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자본주의의 극성…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는 말은 남자 사이에 상투어였다. 남성우월주의가 지배했고 수세식 화장실이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별 이상할 게 없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도 처가를 격하하는 남편이 있다면 가정관계가 특별하거나 뭔가 ‘덜 떨어진 사람’으로 오해받을 공산이 크다. 당장 아내로부터 편치않은 ‘내무생활’를 겪을 가능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변소도 부지불식간에 ‘복권’(復權)됐다. 화장실로 격상되면서 가까울수록 편한 곳으로 변했다. 화장실은 요즘 거실 한켠과 안방 한쪽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는 옛말이 효용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젠 화장실로도 모자라 똥까지 복권(?)되는 추세다.

똥이 사랑받고 있다. 똥 모양으로 된 쿠션과 휴지통 케이스, 저금통에다 똥 모양이 그려진 부채와 인형, 스티커가 10와 20대의 애용품이 되고 있다. 아예 똥냄새가 풍기는 스티커까지 나왔다. 현재 시중의 똥캐릭터 상품은 20~30종.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똥까지 대접받으니 역시 현대사회가 자본주의의 극성기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똥을 돈(상품)으로 만든 공신은 디자이너의 상상력이다. 디자이너는 청소년 소비자의 감수성을 예리하게 꿰뚫었다.

청소년들이 똥을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감춰졌던 것을 드러내서 좋고, 특별해서 좋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어른과 전통의 금기를 당연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똥은 어른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매개체가 된다. 청소년에게 전통가치와 도덕관념을 일방 주입하려는 생각은 어른들의 오만일지도 모른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22 19:40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