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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국내사설탐정 1호 이동영

[인간탐구] 국내사설탐정 1호 이동영

"남과 똑같이 산다면 사는 의미가 없잖아요"

한사코 사무실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얼굴도 알아볼 수 없게 찍어달라고 했다. 많이 양보한 것이 겨우 얼굴 반쪽. 뒷머리만 찍자는 걸 겨우 막았다. 거의 현상수배범에 버금가는 주문사항이었다. 웬만큼 뻣뻣하면 밉기라도 하련만, 고집만은 대단했다.

초창기엔 멋모르고 사무실을 공개했다가 예기치 않은 봉변을 당했다든가, 알고보니 동종업계에선 세계 공통으로 회사 내부와 얼굴의 비공개가 불문율로 돼있더란 걸 혼자만 모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얼마전부턴 자신도 철저히 가리기로 했다는 얘기까지 들이밀고 나왔다.

따라서 비오는 날 어울리지 않게 선글라스까지 동원한 사진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건 순전히 그의 탓이다.



바람난 유부남·유부녀 찾기는 사절

이동영. 36세. 서울 수서에서 국제탐정사무소 현판을 내 건 국내 최초의 사설탐정.

그래서 한국판 셜록 홈즈라고까지 불리는 옹골찬 사나이다. 시작한지 약 1년2개월,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와는 간격을 둔 전문직이다. 바람난 유부남 유부녀 찾기, 상대의 신변에 위협을 줄만한 정보팔기는 거두절미 사양. 주로 외국과 얽힌 경제사범을 다루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 약 30개 국제탐정회사와 제휴, 국가간 공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아무 주문이나 맡지 않다보니 사정 모르는 사람에겐 수시로 타박도 듣는다. 남편 또는 아내의 뒷조사 좀 해달라는 전화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같이 쏟아지는 단골 레파토리.

이를 거절할 때마다 “그런 일도 할 줄 모르면서 뭔 탐정이냐”고 쏟아붓는 중년여인을 비롯해 본의 아닌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지금도 돈을 벌자고 나서면 매일같이 밀려드는 간통 송사만 접수해도 대성업일 것이다. 중요한 건, 그는 그런 일이 싫다는 것이다. 이름만 바꾼 고급 흥신소가 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원래는 비영리기구를 생각했을만큼 돈 욕심 없이 시작한 일이지만 지난 첫 해의 대차대조는 다분히 장밋빛이다. 황무지에서 출발해 총수입 6,000만원. 그중 절반은 외국에서 벌어들인 달러다.

한국인 의뢰 사건 5~6건, 외국업체 의뢰 10여건 정도를 해결한 댓가다. 국내의 한 벤처기업과 투자협상 중이던 외국 기업의 의뢰로 해당 국내회사의 신용도나 사장의 이력, 평판 등을 수집해주기도 했고 수백만 달러가 걸린 자작극으로 거액의 보험금을 타내려 했던 보험사기극을 밝혀준 일도 있다.

또 이민이나 취업수속 중인 한국인이 제출한 관련서류의 진위 여부를 재확인해달라는 외국 이민국 또는 기업의 의뢰도 그가 흔히 받아드는 요청이다.

현재도 자사의 로고가 한국 내에서 무단 사용되고 있다는 한 외국 기업의 의뢰에 따라 현장물증을 찾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이라기보다는 민간조사관의 개념에 가까운 경제탐정이다.

“갈등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이번 일만 해도 어쨌든 무단도용된 로고가 발견될 경우 결과적으론 우리 기업이 타격을 받게 될텐데 마음이 가벼울수가 있나요.

하지만 국적을 떠나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불법으로 저질렀다면 그 책임은 마땅히 져야죠. 그게 마땅한 경제질서구요. 간단한 문제는 열흘만에 조사, 번역까지 마치기도 하지만 까다로운 사건은 현장을 샅샅이 뒤지느라 두달 가까이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탐정이라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다지 위험한 건 없어요. 법적인 허용범위 안에서만 조사를 벌이는데다 아무리 큰 돈을 준다고 해도 상대에게 인권이나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은 거절하거든요.”


경찰대 출신의 못말리는 엘리트

탐정이 되기전 그는 경찰이었다. 1986년 고향인 부산에서 상경, 서울대 정외과와 갓 설립된 경찰대를 저울질한 뒤 결국 경찰대를 선택. 무엇보다 제복을 입고 싶었다.

특히나 헌병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품었던 군인의 꿈도, 신실한 4대째 가톨릭 신자로서 신부가 되고 싶었던 봉사의 꿈도 경찰이 되면 한번에 이룰 것 같았다. 주위에선 만류하고 나섰지만 개의치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매년 반장을 맡았던 모범생.

그러나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나라면 그렇게는 안하겠다”는 길이면 오히려 더 기꺼이 찾아다니는 외골수 기질이 본격적으로 발동하기 시작했다. 직접 경찰속으로 들어가 경찰세계를 바꾸어보겠다는 나름의 다부진 포부도 숨겨두고 있었다.

경찰대 재학시절 내내 그는 여러 모로 튀는 ‘예의주시 인물’이었다. 3학년때는 국내 최초의 모의 인터폴 총회를 기획, 개최해 이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국회의원들까지 참석시킨 대대적 행사로 판을 벌이는가 하면 엄숙주의 일관의 전통도 아랑곳없이 경찰대 최초의 보컬그룹을 결성해 학내를 뒤흔든, 못말리는 세컨드 기타맨.

학내시위땐 시위대로 참가해 혈기를 불태우다가 예비경찰 신분으로 오히려 수갑을 차고 조사를 받는 신세도 돼보았다. 졸업 후 경찰관으로 재직하던 중에도 윗분들의 눈총도 아랑곳없이 이따금 태연히 귀걸이를 하고 나타났던 별종 이씨. 일선에선 보안, 방범, 정보, 형사계장으로 10여년간 현장을 뛰는 한편 국비지원으로 유학하며 전문교육을 받은 인텔리 경찰이기도 하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을 비롯해 칠레 고급경찰학교 최고지휘관 과정, 미 미시간주립대 객원연구원, UN대학 세계지도자과정 등 자신의 돈 한푼 없이 2억5,000만원의 국비로 공부했다고 해서 자칭 ‘2억5,000만원의 사나이’. 경찰복을 벗은 지금까지도 시시때때로 그 보답을 고민할 만큼 이씨에겐 감사한 부분이다.

영어, 스페인어, 불어 등 3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한때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 동북아담당 리포터로, 칠레·파라과이 대통령 방한때 경호통역으로도 활약한 바 있다.


“국가경찰시대는 퇴조하는 추세입니다”

사립탐정이 되겠다는 생각은 작년 6월 외국대학의 경찰학 박사과정 논문을 준비하면서부터 불거졌다.

1998년 경찰에서 퇴직, ‘각국 사립탐정 비교연구 및 국제경찰협력상 사립탐정의 역할’이란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처음엔 논문자료 용도로 각국의 자료를 수집해 공부하다가 본말이 바뀌고 말았다. 당장 급한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라 국내 사립탐정제도의 기초공사라는 것. 그만큼 서둘러야할 이유가 그에겐 충분히 있었다.

“세계적으로 국가경찰의 시대는 이미 서서히 퇴조하는 추세입니다. 영국에선 이미 10년전 경찰을 민영화하기 시작했고 어쩌면 아주 먼 미래엔 국가경찰 자체가 사라질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OECD 가입국가 중에서도 유독 탐정제도가 없는 나라는 우리뿐입니다. 더구나 핑크톤과 같은 세계적 탐정회사들은 이미 국내에 진출해 활발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탐정시장이 완전히 외국 회사들에게 잠식당하겠다는 생각에 더 늦출수가 없었습니다.

박사학위야 언제라도 공부하면 얻을 수 있겠지만 국제탐정제도만큼은 바로 지금이 아니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국내에도 들어와있는 영국의 대표적 탐정회사 핑크톤의 경우 직원수만 12만명. 전세계에 거미줄망을 뻗치고 있다. 자체보안부터 어찌나 철저한지 동종분야를 뛰는 그조차 갖은 방법을 다 써 사무실을 구경해보려 했어도 매번 실패했다.

그가 뒤늦은 베일을 결심한 것도 그런 배경이다. 전직 경찰이라곤 하지만 우직할만큼 인맥 한번 이용해본 일이 없다. 간단한 신원조회 하나라도 직접 발품을 팔며 조사하더라도 일 문제만큼은 온전히 자신의 땀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경찰 출신의 관성이 나타나는 건 오히려 엉뚱한 곳에서다. 의뢰한 일을 잘 처리해줘 고맙다며 고객이 건네는 감사비를 아직도 공무원 시절의 습관대로 무조건 거절하고마는 이씨. 손님이 떠난 뒤에야 촌지도 아닌데 왜 받지못했을까 혼자 너털웃음을 짓기도 한다.


차세대 폴리스 아카데미 설립이 꿈

갈수록 후예들은 늘고 있다. 지난 6월엔 국내 최초의 소년소녀 탐정단도 탄생시켰다. 그의 연구소사이트(www.interpia.org)를 단골로 드나들던 열성 탐정지망생들이다.

1차로 선발된 단원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생까지 60명. 직접 학부모나 선생님까지 대신 설득해가며 끌어안은 아이들이다. 올 초 ‘21세기 공인탐정이 뛴다’는 전문서를 내기도 한 그는 전남 영암에 있는 대불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로도 1인2역이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해 매주 사흘 간격으로 서울과 영암 사이를 왕복하는 바쁜 일상이지만 강단의 성취감은 피로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지난 학기 경찰학과와 여자경찰행정학과를 신설한 데 이어 오는 가을학기에도 사이버경찰학과, 수사정보과 등을 개설할 예정이다. 학교측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가 꿈꾸는 차세대 폴리스 아카데미의 꿈이 영글고 있다.

그 조용한 바닷가 대학촌 내에서도 한 학기만에 괴짜교수로 리스트에 오른 이씨. 특유의 청개구리 기질이 거기서도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학기 그가 낸 시험문제는 ‘만약 삼성(대기업)이 경찰업무을 맡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등.

문제도 창작품이지만 채점기준은 더 요지경이었다. 자신의 강의에서 들려준 내용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가차없이 감점. 20대 시절 자신이 그랬듯이 판에 박힌 규격형 인간보다는 자기 고민과 생각을 가진 자유로운 학생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요즘은 TV에 나온 궁예머리가 멋져보여 조만간 자신도 삭발할 궁리를 갖고 있다. 삭발 헤어스타일에선 선배인 김용옥씨가 마침 그에게 인상적인 말도 한수 남겼던 모양이다. 더도 덜도 아닌 그의 인생관 그대로. 안그래도 인생에 용감한 그에게 더더욱 등을 떠미는 소리다.

“생불기거라고 하죠? 만들었으면 머물지말고 떠나라. 평생 탐정이 될거라 예상하셨다면 죄송한 일이지만 기반만 정착된다면 언제든 떠날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 후엔 미뤄둔 박사학위도 마치고, 또다른 길을 찾아야지요. 어떤 일? 늘 똑같죠. 남들이 하지 않는 일,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요.

하지만 그저 튀어보이려고 그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튀려고 했으면 진작에 다른 일로 튈 꺼리가 많았습니다. 단지 모두가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은 모양으로 살아가는 게 싫은 것 뿐입니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mar10@chollian.net

입력시간 2000/08/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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