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평화상 수상 전후들… 

“7천만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소중한 상입니다.” “당신은 자랑스런 한국인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다음날 각 신문에는 몇몇 재벌그룹의 축하광고가 실렸다. 문구들은 가리고 뽑은 것이어서 그런지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찬사로는 최상급이었다. 아마 모든 국민의 심정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김 대통령에 앞서 최근 10여년간 노벨평화상을 받은 각국 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의 운명은 수상 이후 두 부류로 갈렸다. 평화상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세계적 지도자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국내에서의 평가는 그 뒤에 내려진 탓이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ANC의장(1992년)과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1994년) 등은 수상을 계기로 국내에서 최고지도자로 올라섰고 아직도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1990년)과 데 클레르크 전 남아공대통령(1992년),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1994년) 등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탔다. 두 부류의 양 극단에는 `잘 나가는 만델라'와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고르바초프'가 서 있지 않을까. 주목할 것은 두 사람의 운명이 바로 내치(內治)에서 갈라졌다는 점이다.

이번 평화상 발표를 전후해 우리 주변에는 많은 말이 떠돌았다.

“빨리 받아야 딴 생각 않고 민생에 신경쓸 것 아니냐”는, 잔뜩 뒤틀린 목소리에서부터 “그렇긴 하나 받고나면 더욱 기고만장해질텐데…”라는 우려까지. 발표 후에는 잔칫집 분위기 속에서도 “또 김정일에게 발목잡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김 대통령의 큰 정치를, 상생(相生)의 정치를 입에 올리고 있지만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지 모른다. 평화상 수상 전후에 나돈 말에서 보듯 국내외 상황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 퇴임 후에 고르바초프가 되느냐 만델라가 되느냐는 앞으로의 내치에 달려있는데 시간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10/1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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