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

표면에서 물 흔적 발견, 가능성 높아져

지난 17세기 미국의 공상과학 소설가 H.G. 웰스는 소설 ‘화성인의 침공’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미래상을 그렸다. 마치 낙지처럼 생긴 외계의 고등 생명체가 지구를 침공, 인류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존재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 ‘외부의 위협’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인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인류가 화성 생명체의 존재 여부에 대해 끊이지 않는 논쟁을 벌이도록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웰스가 뿌린 호기심의 씨앗은 2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과학자를 울고 웃게 만들고 있다. 특히 우주개발의 선구자를 자임하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지옥과 천당을 오가야 했다.

화성 남극의 지표에 착륙, 땅을 파헤쳐 화성에 물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밝히겠다는 야심으로 1억6,500만 달러(약 1,850억원)를 들여 지난해 1월 발사한 탐사선 ‘마스 폴라 랜더’(MPL)가 12월 들어 교신이 끊긴 것이다.

고해상도 사진 촬영을 통해 화성의 신비를 벗기겠다며 1996년 말 발사한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MGS) 역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던 터라 충격이 더했다.


사진 한 장애 NASA가 발칵

그러나 2,000년으로 접어들면서 우주개발계획의 전면 재검토 압력에까지 몰렸던 NASA에 뜻하지 않았던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무용지물이 된 줄 알았던 MGS가 깜짝 놀랄만한 고해상도 사진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뿌연 사진만을 전송하던 MGS가 제 자리를 찾으면서 NASA는 ‘뭔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감에 들뜨기 시작했다.

수개월간의 분석작업 끝에 NASA는 지난 6월22일 “화성에 물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발견했으며 이는 곧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대한 암시”라고 공식 발표했다.

NASA 발표에 따르면 MGS가 보내온 고해상도 사진자료를 분석한 결과 화성 표면에서 골짜기와 해협, 삼각주, 분화구 등 물이 액체상태로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지형이 발견됐다.

화성 남반구의 고위도 지역, 특히 남극 인근 경사지대에서 주로 발견된 이같은 지형은 비교적 최근에 물이 지표로 스며들었으며 물에 의한 지표의 침식작용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NASA는 사진에 깨알같은 점으로 나타난 수많은 분화구 깊은 곳에 물이 스며들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NASA의 에드 윌러 박사는 “화성 표면 근처에 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암시”라고 설명했다.

MGS호에 장착된 고해상도 카메라를 제작한 말린 우주과학연구소의 마이클 말린 박사도 “지구에도 똑같은 흔적이 있다는 점에서 화성의 이같은 지형이 물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물 존재사실 잇따라 발표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역사적인 발견인 탓일까. NASA의 발표가 있은 직후 화성에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됐다.

미 애리조나 주립대학(ASU)과 로스알라모스 연구소 공동연구팀은 과학 전문지 ‘운석·행성과학’ 최근호(7월호)에서 “화성의 해양이 지구의 해양처럼 소금기 있는 짠물이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지난 1911년 이집트에 떨어진 12억년 전의 화성 운석 성분을 분석한 결과 소금물이 증발하는 과정에서 침전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용성 이온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이온 성분이 지금은 말라버린 화성 해양에 녹아 있던 소금 성분”이라며 “과거 화성 해양의 모습이 현재의 지구 해양의 모습과 유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ASU의 로리 레신 교수는 6월27일 발간된 ‘지구 물리학회보’ 최근호(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화성의 지표 속에는 종전 추정치보다 2-3배 많은 물이 내장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레신 교수는 1994년 남극에서 발견된 화성 운석 내부의 수분이 함유하고 있는 수소와 중수소의 양을 분석, 화성 대기권의 물이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표면 아래 생명체 존재 추정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MPL의 ‘딥 스페이스’와 같이 화성에 착륙해 직접 땅을 파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최근의 연구성과로 인해 화성에 물이 존재한다는 데에는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물의 존재 여부에서 생명체의 존재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웰스의 ‘화성인의 침공’ 발표 이후 계속돼온 화성 생명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논란은 20세기 들어 우주개발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화됐다.

화성 연구도 활기를 띠게 됐으며 과학자들은 화성 표면 아래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 시작했다.

1996년 8월 NASA는 전자 현미경으로 화성 운석의 성분을 정밀분석한 결과 오렌지색의 유기 화합물을 발견했다며 이를 화성 생명체 존재설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당시 ‘과학사상 최대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이 발견은 화성 운석 분석을 통한 생명체 존재설의 시발점이 됐다.

화성 운석 내의 검은 반점이 미세 박테리아라는 주장 역시 이 발견의 연장선상에 있다. 더욱이 지난 1997년 7월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가 화성 표면에 착륙, 조사활동을 벌인 이후 생명체 존재설은 좀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당시 NASA는 패스파인더가 보내온 신호를 분석한 결과 화성이 단순한 고체 덩어리가 아니라 지구처럼 ‘지각-맨틀-핵’ 등의 내부구조를 갖고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화성이 지층 형성을 가능케 할만큼 충분한 열을 갖고있었다는 의미다. 이 주장에 따르면 화성도 한때 지구처럼 생명체 진화에 충분할 정도로 따뜻하고 물기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생명체 살 수 없는 환경"반론도"

그러나 반론 역시 여전히 만만치 않다. 화성의 평균온도가 섭씨 영하 63도로 극히 낮은 데다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95%에 달하며 평균 산소 농도는 0.13%에 불과, 도저히 생물체가 살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1997년 MGS의 조사 결과 화성 주위의 자기장 세기가 지구의 800분의1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이같은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됐다.

당시 과학 전문지 ‘네이처’는 “지나치게 자기장이 낮으면 X선과 같은 해로운 우주선이 직접 부딪치게 돼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NASA는 최근의 성공에 고무돼 향후 15년간 모두 8차례에 걸쳐 화성탐사선을 한쌍씩 발사하고 오는 2014년까지는 인간의 화성 착륙을 시도할 계획이다.

또 2005년에는 화성의 토양을 운반하는 탐사선을 발사할 계획이다. 모든 작업이 계획대로 진척돼 오는 2014년쯤 최초의 유인 화성탐사선이 발사되면 거의 3세기를 끌어온 인류의 호기심 논쟁도 웬만큼은 해결되는 셈이다.

오남석 문화일보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0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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