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을 만난다는 것은 어디서나 즐거움이다. 더구나 외국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좋은 외국인을 이웃으로 하는 것도 큰 기쁨이다. 우리 옆집에는 40대 중반 정도 되는 백인 부부가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아들 둘이 있는데 큰 아이 브락은 다섯 살이고 작은 아이 데이빗은 이번에 네 살이 된다. 나이가 비슷한 우리 아이들과 아주 잘 어울려 논다. 스스럼 없다 못해 뻔뻔스러운 경지에까지 이른 우리 둘째 녀석은 툭하면 옆집에서 저녁 먹고 들어오곤 한다. 마찬가지로 옆집 아이도 우리 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든다.

브락과 데이빗은 자식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한국 가정의 전통 속에 자라는 우리 아이들 못지않게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따뜻이 자라고 있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은 브락과 데이빗은 입양되었다는 것이다.

옆집 부부는 5년전에 브락을, 그 다음 해에는 데이빗을 입양했다. 데이빗과 브락의 입양 경위는 잘 모르지만 그들은 친부모보다 더한 사랑과 보살핌을 양부모로부터 받으며 자라고 있다.

과연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닌데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우리 부부가 가끔 반문할 정도로 정성을 다해 키우고 있다.

또 우리 집 아이들이 다니는 한 모임에는 중국인 어머니가 딸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우리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자그마한 한복을 꺼내면서 어떻게 입히는 것인지를 물어왔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하여 기르고 있는데 한국을 알려주기 위해 한복을 입히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아이가 커서 이 옷을 입게 되면 아주 예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한복은 돌배기나 입히는 옷인데 그 아이는 벌써 서너 살은 되어보였다. 한복 치마는 어깨부터 걸쳐 입어야 하는 것을 모르고 허리에 맞추어 입히려고 하다보니 아직도 치마가 너무 긴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설명을 듣고 중국인 어머니는 “내가 입히는 법을 몰라서 예쁜 한복을 입히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결국 고름 매는 법을 가르쳐주면서도 속으로는 몹시 부끄러워 귀밑이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 중국 여인은 자기의 친아이가 둘이나 있는데도 한국 여자아이를 입양하여 키우고 있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입양하여 기르는 가정이 많다. 아이가 없어서 입양하는 경우도 있으나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양해서 기르는 집도 많다.

부모는 공개적으로 아이를 입양했다고 하면서 친부모 못지 않은 애정과 정성으로 키우는 것을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양아 수출국으로서 수위를 지켜왔던 만큼 워싱턴 근교에도 한국에서 출생한 입양아가 많다.

아마도 씨족사회적 혈통주의 때문에 고국에서는 입양될 가정을 찾지 못하여 멀리 여기까지 입양되어온 것이리라. 그런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들을 만나면 우선 공연히 미안하고 어색해진다.

그러나 나의 어색함은 아랑곳없이 그들은 아이들이 태어난 곳에 대해 조그마한 것이라도 관심을 보이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을까 한다. 이를 볼 때마다 정작 우리들은 너무 그들에게 무관심하여 오지 않았는가 하면서 미안함을 금할 수 없었다.

미국 사회에서 입양은 보편화돼 있다. 보편화를 떠나 심지어는 입양산업이 성업중이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는 대리모가 관광 비자로 미국에 입국하여 입양될 아이만을 출산하고 돌아가는 것이 발각되어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입양 문제만을 다루는 입양 전문 변호사도 생겨나고 있다. 이민으로 이루어진 사회인만큼 외부로부터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는데 저항감이 적고 씨족사회적인 혈족 개념이 희석된 탓이겠다.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 사회도 개방될 필요가 있다. 순수 혈통의 배달민족의 우수성만을 고집해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 가족부터 먼저 개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불행한 어린아이가 미국까지 와서 양부모를 찾아야 되는 이중의 불행은 겪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다행히 이번 6월에 워싱턴에서 한국 입양아를 위한 문화 행사가 있다고 하니 여기에나 참석하여 나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으면 한다.

입력시간 2000/05/14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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