있다.

예상을 했지만 H.O.T, S.E.S, 신화 등의 SM기획(디표 이수만)과 핑클 젝스키스 박진영 박지윤 등의 대영기획(대표 유재학)이 코스닥 등록 심사를 통과해 4월초부터 정식으로 거래될 예정이다. 연예산업을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던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SM기획과 대영기획의 성공여부는 연예 산업의 코스닥 붐을 주도할 전망이다. 투자자가 영양가있는 주식이라고 판단했을 때 연예계는 자본집약형 산업으로 급격한 발전이 예상된다. SM기획과 대영기획의 뒤를 이어 도레미레코드(대표 박남성) 예당음향(대표 변대윤) DSP(대표 이호연) J&C(공동대표 장의식, 한석창) 등이 코스닥 등록을 서두르고 있다.


변화는 시대의 요청

연예계의 대형화의 필요성은 IMF 이후 줄곧 제기되어온 문제. 시간이 문제일뿐 언젠가는 불어닥칠 흐름이었다. 영세한 국내 연예계는 IMF의 폭탄세례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설상가상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 소식은 목을 죄는 일이었다.

실제 250여개가 넘던 가요 프로덕션은 IMF가 찾아오면서 180여개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몇몇 히트 제작사외에는 간판만 걸어놓았다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빚을 이기지 못해 해외로 도주하는 제작자도 늘어났다.

‘뭉치고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는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살아야한다는 단순한 생각이 연예계의 변화 바람을 주도했다는 평가다.


변화의 문제점

대형화는 어차피 자본 종속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프로덕션 사장은 더 큰 규모의 대형 프로덕션의 입김 하에 들어갈 위기에 놓였다. 결국 운영자에서 직장인으로 강등되는 상황이다.

과학적인 논리보다 의리와 정으로 통하던 연예계는 당연히 선후배 관계가 무너지게 되고 능력에 의해 평가받는 사회로 돌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역시 부익부 빈익빈, 즉 상대적인 발탁감에 시달리는 종사자들이 늘어나는 문제를 낳게 된다.

변화가 너무 빠르다는 점도 우려된다. 아직 우리 연예계는 초스피드 변화를 감당하기에는 성숙함이 덜하다.

또 앞을 내다보지 않고 머리부터 들이박는 쏠림현상은 가장 큰 문제. 앞뒤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코스닥행은 하나가 망하면 전체가 망하는 현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만약 대영기획이나 SM기획이 코스닥 시장에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연예계에 등을 돌릴 것에 틀림없다. 그런 상황이 되면 가뜩이나 자본 부족에 시달리는 연예계는 희망에서 절망으로 빠져들 것이 불보듯 뻔하다.

정교민 ·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 gmjung@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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