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망대] 하반기도 '험로' 전망

시장 주변의 기류가 뭔가 수상쩍고 의심쩍다. 최대 암초였던 현대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찾고, 금리가 하락하고, 상반기 기업실적이 예상밖 호조를 보이고, 외국인 순매수세가 이어지고, 뉴욕증시가 상대적 안정을 되찾고, 일본의 제로금리 포기로 엔화강세가 예상되고, 새 경제팀도 나름의 팀웍을 찾는 것 같고….

이런 환경을 보면 이 즈음 시장에는 가을의 결실과 수확을 향한 기대처럼 풍성함과 여유로움이 넘쳐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8월을 시작할 때처럼 짜증스럽다. 솔표 우황청심환 생산업체인 75년 역사의 조선무약이 지난 주 최종부도를 낸 소식은 대표적으로 우울한 뉴스다.

가족경영의 폐해 탓도 있겠지만, 직접 요인은 약국들이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된 이 회사 주요 의약품의 결제를 미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도개 상표로 유명한 세진컴퓨터랜드의 부도에 이어 요즘 자금시장이 얼마나 어려운 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잇딴부도사태, 자금시장 현주소 반영

신규자금 유입이 거의 중단된 증시의 고객예탁금은 최대치보다 4조원 이상 적은 8조원대로 떨어졌고 대박을 쫓다 거덜난 투자자들은 원금에 조금이라도 가까우면 언제든 튈 채비를 갖추고 있다.

테마주도, 눈을 확 뜨게 하는 재료도 없다. 제한된 자금은 이쪽저쪽 왔다갔다 하며 개미를 울리는 순환매 장세를 만들어낼 뿐이다. 수급. 재료, 심리 모두 ‘빵’이다.

한 펀드매니저는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 주가 추락에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어 공격적으로 전투를 치를 엄두를 못내는 상황”이라며 “거래소는 700~750에서, 코스닥은 110~120에서 지루한 조정장세를 당분간 계속할 것인 만큼 투자를 하려면 지수보다는 저가 우량종목을 선취매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권고한다.

수출전선도 고공비행하는 국제 유가, 원화 평가절상, 운임 급등 등 3중고에 허덕이며 올 국제수지 목표를 위협하고 있다.

하반기 경기가 급속히 둔화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곳곳에서 인플레 위험을 알리는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급기야 통화당국이 9월중 콜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아 가뜩이나 침체된 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그래서 국민의 정부 출범후 처음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조정역을 맡겠다고 나섰다. 22일의 경제정책조정회의가 그 무대.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보완방안과 추석자금 방출계획, 재벌개혁 프로그램 등이 주제가 될 것 같다.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어떤 의지와 수단을 보이느냐에 따라 시장 향배가 결정된다. 하지만 자고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는 법. 이 회동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시장의 배신감과 시장참여자들의 열패감(劣敗感)은 한층 짙어질 수 밖에 없다.

21일에는 오랜만에 정·재계 간담회가 열렸다. 새 경제팀과 경제5단체장이 참석한 이날 회의는 재벌에 대한 잇단 회초리로 썰렁해진 양측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재계가 하고 싶은 얘기를 거리낌없이 하도록 한 만큼 얼어붙은 재계에게 ‘훈풍’이 될 것이다.


금리인상여부에 촉각

국내 단기금리 인상설과 관련, 미 FRB 산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22일(현지시간) 열린다. IT산업의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 생산자 및 소비자물가의 안정 등으로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점치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서 “우리 경제가 미국식의 신경제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을 ‘실없는 소리’로 일축하며 하반기 우리 경제가 험한 항해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워크아웃 기업 경영진과 경영관리단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특별점검 결과가 21일 발표된다. 이번 특검에서 경영진의 자금유용과 갖가지 모럴해저드 등 상당한 문제점이 적발된 것으로 알려져 문책 수위가 주목된다. 법정관리 및 화의업체에 대한 평가도 금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이 정주영 전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 6.1%를 채권단이 아닌 제3자에게 매각하겠다고 방침을 바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현대차를 진정으로 계열분리하겠다는 것인지, 시장의 시선을 일시적으로 비켜가겠다는 저급한 전술인지 의문스럽다.

금융감독위가 25일 정례회의에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 부분도 심각하게 고려돼야할 것 같다.

이번 가을에는 증시에서 떠나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소녀처럼 왔다가 토끼처럼 도망가는 기회’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진정으로 생각해 보자.

이유식 경제부차장

입력시간 2000/08/2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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